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들이 필요해(라헬)
언니는 아들이 넷이나 된다. 큰 아들은 벌써 대여섯 살이 되어 심부름을 곧 잘하고 그 아이들로 집안이 북적거린다. 언니네는 활기가 넘치는데 우리 집은 적막하다. 남편도 아이들 핑계를 대며 언니에게로 자주가고 때로는 우리 집에 있을 때 아이들이 찾아와 떼쓰듯 가자고 하면 못이기는 척 가기도 한다. 조카라지만 언니네 아이들이 밉살맞고 부럽다. 언니는 넷이나 아들을 낳는데 왜 나는 하나도 못 낳을까. 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한없이 속이 상한다.
얼마 전에는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 뭐라도 어떻게 해보라고 했더니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그가 어쩔 수 없다는 걸 나도 안다. 하지만 언니네 아이들 소리만 들어도 신경이 곤두서고 패배감이 든다. 아이들도 남자들이라 활달하지만 그들과 함께 혹은 아이들을 찾는다는 핑계로 언니가 자주 내게로 온다. 예전과 달리 언니에게서 당당하고 은근히 나를 무시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마치 나를 주눅 들게 하려는 듯 오죽 못났으면 아이도 하나 못 낳느냐고 하는 것 같다.남편에게 당신과 늘 함께 계시며 기도를 들으신다는 하나님께 기도라도 해달라고 하니 늘 하고 있단다. 아이도 낳지 못하는 아내가 살아 뭐하느냐며 죽겠다고 했더니 그런 것은 하나님의 권한이지 우리 일이 아니라고 화를 벌컥 냈다.
뾰족한 수가 없다. 너무 답답해 여종에게도 이야기를 해 보았다. 그녀라고 신통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녀와 이야기하다가 기막힌 방법이 내게 떠올랐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내 사람을 통해 대리출산을 해 내 계보로 삼는 것 말이다. 한 번 더 그녀를 불러서 넌지시 의견을 비쳐 보았다. 무슨 말인지 알았을 텐데 아무 말이 없다. 분명하게 내 생각을 밝혔다. 언니는 아들을 넷이나 낳아서 남편의 사랑을 가로채고 나를 무시하는데 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니 내 대신 아이를 낳아줄 수 없겠냐고 했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펄쩍 뛰더니 널리 행해지는 관습 아니냐고 했더니 그래도 주인어른과 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냐고 했다. 이쯤 되면 여종으로부터는 반허락을 받은 셈이다. 그 아이가 온전한 내 아들은 아니지만 내 편에 속하고 나를 이해해줄 것이다.
이제 그 사람은 언니에게 가서 아이들과 함께 있다가 밤이 늦어서 내게로 온다. 그런 남편에게 며칠 전 내 생각을 얘기했더니 알기 힘든 표정을 지으며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했다. 둘이 사이가 좋으면 되지 아이가 꼭 필요하냐는 거다. 언니한테 그렇게 자주 가는 게 아이들 때문이지 않느냐고 했더니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할 말이 궁한가 보다. 여종과는 이미 얘기가 다 됐다고 하니 무척 놀라는 눈치다. 그녀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더냐는 질문에 오히려 내가 부탁을 했다고 했다. 그런 요청을 여종에게 하기가 쉬운가, 난 자존심이 없는 여잔지 아느냐고 한참 목소리를 높였다. 남편도 내 절박한 처지를 이해하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도 생각할 시간을 달란다. 그 애기 자체가 이미 허락과 다름이 없어 보인다. 이 일이 나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
이런 일은 말이 나왔을 때 확실히 끝을 보아야한다. 여종에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날을 잡자고 했다. 남자들과는 달리 우리 여자들에게는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아무 때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그녀의 형편이 우선이다. 그녀는 한 번 더 꼭 그 방법밖에 없느냐며 난처한 얼굴이다. 나는 그것이 나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했다. 오늘은 어떤가, 내일, 모레…, 했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열흘 후로 날을 잡았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면서보니 그녀는 조금 들뜨고 상기된 표정 같았다.
생각보다 이 일은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남편에게 수시로 약속된 날짜를 알려주었다. 같은 말이 반복되니 남편은 알았다고만 한다. 왠지 서운함이 밀려왔다. 내가 계획을 세우고 추진을 하면서도 정작 나는 소외되고 비참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정작 연관된 이들은 조용하고 나만 분주하다. 여종을 확인하고 챙기면서도 서로 말이 없다. 어제는 아침부터 남편에게 다짐을 해두었다.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드디어 어제 무사히 큰일을 치렀다. 내 남편을 여종에게 데려가는 것도 다시 한 번 그녀에게 부탁하고 남편을 두고 오는 것도 거듭 할 일은 아니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들이 하고 있을 일을 상상하는 것은 끔찍하기만 했다. 마치 모든 것이 뭔가 잘못 산 내 삶에 대해 벌을 받는 것 같다. 아까 점심때쯤 여종에게 갔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얼굴을 붉혔다. 다 잘 되었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그녀와 잠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녀가 성공적으로 잉태하고 아들을 낳아 내게 안겨주기만 바랄 뿐이다. 그런데 나는 정말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것인가. 허전하고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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