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변두리1 2018. 10. 4. 21:46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 짧은 만남, 긴 그리움 -

 

   이 땅 어느 곳에서 일어난 일 같지 않다. 꿈속에서, 아니면 선계(仙界)의 한 곳이나 시공(時空)을 초월한 아득한 데서 있었던 일인 듯하다. 프란체스카 존슨과 로버트 킨케이드의 너댓새 간 꿈같은 짧은 사랑을 어찌 이 땅의 언어로 일컬을 수 있으랴. 더할 수 없는 완벽한 조건, 교통사고처럼 피할 수 없는 감정의 본능적 끌림에서 그들은 빠져나갈 수 없었다. 격했던 그들의 사랑은 꿈이 아니었다. 로버트는 17년의 세월을, 프란체스카는 22년을 잊지 못하여 두 사람 모두 죽음의 순간까지 그 사랑을 가지고 갔다.

 

  프란체스카는 현명한 여인이다. 현실에서 완벽한 대응을 보여주었다. 거부할 수 없는 본능과 감정을 무시하지 않았고 죽음으로도 잊지 못할 영원한 사랑을 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왔을 땐 냉정한 판단력을 잃지 않았다. 사실 로버트는 잃을 게 없었다. 인정받는 전문인으로 이혼해 혼자살고 있어 가벼웠다. 프란체스카와 함께 하면 동료들에게 축하를 받을지언정 문제될 건 없었다. 그 여인과 함께 바람처럼 떠돌든, 한 곳에 사랑의 둥지를 틀고 작품을 만들며 살든, 예전보다 더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게다. 하지만 프란체스카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건실한 남편과 두 자녀로 이룬 따듯한 가정이 있었다. 선택에 따라 그 모든 것을 잃고 모든 비난을 감수해야 하며, 사랑하는 이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어야 했다.

  그녀는 가정과 현실을 택했다. 안정을 깨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녀가 로버트를 따라 나서지 않은 건 모두를 살린 일이다. 그들의 사랑은 짧기에 아름답고 오래 간직될 수 있었을 게다. 한눈에 반했던 사람도 긴 세월 함께 하다보면 단점들이 드러나 보인다. 허상이 깨지고 현실의 모습이 다가온다. 적나라한 모습을 보고나면 한 조각 의지할 곳조차 없을지 모른다. 오히려 짧았기에 그립고 순수한 모습으로 오래 가슴에 담아둘 수 있다. 따라 나섰다면 평생 자신이 일구어온 가정과 남편과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후회를 안고 남은 세월을 살아야 했을지 모른다.

  떠나보내므로 마음에 오래 담아둘 수 있다. 절망의 순간에 꺼내보고 기댈 수 있는 따듯한 공간이 될 수 있었다. 그들의 행동을 불륜이라고 한마디로 단정할 수 있을까.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순간을 기다리며 사는 건 아닐까. 그 마음으로 여인들은 잘 생긴 연예인이 등장하는 드라마에 목을 늘이며 눈물을 찍어내고 대리만족 하는 건 아닌가.

 

  소설 속 상황이 현실에 펼쳐진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서로의 눈에 단번에 불꽃이 이는 상대를 만날 수나 있을까. 프란체스카처럼 완벽한 주변조건이 이루어지려나. 그렇다면 수많은 이들이 선택에 곤란을 겪으려나. 조금도 망설임이 없으려나. 만약 내가 그런 처지라면 어떤 모습을 보이려나. 가요의 표현대로 총 맞은 듯한 본능과 감정을 어쩌려나. 장담할 순 없지만, 감정을 따르고 싶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 자리를 피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감정을 따르는 이들을 정죄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그들이 용기 있는 선택을 하는 건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결정이 현실에서 많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사회에 일대 혼란이 일어날 게다. 스스로 선택해 행하고 있는 내 정체성은 어찌되는 건가. 세상에 쉬운 일이 얼마나 있을까. 자신을 돌아보면서 다른 이의 행동을, 그것은 잘못이라고 호기롭게 판단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프란체스카는 참으로 영악하고 현명하다. 로버트로부터 사진기와 메모지, 메달을 소포로 전달받고도 그걸 드러내지 않는다. 자녀들에게 충격과 고통을 주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마음에 깊이 간직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고서야 유품과 함께 자녀들에게 넘긴다. 끝내 밝히지 않는 건 떳떳한 게 아니라고, 자녀들도 알고 이해해 주기를 바랐으리라.

  자녀들에게 풀어야 할 어려운 숙제를 내듯 자신을 화장해 매디슨 카운티 다리 주변에 뿌려달라고 요청한다. 죽어서라도 짧은 만남 긴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로버트와 함께 하겠다는 선언이다. 자녀들도 마침내 어머니를 이해하고 그 부탁을 들어준다.

 

  프란체스카와 로버트 같은 운명적 만남이 사실은 부부(夫婦) 아닐까. 오랜 세월 함께하며 그 감격이 식은 것일 게다. 너무 익숙하여 가슴 뛰는 감정을 잃고 사는 거다. 누구든 익숙한 것에는 시들해진다. 그리고 새로운 감정을 느껴보고 싶어 한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에게 찾아온 그 숨 막히는 순간은 행운일까 아니면 떨쳐내야 할 유혹인가. 나른한 일상에 신선한 바람이 일고 햇살 찬란한 때가 분명하지만 그로인해 인생을 망가뜨리는 어리석음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아픔을 겪으며 크는 게다. 자신에게 진실하고 현명하게 살아갈 일이다. 삶은 찬란한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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