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갑니다. 내 고향으로(야곱)
처가 사람들의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 일종의 피해의식을 느끼는 것 같다. 내가 부당하게 그들의 것을 취한 것은 하나도 없다. 분명하다. 그들 재산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현저히 빠르게 내 소유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처가의 전체재산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 반은 훨씬 넘는다. 처남들의 질투 어린 눈치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도 내게 대놓고 할 말은 없다. 하나님께서 몰아주시는 것을 어떻게 하는가. 내가 이곳에 온 후로 늘어난 처가의 재산도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그 일에 내 이십 년의 생활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나와 아내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대하는 처가식구들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어려워하는 모습이 역연했는데 이제는 시비조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우리 가축과 노비들이 많아지니 다툼도 자주 일어난다. 서로 말없이 넘어갈 일들이 시비꺼리가 되고 감정의 대립으로 발전해 간다. 웬만한 일들은 종들 선에서 해결되던 일들이 이제 내가 나서도 쉽지가 않다. 깍듯하고 온화하던 말투가 때로는 냉랭하고 무시하는 듯도 하다. 무언가 분명한 해결방법이 필요하다.
오늘 오후에 들판에서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들었다. “네 조상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그 분이 말씀하셨다. 이곳의 삶에서, 특별히 지난 육칠 년간 그 분의 능력을 내 눈으로 보고 삶으로 겪어 본 후로 그 분의 말씀은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 되었다. 또한 그 분이 지키신다고 하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믿을 만한 사람들을 보내 두 아내를 불러 의견을 나누었다. 내가 처가를 위해 어떻게 일해 왔는가를 그들이 잘 알기 때문에 오해는 없었다. 아내들도 처가사람들의 최근 분위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도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함께 겪어온 것만으로 충분했다. 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장인의 흉이 어쩔 수 없이 거론되었다. 그것도 그들이 익히 알고 있는 일이어서 말이 없었다.
그들의 의견을 물었다. 워낙 먼 길이라 한 번 떠나면 언제 다시 돌아온다는 기약이 없으니 그들의 동의와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이들도 적지 않으니 떠나는 것이 간단치 않다. 의외로 두 아내는 쉽게 그 분이 명하신대로 하자고 했다. 자신들도 부친이 칠 년간의 노동에 판 것과 다름이 없고 최근 들어 따듯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지 않았단다. 떠나기로 마음을 정했으면 신속히 준비해서 지체하지 말고 출발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모든 일을 비밀리에 세심하게 하도록 지시했다. 할 일이 무척 많다. 먼 길을 위해 옷가지와 먹을 것과 혹시 있을 지도 모르는 도둑과 강도를 위시한 집단의 공격에도 대비가 필요했다. 짐승들도 사람이 탈 수 있는 것과 짐을 실을 수 있는 것, 세심하게 돌보아야 하는 것을 구별해 다루어야 하고 선발대와 뒤처리인력도 필수다. 살아온 날들이 길다보니 가져갈 것들을 챙기는 것도 간단치 않을 것이다.
처가 사람들이 우리가 떠나는 것을 알아서 좋을 일이 없을 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피해의식을 느끼는 그들이 어떤 태도로 나올지도 알 수 없고 그들의 소유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눈앞에서 떠나갈 때, 감정의 통제가 잘 되지 않으면 겉잡을 수없는 사태가 생기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결국은 얼마안가 다 알게 되겠지만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선택은 부딪치지 않고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가는 것이다. 세월이 가면 서운했던 일들이 잊히고 그리움은 쌓이게 되리라.
저녁을 먹고 우리지역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벌써 짐들을 챙기느라 분주하다. 나를 보고도 갑자기 이동하는 것이 어찌된 일이냐고 묻는 이가 없다. 모두가 말은 안 해도 수십 년 살아온 곳을 떠난다는 사실에 싱숭생숭한 듯하다. 까닭을 알 리 없는 짐승들만 아무 일 없다는 듯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들도 먼 길을 가야 하니 어떤 식으로든 준비가 필요하리라.
마음은 벌써 고향으로 달려가 부모님을 만나고 있다. 형은 얼마나 변했고 나를 어떻게 대해 줄지 걱정이면서 궁금하다. 고향의 들판과 냇물들이 눈에 보이고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던 이들이 더욱 보고 싶다. 여기에 와서 보낸 이십여 년의 세월이 빠르게 머릿속을 지나간다. 라헬을 처음 보았던 순간과 그녀를 위한 칠년의 세월들, 장인에게 속았을 때의 분함과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었던 허탈감, 두 아내를 얻고 자녀들이 태어날 때 마다 느꼈던 감사와 가장으로서 삶의 무게들. 그동안에 나를 도와주었던 많은 마을 사람들. 처가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것보다 오히려 동네 사람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저릿한 아픔으로 가슴에 다가온다. 그들에게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떠날 생각을 하니 더욱 마음 아프다. 그래도 오늘밤은 고향 꿈을 꿀 것 같다. 이제는 가리라. 그리웠던 내 고향땅으로….
'성경이야기 > 야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디선들 살지 못하랴(레아) (0) | 2016.03.10 |
---|---|
떠나기 위한 나의 준비(라헬) (0) | 2016.03.09 |
그분의 일하심을 보았네(재산가 야곱) (0) | 2016.02.23 |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재계약:야곱) (0) | 2016.02.22 |
뛰어봐야 벼룩이지(라반: 재계약) (0) | 2016.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