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치 않은 나날
께름칙했다. 왜 하필 그날 택시를 탔나. 쉰 세 사람이라니 답답하다. 언제부턴가 주변을 뒤덮고 있던 바이러스가 실제적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청주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택시운전사가 그 중 한 사람이란다. 그날 백제유물전시장 부근에서 타서 주민 센터 앞에서 내렸으니 안심할 수 없다. 삼십대 중반이라 하고 마스트를 썼다고 하는데 내가 탔던 택시기사가 영 떠오르지 않는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방법이 없었다. 며칠 지내다 증상이 나타나면 진료소에 가보는 게고,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자가격리(自家隔離)하는 자세로 두 주간을 지내보자고 결심했다. 방송은 종일 ‘코로나19’ 특집을 지치지도 않고 내보낸다. 확진자가 늘어가니 진료소에 직접 찾아가지 말고 며칠 경과를 보고 콜 센타나 지역보건소에 문의 후에 지시를 따르란다. 가족들에게 택시 탄 얘기를 하니 기다려보는 수밖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단다. 그 차를 타서 감염이 되었으면 이미 가족들도 전염이 되었을 테니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한다.
답답하다. 몸이 불편한 것도 같고 머리가 아픈 듯도 하다. 괜히 숨쉬기가 약간 불편하고 가슴도 뻐근한 것 같다. 코로나19라는 질병에 왜 그렇게 민감하고 심각하게 반응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며칠 전만해도 확진자도 30명을 넘지 않았고 그들의 상태도 안정적이었다. 독감 없이 지나간 겨울이 몇 번이나 되었나. 그때마다 수만의 사람들이 걸렸었고 별일 아니라는 듯 지나가지 않았던가. 병들도 진화라니 못 보던 종이 나타날 수 있고 그런 것에는 백신이나 약이 없는 게 당연하지. 기력이 쇠하고 심한 병을 앓고 있던 노인들은 감기로 시작해서 생명을 잃기도 하겠지. 주변에 물어보아도 심각하게 여기는 이들이 별로 없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상황이 급변했다. 신천지 소속 감염자 한사람이 지역모임에 참여한 것이 발단이 되었는지 자고나면 거의 두 배로 확진자가 늘어나고 그들의 동선에 포함되면 곧바로 폐쇄되는 일이 되풀이 되었다. 아무 대책도 없이 날벼락을 맞는 격이다. 한번 그렇게 알려지면 정상으로 회복하기가 지극히 어려울 것 같다. 더 무서운 것은 확진 전까지는 본인도 알기 어렵다는 게다. 또한 감염이 되었어도 확진 전에는 아무런 조치가 없으니 내 주변에 어떤 이가 위험한지 모른다는 게다.
가까이 있어도 위험하고 식사만 해도 감염우려가 있단다. 실내 공간이나 식당이 안전하지 못하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안전하지 못하니 편안치 못하다. 이런 시기에 내가 감염되었을지 모른다니 불안하기만 하다.
정부는 코로나19의 감염병 경보단계를 심각으로 격상했다.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른 것이다. 유치원부터 초중고교까지 개학이 일주일 연기되고 공공시설이 보름가량 임시 휴관을 한단다. 보이지 않는 적을 맞아 쉽지 않은 싸움을 하는 형국이다. 작은 모임들이 줄줄이 취소된다. 국제적 스포츠이벤트가 연기되고 많은 이들이 즐기는 운동경기가 관중 없이 치러진다. 사망자가 늘어나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내가 느끼는 몸 상태도 왠지 불안하다. 이런 때 모든 것에 답을 가지고 있는 게 인터넷이니 검색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청주 코로나19 택시”를 쳤더니 주르르 쏟아져 나온다. 아직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21명을 찾는 내용과 함께 카드와 현금 결제자에 관연된 사항이 나타난다. 그날 나는 4,700원을 카드로 결제했었다. 얼마나 투명한 사회가 되었는지 승⦁하차위치와 요금, 그리고 카드 끝자리 번호와 금융사까지 공개되어 있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승하차위치를 눈으로 빠르게 훑었다. 없다. 조금은 진정이 되어 천천히 기록들을 살핀다. 역시 없다. 내가 내렸음직한 시간을 살펴도 없다. 그때에야 내 집 근처에서 타고 내린 사람이 있는 가도 살필 수 있었다.
걱정을 덜어주는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했더니 다행이라는 반응들이 돌아온다. 조금 지나니 딸아이도 어떻게 명단을 찾았는지 확인해보라고 연락을 했다. 명단에 없다고 하니 안심을 한다. 그 택시를 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내 의지가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조금도 없는 듯하다. 버스나 택시를 타려했는데 쉽게 오지 않아 걸어오던 중이었다. 빈차를 보고 잡으려 했지만 한두 대는 그냥 지나쳐갔다. 확진자의 차가 그 주변을 지나고 있다가 차를 세웠으면 아무 거리낌 없이 타고 내렸을 것이다. 어쩌면 삶에 중요한 운명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결정되는 게 너무도 많은 것 아닌가.
내가 그 차를 타지 않아서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나니 불편한듯했던 몸이 아무렇지도 않다. 머리도 개운하고 가슴도 편안하다. 상황에 따른 심리적 요인이 몸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물러가지 않고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한국인의 입국을 거부하는 나라들이 25개국에 이른단다.
무력하다. 예상하지 못한 세균에 인류가 이렇게 맥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니, 평온이 깨지는 것이 얼마나 쉬운가를 생각한다. 편치 않은 나날들이다. 이 재앙이 지나가기까지 돌아다니지 않고 할 일을 하며 차분히 지내야겠다. 내실을 기하라는 시간으로 주어진 것인지도 모르니까.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하루빨리 좋은 소식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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