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인터뷰 36

세상을 꿰뚫다

세상을 꿰뚫다 조금은 뚱뚱한 듯, 시원한 모시옷을 입고 긴 담뱃대를 물고 있는 조금은 완 고해 보이는 노인을 만납니다. 안녕하세요? 자신을 좀 소개해 주시죠. 새삼스레 소개는 무슨, 나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소? 나 놀부요, 놀부. 아, 흥부 형님 놀부신가요? 그 심술 많고 욕심 많은…? 그건 나를 오해하고 있는 거여,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나처럼 살고 싶어 하는 데, 나랑 이야기해 본 사람들은 다 생각이 달라진대. 슬슬 진짜 얘기를 시작해 볼까요, 왜 동생네를 내쫓았나요? 그건 흥부와 제수씨가 결단력이 부족해서 결행을 촉구한 거야. 가정을 꾸 렸으면 독립하는 게 당연한 거지. 내가 도와준 거야. 억지가 여전하네요, 재산을 혼자 독차지하고 알거지로 내 보낸 건 뭔가요? 세상이 험하잖아, 온..

가상 인터뷰 2023.04.17

내 삶, 내 운명

내 삶, 내 운명 꿈인지 생시인지 애매하다. 내가 군대생활을 했던 파주 어디라고 했다. 어 둠이 깔리는 초저녁 봉분들이 많은 숲속, 어느 비석 뒤에 몸을 가리고 있던 여인이 나타났다. 갑작스럽고 당황되어 물었다. 누구신지요? 저는 이름은 없고 성은 홍(洪)씨에 나이는 서른여섯, 이 비(碑)의 주인공이고 혼령입니다. 그럼, 지금 내가 혼령을 만나 이야기하고 있는 건가요, 당황스럽네요? 무슨 사연이 있나요,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시니. 혹시 성함이…? 홍 씨에 서른여섯, 이름은 없다고 아까 말씀드렸는데요. 홍 씨 여인, 아니 홍 씨 아가씨, 홍랑(洪娘)이라 하면 되겠네요. 다들 그렇게 불렀어요.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다들 저를 대단하다 했지요. 시서화 악기 노래 춤 미모…. 아이고, 제가 흥분했네..

가상 인터뷰 2023.04.17

80년, 많은 일이 있었지

80년, 많은 일이 있었지 품격 있는 식당에 일가친척들이 모여 저녁을 들고 있고 팔순을 축하하는 걸 개그림이 걸려있다. 자리 한 가운데 조금은 마른 주인공이 앉아있다. “팔순을 축하드립니다. 몇 마디 여쭤보아도 실례가 안 될까요?” 아, 예. 내가 아는 게 없지만 뭔지 몰라도 물어봐요,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 팔십년을 사셨다는 건데, 실감이 나시나요? 몰라, 오래 산 듯도 하고 얼마 안 산 것도 같아. 마음은 이십대 후반이야. 어느 시절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으세요? 난 초등학교 시절 같아, 그 육년이 엄청 길게 느껴졌어. 그 시절 친구들이 순수했던 것 같아. 다 어려웠을 때였는데도. 자손들은 어떻게 두셨나요? 어떻게? 다 똑 같지, 그렇지 않기도 하겠네. 나도 그렇게 2난1여를 두었어, ..

가상 인터뷰 2023.04.17

잡초처럼 살리라

잡초처럼 살리라 깊은 산으로 가는 길 자그마한 바위에서 쉬고 있던 중 산으로 드는 청년 한 사람이 눈에 들어옵니다. 불안한 듯 편안해 보이고, 무거운 듯 가벼운 발걸음 이 뭔가 사연을 지닌 것 같아 말을 붙여 보았습니다. 젊은이 조금 쉬며 물 한 잔 마시고 가지? (약간 망설이다가) 고맙습니다, 폐가 안 될까 모르겠습니다. 명산대천을 유람 중인가, 산에 들어가야 할 사연이 있는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세상살이가 쉽기만이야 한가요? 한 칠십 된 노인의 말투 같네…, 세월 가면 모든 게 둥그레지고 순화된다 네. 오늘 슬프고 유별난 일도 나중에는 덤덤한 일상이 되지. 그럴 수 있을까요, 정말로 모든 일이 다 그럴까요? 그러고 보니 베옷을 입었네, 최근에 부모님을 여의었는가? 이야기하자면 깁니..

가상 인터뷰 2022.08.12

어려울 때 알 수 있지요

어려울 때 알 수 있지요 조선말의 역관이자 문인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 선생을 모셨습니다. 고맙습니다. 160여년이 흐르니 이렇게 변하네요.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 이 부족하네요. 옛 흔적을 찾을 길이 없네요. 유명하신 분이지만 모르는 이들이 적지 않을 듯해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세 한도를 내린, 어려움에 처한 스승 추사께 책을 구해드리고 한결같이 제자의 도리를 지켜 선생을 감동시킨 그분이십니다. 추사 선생님의 제자 분들이 많아요. 설명이 어려운 천재셨지요. 조선의 미 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할까요. 빼어난 제자들이 많습니다. 별로 한 일없는 저 같은 제자가 주목받는 게 무안스럽지요. 지나친 겸양이십니다. 추사 선생은 무슨 일로 제주에 귀양을 가셨나요? 추사 부친께서 윤상도 ..

