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속에 진달래 피어도
추운 곳에 줄서기 싫어 마스크를 구매하지 않고 최소한의 사회적 거리두기에 협조하려니 만날 사람도 없고 가는 곳도 없어 매일을 집안에서 산다. 우울하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하늘 한번 올려다보지 않고 지내는 것 같다. 시원한 바깥공기 그립고 산과 하늘이라도 보고 싶어 아내와 나들이를 나섰다. 피반령 넘어 보은 쪽으로 가다보니 처조부께서 사셨다는 동네가 나왔다. 이제야 아는 이 하나 없지만 특별히 갈 곳도 없으니 마을에 들어가 보았다.
낯선 이가 나타나자 동네 개들이 짖어댄다. 마을 경로당은 질병확산을 막기 위해 폐쇄되어 적막하고 밭 너머 산에서 잘라냈음직한 굵은 나무들이 무더기로 쌓여있다. 동네 초입 마당 한 모퉁이에 야트막한 우물에서 물이 흐른다. 아내는 졸졸 흐르는 물에서 맑은 봄기운을 보는지 신기해한다. 좁은 골목길을 접어드니 폐가 한 채가 보인다. 방송에서나 보았음직한 한지로 된 문과 낡은 기와지붕, 살던 이들은 무슨 사정이 있어 어디로 떠나갔을까. 그들이 떠나던 날, 희비의 인연이 겹쳤을 이들 앞에 의연함을 보여주려는 떠나는 이들과 서운함으로 앞날의 행운을 빌었을 이웃들을 연상하게 된다. 어느 도시 번화한 곳에서 바쁜 삶 속에 가끔은 한갓진 이곳 생각을 하리라.
밭인지 과수원인지 꽤 넓은 터 예쁜 집이 자리한 곳에서 외지인을 보고 연만한 이가 가까이 다가온다. 아내가 할아버지 얘기라도 하려나 했더니 말이 없어 서로 멋쩍은지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다. 주민이 얼마 되지 않을 그 곳에 성곽 같은 집이 있다. 황토색 벽돌로 담을 쌓고 붉은 벽돌로 지은 크고도 넓은 집이다. 동네와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위화감을 주는 것 같은 집을 지나니 산자락이 나타나고 쌀쌀한 바람에 차르르 소리를 내며 한 무리의 대나무가 모습을 내민다. 칙칙한 듯 밝은 녹색 줄기와 잎들이 땅에서 생기를 퍼 올려 주변에 퍼뜨리는 것 같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잎과 이파리에 부딪쳐 빛나는 햇살은 대나무의 품위를 보여주는 것 같다.
마을의 끝집이 보인다. 넓은 밭에 물결처럼 푸른빛이 넘실거린다. 아내는 겨울을 견딘 보리밭일 거라 했지만 봄풀들이 돋아난 것이었다. 봄이 다가와 그곳에 살고 있었다. 푸른 하늘을 가로지른 빨랫줄에 옷가지들이 흔들리고 있다. 그들의 삶에 무단으로 끼어드는 것 같아 그만가기로 했다. 그때까지 짖지 않던 중강아지가 무료한 일상을 참기 어려운 듯 몇 번 짖다가 반응이 없으니 다시 잠잠해졌다.
아내는 문득 무엇인가를 찾은 것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아 돌나물이라며 연녹색 작은 풀들을 부지런히 뜯어 한 움큼을 챙겼다. 돌아 나오는 길에 커다란 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마을의 영고성쇠를 지켜본 듯 족히 백 살은 되어 보인다. 한쪽에 금줄을 둘러놓은 것이 누군가 그 나무의 신령함에 의지하는가 보다. 상대적으로 도시에서 온 이들을 겁주려는 것처럼 찬바람이 불어온다. 차가움 속에 섞여오는 알싸함이 있다.
알싸한 찬바람에 어린 날의 내 모습이 긴 세월을 건너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해거름에 혼자 놀기에 지친 조그만 소년이 초가집을 나와 야트막한 산을 오른다. 산의 한 면이 밭으로 일궈지고 콩이나 고구마가 심겨져 있는 밭두렁을 따라 폴짝거리며 얼마쯤 가면 좁다랗게 평지가 드러난다. 동네가 훤히 보이는 그 곳, 가끔 동네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산 위 공터다. 동네로 들어오는 다리가 보이고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통행하는 이들이 작은 점으로 느껴진다. 그 풍경에 지루하면 눈 아래 펼쳐진 지붕들을 본다. 기와집, 판잣집, 초가집. 초가집 중에는 지붕을 새로 이지 않아 색이 달라 보이는 집도 있다.
붉었던 노을이 지고 사방이 어두워지면 조금씩 몸이 추워져 온다. 여기저기굴뚝에서 저녁 짓는 연기들이 뭉실뭉실 오르고 발밑으로 어둠이 밀려오면 저린 발을 내디디며 집으로 온다. 어두운 창에 연기 오르지 않는 굴뚝, 가까이 오면 듣는 이 없는 스피커 소리만 윙윙거린다. 그 마당 구석에 한참을 앉아있으면 어둠 속에 하나둘 가족들이 모여든다.
그때에 미래는 막연했다. 모두가 그렇게 사는 것이려니 생각하고 세월이 지나면 나도 어른이 되려니 했다. 가난했지만 가난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좋은 옷, 좋은 가방에 좋은 신발을 신는 또래들이 있었겠지만 나는 구별하지 못했다. 하루하루가 그저 평화로운 날들이었다.
반백년의 세월이 지나 오늘에야 알싸한 바람 속에 그 옛날이 다가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떻게 유년의 모습을 잊고 있었을까. 가끔씩 기억 속에 유년이 찾아왔지만 오래 머물지 않았다. 돌아보면 별스런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현실적인 분주함에 묻혀 유년은 밀려나 있었다. 이제도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현재에 몰입하는 삶을 살게 되리라.
겪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봄을 맞고 있다. 산과 들에는 푸른빛이 완연하고 햇살은 눈부셔도 좁은 꽃밭에 진달래가 분홍꽃잎을 드러내도 마음 속 추위가 가시지 않고 봄의 설렘은 찾아오지 않는다.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다시 답답함이 목줄을 타고 가슴으로 내려간다. 어쩌란 말인가 이 봄, 이 답답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