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단순하게, 한 걸음씩, 내 길 가기

변두리1 2018. 10. 25. 09:30

단순하게, 한 걸음씩, 내 길 가기

바람의 딸, 한비야의 세계여행 -

 

   비야, 영세명이라고 한다. 비야(飛野)라는 한자가 인상적이다. 들로, 야생으로 날아간다는 의미니 오지 여행가에게 어울린다. (), (), ()의 상대개념이 야()니 쉬운 길은 아니다. 야로 날아飛野인정받기가 아주 어려운데 유명인이 되었으니 대단하다. 다른 이들보다 한 발씩 늦은 것 같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전문인으로 살아가니 행복하다고 한다. 서른여섯에 시작해 여섯 해 가량, 걸어서 지구를 세 바퀴 반을 돌았다니 의지의 한국인이다. 땅끝마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두 달여의 국토종단으로 세계 일주를 마무리한 기록을 담은 책 다섯 권 읽기도 만만치 않았다.

   앞뒤로 배낭을 메고 다니는 모습을 연상하면 달팽이 혹은 거북이가 떠오른다. 여섯 해 가량 세계를 돌 때, 저자에게 꼭 필요했던 것들만을 챙긴 최소한이 두 개의 배낭이었다. 어딜 가든 심지어 그곳이 최대의 오지라 해도 배낭 두 개면 될 것을, 현대인들이 소유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아닌가. 그녀가 케냐에서 만났다는 흑인의사 디다, 작은 집에서 최소한의 가구와 집기류만 두고, 고향사람들을 도우며 산다는 그의 말과 삶이 마음에 남는다. 한비야가 들려주는 한 마디, 배낭에 넣을까 말까 망설여지는 건 무조건 빼고, 쓸모없다 싶으면 다른 여행자와 바꾸든지 팔아버리란다. 단순함이 힘이다. 그녀는 스스로 여행의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충실히 지킨다. 육로로 가기, 한 나라에 한 달 이상 머물기, 오지에서 현지인과 똑같이 지내기, 그 원칙들이 고민을 줄여주고 삶을 단순화해 주었다.

  오지에, 가진 것이 적을수록, 정이 많고 자신의 것을 나누려 한다는 말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그들이 세속에 덜 물들고 사람을 더 그리워하는 게 아닐까. 며칠 머물며 그들과 삶을 같이 한들, 어떤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서로의 일에 분주해서 하루에 몇 마디 말도 나누지 못하고 얼굴을 대하지도 못하는 도회지의 가족들을 생각해 보게 한다. 헤어질 때, 보여주는 그들의 애틋함에 산다는 것과 관계의 의미를 돌아본다. 여행이 풍물을 보는 것보다 사람을 만나는 거라는 의미를 알 것 같다.

  “해 보기나 했어국내 어느 대기업 회장이 잘 썼다는 어구다. 한비야도 이 말을 자주 한다. 해봐야, 안 된다는 것도 알 수 있단다. 지레짐작으로 안 될 거라고 판단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그 때 해볼 걸하고 평생을 후회하지만 그 당시에 시도해서 안 되면 후회가 남지 않는다는 거다. 그런 태도의 연장이겠지만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으면 해본다고 한다. 여행기에도 그런 기록이 여러 번 나온다. 안 된다는 걸 도전해서 이루어낸다. 때로는 큰 소리를 치고, 얼렁뚱땅 넘기기도 하면서 막힌 길을 뚫어낸다. 생각이 많으면, 안 된다는 게 많아지고 포기할 이유도 늘어난다. 저비용 여행을 하면서 어려운 일들을 자주 만나고 어떻게든 그것들을 해결해 내니 자신에 대한 믿음이 더 커져간단다.

  그녀가 싫어하는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여자가”, “이 나이에같은 것들이다. 여행경험을 통해 여자라서 특히 불리한 것들이 없었고, 오히려 여자여서 더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단다. 무슬림 지역에서 남녀와 모두 어울릴 수 있었고, 어디가나 경계심을 덜 일으키고 민박도 더 가능했다는 거다. 나이 탓도 하지 말라는 거다. 누구에게나 오늘이 생애에 가장 젊은 날이고 날이 갈수록 어떤 일을 이룰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니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는 게다. 그러니 여행을 갈까 말까 망설일 때에는 무조건 가라고 한다. 여행만큼 남는 일이 없단다.

  여행을 통해서 다양성을 배웠다고 한다. 현재 내가 알고 있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넓은 세상을 통해 확인한 거다. 지역과 환경과 민족성에 따라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나타날 수 있으니 자신과 다르다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모습일 뿐이라는 게다. ()의 기준과 음식들이 다양한 것처럼 전통과 풍습, 사고방식이 다른 것이 이상한 게 아니다. 함께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내 것을 고집할 게 아니라 그들의 처지에서 이해하려는 포용과 배려의 마음이 필요하다.

  일본에 나무젓가락을 수출하려고 중국의 나무들을 베어내니 홍수가 나고 그 물이 서해 염도에 영향을 주어 한국의 생선어획량이 줄어들었다는 걸 생각하면 이제 다른 지역의 일이 나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녀는 여행을 해보니 지구촌을 지나 지구가정처럼 느껴진단다. 어디에 가나 늙으신 분들은 부모님, 젊은이들은 형제자매, 어린아이들은 조카 같단다. 세계가 한 가정이고 각 지역이 안방, 건넌방, 주방, 거실 같단다.

  여행을 통해 얻는 것은 무얼까. 생각과 삶의 자세와 내공이 단단해지는 건 아닐까. 다른 것들을 보는 눈이 좀 더 너그러워질 것만 같다. 나는 여행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사람 사는 것 다 거기가 거기지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견문이 좁은 소견일 게다. 한비야는 좋은 면을 여럿 타고 났다. 몸이 건강해서 무엇이든 잘 먹고 잘 소화시키고 어디서든 잘 잔단다. 게다가 잘 걷고, 책을 보면 인간적인 매력과 친화력이 대단해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다. 그런 삶의 자세가 그녀로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을 하게 했을 거다.

  속도가 조금 느리다 해도 방향이 맞으면, 포기하지 않으면 목적을 이룬다고 한다. 빠르게 가고 앞서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거다. 저자가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산 우흐르 봉을 오르며 깨달은 것이란다. 천천히 에너지를 아껴서 가야 고산병에 덜 시달린단다. 일등이 아니라 꼴찌로라도 정상에 오르는 게 중요하니 바른 방향으로 제 속도를 잃지 않는 게 최상이다.

  내 삶에 욕심을 좀 줄이고, 주변을 힐끔거리지도 말고 내 속도대로 내 삶의 원칙을 지키며 한 걸음씩, 그러면서도 삶에 더 적극성을 가지고 내 삶의 남은 길을 타박타박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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