가상 인터뷰 2022.08.07

너무 기울면 넘어지지요

너무 기울면 넘어지지요 고려시대 무신정변의 주역 정중부 장군을 만납니다. 안녕하세요. 안녕이랄 게 뭐 있나요? 반갑습니다. 너무 달라져 정신 못 차리겠네요. 그러실 겁니다. 이 시대 사람들도 적응이 어려워요. 남자다우시네요? 부인하진 않을 게요. 체격과 외모로 덕을 본 일도 많아요. 장군 시절에 문신들에게 무시와 차별을 당하는 일이 많았나요? 전반적인 사회분위기가 그랬어요. 전투를 해도 총대장은 항상 문신들이 고 이겨도 최고 수훈은 그들 차지였어요. 승진의 한계도 분명했고요. 참기도 많이 참았는데 오랜 세월 되풀이되어 너무 힘들었어요. 문신들이나 그들을 감싸는 왕을 많이 원망했겠어요? 전쟁에 목숨 걸고 싸워 이겨도 무시를 당하니 억울하고 분했지요. 게다가 실제적인 힘은 무신들에게 있었으니까..

가상 인터뷰 2022.08.07

빈자(貧者)의 누이 만인(萬人)의 어머니

빈자(貧者)의 누이 만인(萬人)의 어머니 마더 테레사 수녀님을 만납니다. 업적과 수상경력은 너무 많아 소개하지 않 습니다. 고맙고 반가워요. 평생 은총 속에 살고 어디가나 넘치는 대우를 받아 민망 할 때가 많아요. 겸양의 말씀이십니다. 누가 수녀님의 삶을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요? 오늘은 그냥 소소한 삶의 얘기를 들었으면 합니다. 많은 일의 시작은 어땠나요? 저 같은 신께 드려진 이들은 그분의 소유물이지요. 그분이 명하시면 하는 게 제 일입니다. 서른여섯 땐가 그분의 명령을 듣고 그대로 했을 뿐이지요. 그 분의 명령을 따르는 이들은 똑같을 거예요. 그토록 많은 일을 효과적으로 하는 비결이나 원칙이 있을까요? 어려움당하는 분들이 주님으로 보이고 제게 그 아픔이 전해지는 거지요, 제 게 그 일을 ..

가상 인터뷰 2022.07.07

삶은 늘 어딘가로 흐르네

삶은 늘 어딘가로 흐르네 골목길에서 19세기 후반 조선의 방랑 시인 ‘난고 김삿갓’ 선생을 만났습니 다. 혹시 김삿갓 시인 아니신가요? 아, 그런대, 거참 지금도 생각지 않은 곳에서 나를 알아보는 이가 있네. 뜻밖의 장소에서 대단한 분을 뵙습니다. 큰 영광입니다. 예상 못한 곳에서 뜻밖에 일들이 툭툭 돌출해 나오지, 그게 인생이야. 철종시절(1863년) 별세해 강원도 영월에 모셔진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곳서 뵐 수 있는지요? 굳이 따지지 마, 세상엔 모를 일이 너무 많아. 영월에 뭐 내 뼈 하나 남아 있으려나? 나 같은 이야 살아서나 죽어서나 자유로워…. 선생은 천재셨잖아요, 방랑하듯 사신 게 후회되지 않으셨나요? 누가 천재래? 또 내 삶이 어때서? 그럼 내가 도대체 어떤 삶을 ..

가상 인터뷰 2022.07.07

마음이 늘 허전했어

마음이 늘 허전했어 755년 말의 어느 날 안록산의 난을 맞아 섬주에서 동관으로 옮긴 군영 에 머물고 있는 고선지 장군을 만납니다. 난감한 상황에 짧게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많이 심란하시죠? 그래요, 내 생애 가장 초라한 처지 같아. 변변히 접대도 못하네요. 마음 쓰지 마세요. 장군님,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 그냥 오십대 후반이라고 해둬요. 많은 시련을 겪었어요. 아주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만 같아. 장군의 정체성은 뭔가요? 국적은 어딥니까? 평생을 앓아온 내 고질병(痼疾病)이야. 밖에서야 알아주는 당나라 장군이지 만 안에선 간단치가 않아. 당나라 장수지만 번장(蕃將)이라 이방인 취급을 당 하고 고구려인이라기엔 나라가 없으니 말이 안 돼. 내 조상의 나라를 패망시 킨 당나라니 더 갈피잡기 어..

가상 인터뷰 2022.03.08

인간답게 살아야지

인간답게 살아야지 추울 때 생각나는 따뜻한 사람, 장발장과 함께 합니다.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를 왜 불렀는지 모르지만 유익한 시간이 되면 좋겠어요. 체격이 무척 장대하시네요. 압도되는데요. 체격 덕 보신 적 있나요? 물론 있지요. 반대로 어려움을 겪은 적도 여러 번 있어요. 그런 걸로 단순하 게 유·불리를 따질 수는 없을 거예요. 빵 한 조각 훔친 것으로 19년 옥살이를 했다면서요, 사실인가요? 출발은 빵 하나였는데 그 후로 여러 가지가 더해졌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굽니까? 형사 자베르입니다. 자신의 할 일에 무섭도록 철저한 사람이었지요. 의외네요. 미리엘 신부라고 예상했는데요. 그분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제 사고를 근본적으로 바꾸게 된 삶의 전환점이 었어요. 제 삶의..

가상 인터뷰 2022.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