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각

소나기를 그리며

변두리1 2019. 7. 30. 10:26

소나기를 그리며

 

  장마철이라지만 비는 시원스레 오지 않고 날씨만 후텁지근하다. 구름마저 부옇게 끼었으니 한줄기 비라도 뿌려주면 좋겠다. 갑자기 후두둑 내리다 언제였느냐 싶게 멈추는 게 소나기다. 반항기가 넘치는 십대엔 그 비를 쫄딱 맞고 걷곤 했다. 하늘이 번해지고 길들은 곧 말라도 개울엔 물이 불곤 했었다. 여름에만 소나기가 내릴까 돌아보니 봄과 가을에도 갑작스런 비들은 쏟아지고 겨울에는 눈이 되어 내린다. 언제든지 그들은 이 땅에 쏟아져 여러 사건들을 만든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만 소나기라 부를 수 있을까. 좋은 일, 나쁜 일 가리지 않고 돌연 들이닥쳐 어렵게 만드는 것들은 다 그렇게 일컬을 수 있을 게다. 인생에 찾아드는 예측하기 어려운 불가항력 중 하나를 사랑이라 한다면 그것도 소나기처럼 어느 순간 갑자기 들이치는 게 아닐까. 어떤 심리학자는 그런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니라면서 그것은 오직 이성에게만 일어나고 짧은 기간 일어나는 황홀한 착각이라고 했다. 그들로 결혼에 이르게 하여 종족을 보존하려는 신이 부여하는 심리적 몰아현상이라 하겠다.

   다른 이들에게는 객관적으로 제대로 보이는 것이 그들에게만 무지개 색으로 찬란하게 덫 칠되어 보이는 게다. 그는 이런 사랑이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갑자기 다가온다고 했다. 흔히 하는 말로 눈에 콩깍지가 덮여 모든 것이 좋게만 보이고 상대와 함께라면 못할 게 없고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거다. 문제는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데 있다. 어느 순간 신비한 구름이 사라지고 콩깍지가 벗겨지면 이제는 모든 것이 굴절되어 시시하게 보인다.

   언제였느냐는 듯, 하늘이 훤해지고 다시 후덥지근함이 이어지는 밋밋한 날들이 지속되면 사랑과 환상으로 몸과 마음이 달아올라 비처럼 쏟아져 냇물처럼 차오르던 그 시절이 아련히 그리워진다. 퍼붓는 비를 피해 처마에 머물다 젖은 옷 말리려 들어간 곳에서 하룻밤 달콤함으로 소화(素花)를 세상에 내어놓고 그 소화가 다시 아들 하섭과 사랑에 빠지는 운명의 굴레 같은 시작도 쏟아진 빗줄기가 원인이었다.

   마을의 양반이었던 하섭의 부친은 그 사실을 끝까지 감추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때로 그 순간을 부지중에 떠올리고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을까. 사랑도 용기가 필요한 듯하다. 남몰래 마음을 키우고 그리워하다가도 막상 상대가 좋은 감정을 품고 다가오면, 많은 가능성이 닫히고 묵직하게 다가오는 현실의 책임감으로 뒤로 물러서던 일이 여러 번이었다. 강한 힘으로 밀려오는 거센 감정의 소낙비는 도덕의 두꺼운 껍질로 막아내곤 했었다.

어느덧 많은 세월이 지났다. 십대와 이십대에 이루지 못한 과업이 아직 내 잠재의식에 남아있지는 않으려나. 소나기가 여름에만 쏟아지는 게 아니라 언제나 몰아칠 수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되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욕망을 꿈과 예술로 쏟아낸단다. 그 통로를 거치며 욕구가 충족되고 사회는 혼란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기에 문학과 영화는 일상의 탈출과 일탈을 그토록 부추기고 딴 세상을 보여준다. 그 끝은 예술적 맺음이 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엔 환상으로 남는다.

   감정의 소나기가 몰아칠 기회를 우리 사회는 점차 많이 만들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라는 전언을 쏟아낸다. 어쩌라는 것인가. 그 거친 물살에서 갈등하는 이들을 잡아주는 것이 믿음이요 신앙이다. 생각해보면 일부일처제는 자연스럽지 못하고 자연계의 흐름에 맞지 않는 것 같다. 이 지구상의 생태계에 이런 모습을 보이는 생물들이 얼마나 있으려나. 아마도 이 제도가 확립되기에는 여러 종교적인 노력과 숱한 희생이 밑거름이 되었을 게다. 서구의 흐름, 가까이는 우리의 높은 이혼율이 이를 보여주는 것인지 모른다.

   고대로 갈수록 가뭄이 들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곤 했다. 임금을 비롯한 그 옛날 무속의 사제들은 가뭄이 심할수록 지극한 정성을 들였다. 그 제사 끝엔 비가 내렸다. 비가 올 때까지 제사를 며칠이고 연달아 드린 것일 게다. 문학과 예술 속에서 비는 더 자주 내리고 오늘의 젊은이들은 화면과 문학에서 현실을 굳이 분리해내려 하지 않는다. 결과만을 원하는 듯, 과정을 참고 겪어내기를 힘겨워한다. 앞뒤를 모두 잘라내 원하는 부분만 찾고, 기다리기보다 달콤한 순간만 누리고 싶어 한다.

   한줄기 소낙비가 쏟아지면 개울물이 늘어나고 냇가에 너부러졌던 온갖 것들이 탁류에 쓸려 내려간다. 내 마음과 주변에 붙어있던 끈적한 것들과 종류를 알 수 없는 많은 욕망들을 함께 쓸어갔으면 좋겠다. 내 어릴 적 보았던 장독대 무너지고 간장독이 쓸려가던 풍경들, 어디서 왔는지 지대 높은 우리 집 마당에서 꿈틀거리던 손가락만한 물고기 몇 마리, 겉흙이 씻겨나가고 모습을 드러냈던 붉은 진흙들, 빗방울에 흔들리며 밤새 시달리다 아침햇살에 아기 손 같은 맑은 잎들을 보여주던 나팔꽃들이 추억 속에 그립다.

   고개 들면 잿빛구름이 가득한 하늘 아래로 옛 토기의 빗살무늬처럼 쏟아지는 빗줄기, 그 속을 함씬 젖은 생쥐처럼 터벅터벅 걸어오는 내가 보인다. 맞은편엔 걱정스런 표정으로 어디 비 피할 곳이 그리도 없더냐는 어머니의 책망과 사랑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무 말도 못하고 절벅이는 운동화를 벗고 젖은 옷을 벗어던지는 십대의 철없는 소년이 서있다.

   왁자지껄 비 맞으며 함께 학교 문을 나서던 그 시절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흐리고 답답한 날씨에 한줄기 소나기가 그립고 그립다.


'변두리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게 향한 귀뚜리의 당부   (0) 2019.08.17
‘고해’조금 낫게 건너기   (0) 2019.08.01
말과 글   (0) 2019.07.17
결정적 순간이 온다   (0) 2019.07.01
서러운 퇴장  (0) 2019.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