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거인》을 읽고
프랑스아 플라스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는 나보다 한 달 반쯤 먼저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책을 읽어도 줄거리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해설을 단 분의 이야기가 훨씬 이해하기 쉽다. 정말로 오랜 세월 우리와 건강하게 함께 해온 자연이 우주의 막내로 등장한 덜 떨어진 깡패 같은 인간들 때문에 위태로워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듯하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바보로 인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여기저기서 행해지고 있다. 누가 현명하고 어리석은지 누가 선진이고 후진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엄청난 잘못들이 너무도 태연히 당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야기는 늙은 뱃사람에게서 사들인 이빨로부터 시작된다. 분명한 속임수라고 여기고 사들인 그 이빨의 안쪽에 지도가 그려져 있어 그곳으로 탐험을 떠난다. 많은 어려움과 위기를 넘기고 도달해보니 그곳은 거인족의 마을로 백십 여명의 거인들의 유골이 있었고 아직도 남자 다섯 여자 넷인 아홉 명의 거인들이 살고 있었다. 한동안 그들과 우정을 쌓으며 아름다운 생활을 하던 주인공은 그들과 작별을 하고 다시 그의 세계로 돌아온다. 돌아온 자신의 세계, 우리의 세계에서 책을 내고 강연을 다니다가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떠나온 그곳으로 다시 탐험을 떠난다.
유명학자와 화가가 동반하여 출발을 하고 목적지 가까운 도시에서 융숭한 환영을 받고 대단한 인물로 대우를 받았지만 그곳에서 거인마을의 아홉 사람 중 하나였던 안탈라의 머리가 여섯 마리의 송아지가 끄는 마차에 실려 나오는 것을 본다. 주인공은 안탈라의 머리로부터 들려오는 듯한 “침묵할 수는 없었니?” 라는 음성을 듣는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후회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미 많은 이들이 그곳으로 달려가 무방비 상태의 마을과 거인들을 파괴한 후였다.
주인공이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찾아갔던 그 마을까지는 길이 뚫려 곧바로 갈 수 있었고 그곳에는 이미 사이비학자, 도적들, 온갖 종류의 협잡꾼들이 가득하고 거인들은 작살에 맞은 고래처럼 시체가 되어 뒹굴고 있었다. 주인공이 써낸 책들이 그 불행을 가져왔고 거인들의 마을과 아홉 거인들을 파멸시킨 셈이었다. 글쓴이는 아홉 명의 별을 꿈꾸던 아름다운 거인들과 명예욕에 눈이 멀어버린 못난 남자가 이야기의 전부라고 적고 있다. 주인공은 서재를 채웠던 책들을 기증하고 고기잡이배의 선원이 되어 바람과 하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으며 이따금 눈빛이 반짝이는 아이들을 만나면 수많은 여행담과 너른 바다와 대지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지만 ‘거인의 이’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 거인족, 그들이 정말로 이 땅위에 살았을까. 이 땅위에 수많은 거대한 생물체들이 참으로 긴 세월을 살아왔다. 그 사이사이에 여러 자연재해로 몇 번의 멸절기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또다시 세월이 흘러 생명들이 나타나 이 땅의 역사를 이어왔다. 이제 앞두고 있는 멸절기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간 때문에 일어날 것이라고 하니 모골이 송연하다.
책의 뒷부분에 더해진 최재천 교수의 표현으로는 “길은 우리 인간이 자연의 가슴에 내리꽂는 비수”라고 한다. “자연에게 길은 곧 죽음”이라니 문명으로 가는 총아처럼 여겼던 길에 대한 관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주변에서도 아름다운 비경이 매스컴을 타면 망가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많은 이들이 차를 가지고 몰려들어서 휴가철이 지나고 나면 한적함이 사라지고 관광지가 되어 버린단다.
길이 뚫리면 수백 년을 행복하게 살고 있던 나무들이 잘려 그 길로 실려 나오고 나무들이 떠나간 곳에는 동물들도 살지 못한다고 한다. 거인들을 죽이는 것이 우리들이고 그들에게 들이 밀은 비수가 길이었다는 것이다. 그 길들을 따라 곳곳을 다니며 얼마나 그 길들을 예찬하며 고마워했던가. 국가와 같은 힘 있는 조직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세금이 국민을 위해 유용하게 쓰이는 좋은 예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혼란스러워 진다. 그 길을 따라 달리는 차에서 쏟아내는 매연과 부단히 이동하며 저지르는 인간들의 만행과 몰염치들은 또 얼마나 대단한가. 우리가 자연에 퍼붓는 숱한 악행들을 성찰하면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결코 말할 수 없겠다.
언제부턴가 잘못의 대가를 우리가 받고 있다고 느낀다. 급격히 빈도가 잦아지고 강도가 세어진 채로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지진들, 주변을 뒤덮고 있는 스모그와 반갑지 않은 미세먼지들, 기록적인 홍수와 폭설과 한파들, 우리를 공격하는 듯한 많은 신종 질병들과 무력한 대책들. 우리들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한 자연의 경고일지 모른다. 미래를 걱정하는 과학자들이 긴박하게 쏟아내는 말들조차 너무 자주 듣는 말들이라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스스로 방향을 잘못 잡고도 경쟁하듯 우르르 달려가는 무리들, 그들의 등에 대고 그 쪽이 아니라고 소리치면서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는 지식인들. 모두가 마지막 거인을 살해하는 공모자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길을 내고 넓히는 공사는 그칠 날이 없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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