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문화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변두리1 2019. 6. 7. 08:52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가, 나는 죽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저녁 시간도 기운 때에 소형 유람선허블레아니를 타고 여행의 풍미에 젖어 있다가 영문도 모르고 강물에 빠져 이렇게 되었다. 나중에야 바람결에 듣고 크루즈선 바이킹 시건에 받혔다는 걸 알았다. 그 현장에서도 운명은 갈려 살 사람들은 생명을 건짐 받고 나 같은 이들은 응답 없는 비명 속에 가라앉고 말았다. 순간이었다.

  물속에 내가 잠기고 입과 코로 수없이 물을 먹으며 정신을 잃고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순간에 내 영혼이 몸을 빠져 나왔다. 다뉴브 강 상공에 낮게 떠서 나는 사람들이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내 육체가 물속에 잠긴 채 어딘가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판단을 내리지 못한 짧은 순간이 흐르고 난 내 육체를 따라가고 있었다. 난 다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안다한들 전할 수 없었고 따라가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큰 맘 먹고 떠난 내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다. 경로당에서 또래들은 다 부러워했다. 잘 다녀오라고 많이 보고 즐겁게 지내다 오라 했다. 어떤 선물을 사오라고 농담 삼아 건네는 이들도 있었다. 혼란의 현장이 싫어 떠나온 고향을 가고 싶었다. 그 순간 내가 고향에 있었다. 심각한 얼굴, 일그러진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친구들을 볼 수 있었다. 얼굴을 붉히고, 혀를 차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내 이야기를 했다. 너무도 안됐다고, 평생 고생만 하다 처음 가본 외국에서 그것도 물에 빠져 죽었다고 서글퍼했다. 방송에서는 죽었다고 하지 않고 실종이라고만 했다. 실종자들이 모두 생환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친구 김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이 보고 싶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경로당을 떠나 집에 가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모두 동유럽여행을 떠났으니 누가 있을까. 우리 가족은 모두 죽었다. 해외여행을 가자고 아들네가 조를 때, 거절했어야 했나보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동생에게 가 본다. 큰 배에 받혀 정신을 잃고 몸에서 내 영혼이 빠져나오던 그 때, 수 분후에 동생을 찾아왔더랬다. 동생 가족들은 모두 자고 있었다. 새벽 다섯 시가 조금 넘었을 때니 자연스런 일이었다. 이해는 하면서도 동생이 야속했다. 머나먼 타국에서 형이 죽었는데 그 시간에 잠에 빠져있다니, 동생의 꿈속으로 들어가 서운한 표정으로 말없이 서 있었다. 동생은 괴로운 듯 얼굴을 찡그리더니 몸을 돌아눕고는 다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나와 가족의 비극이 알려진 건 사고가 있고 세 시간 가량 지난 후였다. 아침 방송에 긴급뉴스로 보도되었다. 동생네는 날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동생은 한참동안 가만히 있기만 하더니 이번에는 허둥대기만 할뿐 아무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집 전화와 휴대전화가 한꺼번에 울리기 시작했다. 동생과 제수씨의 반응이 비슷했다. 전화선 너머로 울음소리와 어떻게 하느냐는 말과 흐느낌이 계속해 이어졌다.

  다시 사고가 난 현장, 흐린 하늘, 다뉴브 강은 탁류가 되어 빠르게 흐르고 사고소식을 전하려 많은 언론사 차들과 기자 방송인들이 몰려있고, 사고를 수습하려는 이들이 이미 몇 개의 천막을 치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소식은 알려질 대로 알려져 양국이 분주하고 주민들 몇은 도도히 흐르는 강물만 바라보고 있다.

  나는 무엇인가. 휘청하고 흔들린 배에 튕기듯 강물에 던져져 어둠속 추위에 몇 마디 비명도 외침도 지르지 못하고 흙빛 탁류에 휩쓸려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몇 초의 찰나에 평생을 함께 하던 영혼은 훌쩍 나를 버리고 날아올랐다. 무언가 나를 잡아끄는 강한 힘에 의해 알지 못할 곳으로 아무 기약 없이 끌려갈 뿐이었다. 시외버스가 달려가듯 멈추지도 않고 현기증이 일 정도로 쓸려가고 있었다. 물 속 깊이에서 요동치면서 때론 물위로 잠시 올랐다가 다시 물속으로 언제까지 또 어디까지라는 기약도 없이 흘러갔다.

  한국인인 내가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 와서 그것도 다뉴브 강에서 내 몸을 급류에 맡겨 이 땅의 삶을 마감하는 뜻은 무엇인가. 고단한 내 몸은 얼마나 온전히 보존되고 어디에 멈추었다가 어느 곳에서 쉴 곳을 찾게 될까. 나를 끌어들이고 흘러가는 이 강은 앞으로 한국인에게 잊지 못할 강이 되고 나로 인한 기억과 교훈으로 보다 안전한 여행을 하게 되겠지. 나는 흐르며 강바닥에 부딪히고 돌부리에 채여 여기저기 퍼렇게 멍이 들기도 했다. 가끔씩은 함께했던 영혼이 나를 염려하고 그리워하는 기운이 느껴지기도 한다.

  점점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내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프다. 몇 날을 떠내려 왔는지 사지가 온전한지도 모르겠다. , 어딘가 걸리는 느낌이다. 움푹 들어간 곳에 끼인 건지, 강가에 닿은 건지 아직은 모르겠다.

  긴 세월을 내가 머물렀던 몸이 흘러가다 멈춘 곳을 나는 안다. 먼 거리를 떠내려 갔음에도 멍든 곳 몇 군데 빼고는 비교적 온전하다. 다시는 내가 집으로 삼을 수 없는 곳, 나로 인해 피곤한 삶을 살았던 몸에게 미안하다.

  이제 내 갈 곳으로 떠나야 할 때가 된 듯하다. 한국의 고향과 내 몸과 헤어진 이 곳, 다뉴브 강을 잊을 수는 없으리라. 한 서린 생이여,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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