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어느 젊은 목사 아내의 수기

변두리1 2018. 10. 30. 19:18

어느 젊은 목사 아내의 수기

이건숙 단편 소설집을 읽고 -

 

  열한 편의 단편소설이 묶였다. 이 나라의 대표적인 교회의 사모였던 이제는 연세가 적지 않은 분 작품이다. 내 성격이 부드럽지 못하고 문학 분야에 문외한이기도 하니 그냥 내식대로 보게 된다. 기독교 소설이라 그런지 그다지 좋은 작품 같지 않은데 해설을 해준 분은 대단하다고 한다. 전문가와 문외한의 차이인가 보다. 작가의 작품이 무척 많다. 얼마나 열심히 사시는지 알겠다.

  크리스천 작가로서 더구나 목회자의 아내로서 쓰고 싶어도 못 쓰고, 드러낼 수 없는 것이 한둘이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세대가 달라서인지 같지 않음을 절감한다. 여러 작품의 끝이 허무하다는 생각도 든다. 너무도 간단히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마무리 되는 것 같아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해결이 안 되면 그대로 끝맺음을 해도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대체적으로 받는 느낌이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교훈하고 가르치려는 것 같아 작가의 직업의식 같기도 하고 내내 불편하기도 했다.

  〈간음한 남자는 제목이 자극적이지만 현실에서 기독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것이 노장답다. 교계에서 피할 수 없는 고민이요 해결책이 쉽지 않다. 교회의 역사가 조금 더 깊어지면 모두의 노력과 반성으로 교회안과 밖의 생활이 일치되어 갈 것이다. 작품의 시기에서 세월이 더 흐른 오늘날만 해도 달라진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이런 문제가 완전히 없기를 바라기는 어렵다. 마지막 부분에 내가 나서서 성경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듯한 장면은 부자연스러웠다. 꼭 그럴 개연성이나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그냥 그 장면을 덤덤히 바라보는 것으로 족하지 않았을까.

  〈나와 함께 춤을은 여성작가이기 때문인지 등장하는 여인들이 미모, 특히 얼굴의 아름다움에 지나친 관심을 갖는듯하다. 우리 사회의 현상이라 하면 더 할 말이 없지만 그 외에도 얼마나 다룰 수 있는 주제들이 많을까 생각한다. 주인집에 찾아온 손님들의 평가에 의해 속상해하고 안심하곤 한다. 스스로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이 아니면 언제든지 다시 곤경에 빠질 수 있다. 남들의 평가는 온전하지도 않고 늘 같은 것도 아니다. 믿음으로 스스로 찾아낸 자신의 무한한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색깔 있는 방에서는 사랑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버지와 의기투합한 딸은 어머니를 제키고 아버지의 권고를 받아들여 결혼을 감행한다. 아버지는 군 장교출신으로 장애를 가지고 있다. 현실이 아무리 그러해도 개연성이 약한 듯하고 자신은 여유롭게 살면서 딸이 혹독한 어려움을 겪는 걸 고소해하며 지켜만 볼 수 있는 어미가 얼마나 될까. 아버지 장 대령의 사랑이야기가 애틋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찾기는 어려지 않을까.

  〈수렁은 가장 부자연스럽게 느낀 두 작품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황홀한 나들이이다. 수렁에서 딸의 죽음을 자신이 학원에 태워다 주지 않고 동창들과 어울렸기 때문이라고 보는 인식부터가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머니도 딸도 독립하기는 어렵다. 누나의 죽음을 동생들에게 알리지 못한다는 것이나 동생들이 어떤 경로로든 알지 못한다는 것도 현실성이 너무도 없다.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해외로 유학을 떠난다는 설정도 수용이 안 된다. 좀 더 보편적이고 치열한 추구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황홀한 나들이의 전반부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화가 할머니의 그림에 의해 호수에 이르는 것까지도 환상적이지만 이해가 된다. 그 후로 전개되는 일들은 너무나 시간차가 나는 일로 와 닿지 않는다. 모든 독자의 요구를 예상해 대비할 순 없지만 지나치게 무리하다고 느낀다. 여인들이 그 와중에 간구하는 것도 희극처럼 다가온다.

  〈어느 젊은 목사 아내의 수기는 그 중에 공감을 주는 작품이지만 끝처리가 너무 쉽다. 그런 쉽지 않은 갈등과 범죄행위가 간단하게 다뤄지는 것에 화가 치민다. 다른 이야기에서 느끼는 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해설을 해준 분에게도 사정이 있겠지만 좋게만 평해준다고 해서 모든 것이 편안한 것일까. 서로 모르는 관계도 아니고 껄끄럽게 표현하기 힘들 걸 모르지는 않지만, 그런 식이라면 일반 문단에서 크리스천 문인과 작품을 어떤 안목으로 볼까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여러 작품들을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목회자 분들과 사모님들이 보고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으면 그것도 귀한 은혜일 듯하다.

  한 독자로서 문외한의 느낌을 그대로 털어놓는 바이다. 감히 그와 같은 대 어르신과 그 작품에 대해 누가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그 분의 연세와 시대를 고려하면 존경스러울 뿐이다. 하 높으신 분이라 투정삼아 모르는 말을 늘어놓았을 뿐이다. 그 분들로 인해 크리스천 문학의 토양이 풍성해지고 이 땅에 뿌리내리고 꽃피울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성경과 기독교 정신에 근거한 많은 작품들로 믿지 않는 많은 이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고 성도들이 변화 받는 은혜로운 일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났으면 좋겠다. 비록 높으신 연세시나 언제까지나 여러 면에서 후진들을 이끌어 주시는 역할을 해주시기를 기원한다. 이솝의 신포도 비유가 생각난다. 내게 꼭 맞는 이야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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