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야곱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재계약:야곱)

변두리1 2016. 2. 22. 18:21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재계약:야곱)

 

  외삼촌, 아니 장인은 협상의 고수요 이재에 대단히 밝다. 자신의 재산에 손해가 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득이 된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는 이가 아니다. 그런 분이 그 나이까지 그 정도 재산에 머문 것이 수수께끼다. 어제 임금협상을 했다. 그 협상은 누가 보아도 장인의 일방적인 승리다. 철저히 내가 양보한 것이지만 그렇게 말하진 않을 것이다. 나 또한 일방적인 손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어제 저녁에 가축들이 흩어져 있는 곳들을 둘러보니 장인은 역시 만만하지 않았다. 아니 지나치게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인간적 배신감을 느꼈다. 내가 생면부지의 남이라도 그렇게는 못할 것이다. 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양과 염소 중에서 얼룩빼기 점박이 검은 것들을 내가 갖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는데 그냥 두어도 항상 몇 마리 안 되는 것을, 일일이 찾아내어 거두어 갔다. 아침에 이들이 없어진 것을 보고했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이 자신이 따로 아들들에게 맡기고 자기 가축들을 내가 돌보는 것들로부터 멀리 격리시켰단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니 놀랄 일은 아니다. 내 계획대로 성실하게 가축들을 돌보면 나머지 일은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이번 협상에 임한 기본자세가 바로 그분이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보자는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계약해도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처음에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것도 진심은 아니었다. 그것을 모를 장인이 아니다. 그것은 얘기를 꺼내는 헛기침일 뿐이다. 내게 딸린 식구가 벌써 열여섯이다. 빈털터리로 고향에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협상의 고수인 장인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조건을 내놓는 것이 장인의 경계심도 풀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확연하게 볼 수 있는 묘수였다. 누가 보아도 어리석은 계약이요 한편으로 심하게 기우는 협상이다. 그 조건에도 자신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챙기려는 탐욕에 연민이 든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아버지 이삭을 기적같이 출생시킨 분이다. 모두가 포기하고 있을 때 심지어 본인들도 기대하지 않을 때 보란 듯이, 백 살의 할아버지와 아흔 살의 할머니에게 깜짝 선물처럼 아버지를 주셨다. 그분은 모두가 형이 후계자라고 여길 때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나를 복주시고 후계로 세우신 분이다. 어린애라도 알아차릴 속임수를 통과시키신 그분이다. 내가 벧엘에서 노숙할 때 나타나 나와 함께 하시며 도우실 것을 약속하시고 지난 십사 년 동안 이곳에서 내가 손대는 것마다 복에 복을 더하신 분이다. 내게로 향한 그 모든 복들이 장인의 것이 되었고 나는 빈털터리다. 하지만 그분은 얼마든지 장인 것을 내게로 옮기실 수도 있고 새로운 것을 내게 부으실 수도 있다. 내가 시도했던 일들을 그 누가 잘될 것이라고 한 적이 있었던가. 모든 예상을 깨고 하는 일마다 엄청난 결과가 있지 않았던가.

  어제 밤, 장인과의 계약내용을 라헬에게 설명했더니 어이없어 하는 표정으로 바보냐고 했다. 하나님 애기를 했지만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믿으라고 강요할 마음은 없다. 강요해서 될 일도 아니다. 세월이 가면 누가 현명했는가가 드러날 것이다. 라헬은 아버지를 너무도 잘 알아서 가축 중 내 소유로 하겠다는 것이라도 챙겨놓았느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더니 아버지는 해지기 전 챙길 것이 분명하다면서 그것이 나와 아버지의 차이라고 했다. 결국 그녀의 말대로 되었다.

 

  기대가 된다.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장면을 보고 싶다. 적어진 가축을 돌보는 것은 쉽고도 쉬운 일이다. 모처럼 가붓한 일을 하면서 그분과 더욱 친밀해지고 늦둥이 요셉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느긋한 삶을 즐겨야지. 벌써 계약 이야기를 들은 처남들을 비롯한 외가 동네 사람들이 나를 멍청이로 취급하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나는 오히려 그들을 무시한다. 그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왜 하나님께서 크고 놀라운 일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수없이 보고도 모를까.

  이럴 때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보고 싶다. 할아버지는 내 이십대 후반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여러 번 하셨다. 어렸을 적 동네 분들도 나를 보면 아버지보다 할아버지 얘기를 더 자주 하셨다. 그들은 북방의 왕들이 연합해 쳐들어 왔을 때 정규군도 패해서 장정들이 포로가 되고 재산을 빼앗겼는데 그것을 할아버지가 가문의 병사들과 종들을 거느리고 쫓아가 그들을 물리치고 찾아다 주었다는 것을 거듭 고마워했다.

 

  그 능력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아무도 못하는 일을 하시는 하나님을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물론 나도 가축돌보는 일을 한두 해 한 것이 아니므로 자신감이 있다. 내 나름으로 얼룩빼기와 점박이를 늘려가는 몇 가지 비법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과 비할 수 없는 그분의 축복으로 거부가 되어 고향으로 당당히 돌아가기를 원한다,

  이번 계약은 하나님의 일을 보여주기 위한 아주 잘된 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