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활

20년 동행의 끝

변두리1 2020. 3. 13. 12:13

20년 동행의 끝

 

함께 한 오랜 세월, 너무 짧은 청산이다. 아직 정정하지만 나이가 많고 그보다 사회적 눈초리가 따가웠다. 미세먼지가 심할 때는 벌금을 물린다고도 했다. 스무 살이 꽉 찼지만 15km도 달리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기름이 조금씩 새서 도로에 흔적이 남아 정비소에 갔더니 그냥 타라했다. 최근에는 핸들이 버겁고 문도 말썽을 부리긴 했다. 차량오일을 교체할 때가 지났다. 몇 달 전에는 점심을 먹고 차로 갔더니 모르는 이가 차 앞 전화번호로 연락을 하려했다. 자신이 회전하다 긁어 내 차가 조금 들어갔다고 해 20년 된 차니 그냥 가라고 하니 여러 번 감사하다고 하고 헤어졌다.

조기 폐차랄 수 있을까. 선정은 되었지만 너무 적은 액수여서 다음 검사기간까지라도 타려고 했다. 폐차하라는 기간이 지났다. 누가 대놓고 뭐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부담스러웠다. 가족들은 다른 중고차를 사자고 한다. 차를 없애고 차 없이 지낼 수 있는지 얼마간 지내보고 싶다. 폐차를 결심하고 아내와 마지막 한 바퀴를 돌았다. 20, 돌아보니 긴 세월이다. 최근에 주로 다녔던 곳을 되짚어 다녀왔다. 기능에 별다른 이상이 없다. 그동안 큰 고장 없이 말썽부리지 않고 함께 해준 것이 고맙다. 아쉬움과 게으름에 이틀을 미적거렸다. 오전을 보내고 오랜 친구 아니 내 몸의 한 부분 같았던 차를 폐차하러 나섰다. 그동안 내 삶의 자세를 보여주듯 돌아올 차비를 챙기지 않았다는 게 생각났다. 다시 한 번 더 집에 들렀다.

가는 길은 함께 하지만 같이 돌아올 순 없을 게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잘도 가고 있다. 20여분 걸릴 마지막 운행 길을 미끄러지듯 간다. 대기소에 세우고 사무실에서 서류처리를 한다. 밀린 환경개선부담금을 정산하고 정산금을 받아 내 몸의 일부 같았던 차를 돌아보지도 않고 걸어 나온다. 거리에는 내가 탈 수 있는 차가 없다. 버스 정류장을 보아도 주요도로가 아니어서 언제 올지 알 수가 없다. 터덜거리며 걷는 내 앞에 택시도 쉽게 멈추지 않는다. 카카오택신가 뭔가 하는 바람에 그냥 가는 빈차 같아도 잡기가 쉽지 않다. 한 시간도 더 걸릴 것 같은 길을 아무 계획 없이 타박타박 걷는다. 20년의 첫 부분이 떠오른다. 찻값을 한꺼번에 치르지 못해 할부로 했더니 한 달만 밀려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다. 무슨 캐피탈인가는 연체가 계속되면 차를 회수한다고 연락을 해오고 돈 들어갈 곳은 많고 나올 곳은 적었다.

2004년인가, 3월이 되었는데도 청주에 많은 눈이 내린 때가 있었다. 임신 중에 있던 한 성도가 불안하다고 자주 심방해주기를 원했다. 목회자라는 직분이 성도가 와달라고 하면 어떤 일을 하다가도 달려가는 게 근본이다. 그 때도 눈길 운행을 무척 싫어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몇 번 눈길에 고생을 해서 아예 삽을 차에 가지고 다녔다. 그 날은 눈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차가 도로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어서 아예 도로 한편에 두고 왔다가 그 다음에 가져왔던 기억도 있다. 클러치가 고장 나 대로에서 쩔쩔맬 때도 있었고 감속기가 말을 듣지 않아 앞차를 받을 뻔했던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 자녀들이 중고생이었을 때는 등교시간이 촉박하거나 귀가가 걱정되면 태우러 가곤 했다. 나뿐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추억이 가득한 차였다.

둘째는 근처 공업고등학교에서 시험을 칠 때 그 차로 가고 시험을 위해 머물며 기도하기도 했고, 첫 직장을 위해 제천도 함께 가고 이삿짐을 나르기도 했다. 거리에 나서면 크기로 주눅 들지 않게 해주었다. 맏이가 차를 소유해 내 차의 효능과 위세가 줄긴 했지만 기여한 공로로 가족들의 신뢰를 받았었다. 내가 그곳에 있다는 증거가 되어주었던 차가 이제 사라졌다. 내 발을 넘어 날개 역할을 해주었던 존재가 사라진 것이다. 울적하다.

살아있다는 게 무얼까. 차는 그동안 살아있었던 것일까. 차도 감정이 있었을까. 내 마음에 따라 혹은 내 상태대로 내 감정을 드러냈던 것이겠지. 그 배에 가득 먹을 걸 채워주면 신나하고 더 잘 달리던 것 같던 것은 그냥 내 기분이었을 게다. 20년 세월을 한 번도 내 뜻을 거스르지 않고, 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한 자신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리고 가는 내게 원망은 하지 않으려나. 늘 함께 하던 차 없이 혼자 돌아오는 길에 찬바람이 분다.

내 앞에 서리라는 기대 없이 손을 들었더니 택시가 선다. 걸었던 길보다 훨씬 먼 길을 짧은 순간에 데려다 준다. 예상보다 빠르게 돌아온 내게 아내는 간 일이 잘 되었느냐고 묻고 나는 다 잘되었다고 대답한다. 차가 늘 서있던 자리가 텅 빈 것이 눈에 들어온다. 허전하다. 오늘 오후의 한 때가 원활하지 못했다. 제대로 기능하던 한 부분이 고장 난 것만 같다. 우릉우릉 소리가 유난히 커서 내가 도착했음을 알게 했고 많은 동료들이 승용차로 바꾼 후에도 내 곤고함의 한 단면을 나타냈던 큰 차의 사라짐이 못내 아쉽다.

그 차와 함께 나의 한 시대가 저물었는지 모른다. 거듭 생각해도 20년은 긴 세월이다. 이제 다시 여러 성분으로 돌아가 또 다른 모습으로 이 땅에 나타나 내게 했듯이, 새로운 주인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기를. 질긴 인연이 있다면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다시 내 앞에 나타나 서로 모르는 채 같이 지내게 될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동안의 충성스런 수고가 고맙고 또 감사하다. 우선은 어디서든 일단 편히 쉬기를, 거듭 고마움을 담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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