《더 놀고 싶은 데》를 읽고
어린이도서관에서 그림책을 보다가 말 그대로 그림에 꽂혀서 책 한 권을 빌려왔으니 바로 《더 놀고 싶은 데》가 그것이다. 내게는 책의 내용보다 그림이 먼저 다가와 나를 잡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그림에 대한 내 안목은 간단히 말해 없다. 그렇게 무지하다. 별로 본 것도 없고 그리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밝은 분위기와 머리털까지도 하나씩 보여주는 듯 세심한 묘사에, 적어도 이런 그림은 보아주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서 몇 번이고 그림을 보았다. 등장하는 인물과 사물들의 표정조차 살아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그렸는지 모르지만 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림을 그린 이는 소개된 것이 별반 없고 글을 쓴 이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 글을 쓴 이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문외한인 내 안목을 감출 수 없다. 왜 글의 대단함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실력이 아직 출발선에도 서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저들은 어떻게 그런 경지에 올라가 있는 것일까.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높은 곳에 올라 있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그들이 많을수록 나 같은 독자들은 행복하다. 내 수준에서 읽으면서 그 만큼만 이해하자. 뭐 그리 급하고 몸 달 것이 있는가. 어느 분야건 그치지 않고 꾸준히 가다보면 만나는 것도 있고 깨닫는 것도 있고 이루는 것도 있지 않을까. 압박감으로 힘이 부치는 목표를 세워놓고 하는 것은 즐겁지 않을 것 같다.
책의 이야기는 어느 여름 날 동물원에서 시작된다. 그림에 반팔 옷과 긴팔 옷이 함께 나타나 한 여름인 것 같지는 않다. 사람들이 호랑이 우리 앞에서 호랑이를 구경하고 호랑이는 또 사람들을 구경한다. 그 때에 동물원 퍼레이드가 시작되고 동물의 탈을 쓴 곰 팽귄 같은 사람동물들이 등장한다. 그들로 인해 흥겨운 분위기가 조성되고 예쁜 아가씨가 풍선을 나누어 주면서 더욱 즐거워지는데 호랑이 사육사는 빗장문을 열고 들어오려다 무슨 생각에선지 문 잠그는 것을 잊고 황급히 나간다. 호기심 많은 호랑이가 그 문으로 슬며시 나가 관람객들과 어울리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람들은 호랑이도 사람동물인줄 알아 두려움이 없고 호랑이도 모처럼의 나들이가 즐거워 관람객들과 어울려 노느라 여념이 없다.
여름날의 긴 하루가 저물고 동물원 문을 닫을 시간이 되자 모두가 아쉬워한다. 아이들도 더 놀고 싶고 호랑이도 모처럼의 외출을 연장하고 싶지만 규정대로 일정이 끝난다. 한 사람동물은 호랑이에게 그렇게 아이들이 하자는 대로 다하면 며칠 못가 병이 난다고 조언을 하지만 호랑이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탈을 벗고 관리인에게 일당을 받고 떠나가고 벤치에 홀로 앉아있는 호랑이를 발견한 관리인은 당연히 처음 일하러 온 사람동물인줄 알고 그에게도 일당을 준다. 봉투에 관심이 없는 호랑이는 얼마 후에 조용히 우리 안으로 들어간다. 특별한 하루가 끝이 났다. 피곤한 호랑이는 바로 잠이 들고 가끔씩 “더 놀고 싶은 데.”하는 잠꼬대를 한다.
노는 것만큼 신나는 일이 있을까. 일이 놀이가 되면 얼마나 즐거울까. 서로 사이가 좋지 않으면 제대로 놀 수 없다. 긴장하고서야 어떻게 몸이 풀리고 신이 날 수 있나, 그러니 잘 놀 수 없지. 돈을 매개로 해서 사람들끼리만 억지로 즐거운 것은 놀이가 아니다. 진짜 놀이는 돈과도 무관하고 모든 존재가 함께 어울릴 때 가능하지 않을까. 아이가 호랑이를 보고는 가짜 아니냐고 묻자 엄마는 진짜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가짜라고 믿고 있고 호랑이는 가짜 같은 진짜다. 가짜 호랑이와 노는 것은 신기한 일이 아니다. 가짜 호랑이라면 그에게는 놀이가 아니라 일이었을 테고 즐거움도 없었을 것이다. 좋은 사이가 되면 놀 수 있다.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개와 고양이도 사이가 좋아지면 신나게 논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마을에 수시로 노는 일들을 만들었는가 보다.
질서 있게 순서대로 돌아가는 게 놀이다. 규칙에 익숙해야 규칙이 없는 것처럼 놀 수 있다. 몸에 배면 자연스러워진다. 질서대로 자연만물과 조화를 이루며 평화스럽게 사는 것이 우주의 놀이다. 선인들은 자연을 본받고 자연의 일부가 되려 했다. 이 책에 어느 동물도 독기나 살기를 띠고 있지 않다. 꽁지머리 아이를 무등태운 호랑이도 그 아이도 그들을 바라보는 사막여우도 부드럽고 선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런 관계가 점차로 퍼져 가면 모두가 친구가 되리라.
모두가 친해져 날마다 함께 놀고 더 놀고 싶은 그런 꿈같은 날을 마음속에라도 그려보고 싶다. 내가 그런 호랑이를 만난다면 신나게 놀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디서 누구와 그렇게 신나게 놀아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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