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향한 눈길을 느끼다(라헬)
삶의 순간순간이 즐겁다. 생(生)이 환희라는 것을 요즘 들어 실감하고 있다. 내 주변을 부드럽게 파고드는 눈길을 언젠가부터 느끼고 있다. 들판에 있어도 물을 길어도 양을 몰거나 집에서 음식을 할 때도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내게로 향하는 눈길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을 처음 내게 알려준 것은 언니였다. 언니는 결혼적령기를 지나고 있다. 언니에게 결혼중매가 들어오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때도 내게로 향한 것이 배는 되었다. 부모님은 매번 뭔가 아쉬워하면서 에둘러 거절하셨다. 그런 일이 몇 번 있고 나서는 이제는 잠잠해서 언니와 부모님 모두가 약간은 초조해 하는 모습이다. 언니는 며칠 전 내게 다가와 그 사람이 나를 보는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언니가 지나치게 예민한 것이지 나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말은 했지만 나를 향한 그의 관심을 전혀 모른 것은 아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로는 매사에 그 눈길이 느껴진다. 때로는 내 스스로 그 눈길을 찾아보게 되기도 하고 확인하고 안심하기도 한다. 그는 나를 볼 수 있는 반경 안에 자주 머물곤 한다. 들어내 내색하지는 않지만 그가 싫지만은 않다. 그는 건강하고 성실하다. 자신이 맡은 일은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이루어낸다. 부모님도 그에게 적지 않은 호의를 갖고 계신다. 아마도 언니와 평생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인가 하고 살피는 듯하다. 어머니는 그런 눈치를 언니에게 준 것도 같다. 언니는 관심을 가지고 그를 살피다가 내게로 향하는 그의 의도적인 눈길에 상당한 서운함과 질투를 느낀 듯하다. 얼마 전에 우연히 부모님이 그에 관한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여러모로 그만하면 제 앞가림은 할 것 같으니 신경을 써보자는 투였다. 언니와 맺어주고 싶은 마음인가 보다. 하지만 정작 그의 마음은 언니가 별로 인듯하다. 한두 번 의도적으로 언니와 그를 이어 주려는 말과 행동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는 내 눈치를 살피고 내게로 오려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순간에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음이 내게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가끔은 그의 행동에 화답하는 내 반응을 그가 원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조심스럽기도 하고 가족들의 눈치도 보게 된다. 얼마 전에 어머니에게 넌지시 반응을 떠 보았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았다. 지나가는 듯 얘기했지만 그래도 언니가 먼저 가야하지 않느냐는 거였다. 내가 그런 선택이나 결정권이 그에게 있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였다. 은연중에 질투심과 함께 내 편에서도 조금은 분명하고 적극적인 의사표현이 필요할 것 같았다. 내 주변을 맴돌며 따듯한 눈길로 나를 인정하고 지원하다가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달려와 도와주곤 했는데 어제는 고마움을 표현하고 내 땀 씻는 수건을 전해 주었다. 그의 표정이 환해지면서 나보다 더 고마워하면서 슬며시 내 손을 잡았다. 모르는 척하고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그 후로 내게로 향하는 그의 눈길이 더 확신에 차고 부드럽고 따듯해졌다. 전에는 그의 일방적인 눈길을 내가 무시했다가 어느 순간부터 묵인해 왔다면 이제는 서로 화답하고 주고받는 모양새가 되었다. 주위에서도 우리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이 전해져 온다. 언뜻언뜻 우리에게 던지는 말이 공공연히 인정해주는 분위기다. 부모님도 여러 경로를 통해서 언니가 아닌 나와 그가 그런 사이라는 것을 알고 지켜보는 것 같다. 그분들 편에서 보면 언니와 맺어지는 것이 최상이지만 나와 이어지는 것도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언니에게 미안함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언니는 늘 내게 치이는 형세다. 부모님은 언니 편을 들지만 동네 사람들이나 청년들이 언니보다 나를 더 좋아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 이유도 어쩔 수 없는 타고난 서로의 차이임을 안다. 눈길이 가고 얘기해 보고 싶은 상대가 확연히 정해지는 것을 어찌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 때문인지 언니는 자신감이 없고 오히려 열등감과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동생인 내가 보아도 언니는 착하고 인내심이 대단하다. 내가 따라가지 못할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들로부터 정당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사람은 내 주변에 머물며 나를 지켜보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지만 나는 그가 하는 일을 바라보고 내게 보내는 눈길을 받는 것이 행복하다. 서로가 눈길을 주고받고 화답하는 순간순간이 즐겁다. 그가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지 모르지만 오래도록 머물기를 바라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면 같이 가야할 것 같다. 어쩌다 낮에만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밤에도 그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그다지 달라질 것 없는 내 모습에 그는 날마다 조금이라도 달라진 내 모습을 찾아내고 들판과 냇가에서 들꽃과 예쁜 조약돌 같은 것들을 가져다 건네며 나를 기쁘게 한다. 그의 잘난 것 없어 보이는 그렇고 그런 모습들이 점점 정겨워 보이고 좋아져 간다. 많은 이들이 놀리듯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니 하루가 다르며 더 예뻐진단다. 내가 봐도 예전과 달리 더욱 피어나는 내 모습이다. 요즘은 매순간이 행복한 설렘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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