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봐야 벼룩이지(라반: 재계약)
오늘 야곱이 나를 보러 왔다. 그 녀석이 조만간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부인들을 위한 노동력 지불기간이 끝난 것이다. 내가 모를 것으로 알겠지만 나도 녀석만큼 계산을 하고 있다. 야곱자체는 그리 대단한 것 같지 않은데 그가 손대는 것 마다 엄청난 성과가 있으니 그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신통력이 있다는 예언가를 만났을 때 물어보았더니 그를 도와주는 대단한 존재가 있다고 했다. 녀석이 오기 전과 지금의 우리재산은 비교하기 어렵다. 그러니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붙잡아 두어야 한다.
처음에는 아내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표정은 심각하게 지었지만 나는 속으로 웃고 있었다. 녀석의 속셈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곱은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성실하게 일해 왔는지를 역설했다. 나는 바로 핵심을 찔렀다. 함께 더 일할 만하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품삯을 정하라고 했다. 그는 또 다시 우리 가문의 재산형성에 기여한 자신의 공을 들먹이며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보수를 받고 싶다고 했다. 내가 다시 스스로 정하라고 했더니 양과 염소 중에서 얼룩빼기와 점박이 그리고 검은 것들을 자신이 갖겠다고 했다. 그의 요구는 내 예상보다 약했다. 마다 할 이유가 없다. 그런 것들은 잡종이라고 해서 값도 그다지 나가지 않는다. 더 큰 요구사항을 들고 나와도 어쩔 수 없이 들어주어야 할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잘 된 결과다. 야곱은 흔쾌히 예전처럼 내 양을 치기로 했다.
아직 녀석은 내가 염려했던 것만큼 협상의 고수는 아니다. 내가 나이를 헛먹지는 않은 셈이다. 고수쯤 되려면 자신의 기여도를 정확히 판단해서 손익분기점 그 어간을 목표로 삼고 일단 두 배 가량을 불러 조정을 거쳐 처음의 목표를 얻어내는 것이다. 야박하긴 하지만 재빨리 손을 써서 내 재산의 감소를 최소화할 것이다.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따라 재산에 큰 차이가 생기니 한시라도 지체할 일이 아니다.
오후 내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양과 염소 떼를 찾아다니며 얼룩빼기와 점박이 그리고 검은 것들을 따로 모아 내 아들들에게 넘겼다. 일단 이런 것들을 추려내고 흰 염소와 양들만 녀석에게 치도록 할 것이다. 흰 것들에서야 그런 것들이 나와 봐야 얼마나 나오겠는가. 이곳에서는 야곱이 날고 긴다고 해도 내 손을 넘어설 수 없다. 완력으로 해도 어린 아들들과 몇 되지 않는 종들로는 우리와 상대가 되지 않는다. 불이익을 감수하든지, 아니면 계약을 새로 하자고 하면 그때는 나에게 대폭 유리한 조건을 내세울 수 있다. 녀석이 원하는 양과 염소들을 따로 모아 내 아이들에게 맡기고 사흘 길쯤 떨어뜨려 흰 양과 염소들을 야곱에게 맡기는 거다.
녀석이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알면 땅을 치며 한스러워 할 게다. 야곱의 몰골을 상상만 해도 속이 시원하다. 녀석은 아들들이 많아지고 대단한 존재가 돕고 있으니 어디를 가든 맨손으로 시작해도 원하는 일을 넉넉히 해낼 것이다. 우리 딸을 둘 다 가졌고 그것도 모자라 두 여종까지 취했으니 우리 집에서 생활한 것의 보상은 충분하고도 넘친다.
생각해보면 나도 결코 손해만 보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반반한 둘째를 원해서 칠년간을 일한 녀석에게 이곳의 관습임을 내세워 속절없이 늙어가는 첫째를 떠안겼고 또 다시 칠년간 그를 붙들어 놓고 일을 시켰다. 그가 일한 십사 년 동안 내 재산이 얼마나 늘었는지 나도 정확히 모른다. 난 이 마을의 그저 그런 존재에서 이제는 첫손가락에 꼽는 거부가 되었다. 이 일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 녀석이다. 예전과 크게 변하지 않은 상황에 달라진 요소는 야곱 하나밖에 없다. 주변 상황이나 시기가 좋았다고 하기도 어려운 것이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이 기회를 더욱 놓칠 수 없다. 우리 가문에 이런 복덩이가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니 한껏 활용해야 한다. 우리가 녀석에게 더 이상 제시할 수 있는 유인책이 없다. 여기가 고향이 아니니 언제 떠나겠다고 나설지 모른다. 그 녀석이 예뻐서가 아니라 우리가, 내가 필요해서 잡아두는 거다.
녀석은 잘 될 것이고 또 잘 되어야 한다. 그의 어머니가 내 동생이고 내 딸들을 녀석에게 주었으니 그가 어려움에 빠지면 곧 내 피붙이들이 고생해야 한다. 이제는 상하관계가 아니다. 다만 서로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해 내가 터놓고 말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도 아직은 오늘 같은 어수룩한 면이 녀석에게 있어서 상대하기 수월하다. 그런 면에서는 내 아들들보다 더 마음이 편하다. 이 지역에서 살아온 이들은 계산이 빤해서 내게만 수지맞는 일은 할 수 없다. 서로 이리저리 얽혀 있어 어떤 일을 내 쪽만 유리하게 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뒤에 있는 우리를 의식해 이 녀석에게 함부로 하지 않으니 내 일을 믿고 맡길 수 있고, 우리 내부적으로는 그 녀석이 소수니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래저래 야곱이 여기 온 것은 근래 들어 우리가 누리는 가장 큰 행운이다. 오늘의 계약은 대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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