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일곱 개의 별을 요리하다

변두리1 2018. 7. 16. 09:58

일곱 개의 별을 요리하다

요리사 에드워드 권의 성공의 길 -

 

  1971년 강원도에서 태어나 신학대학을 가려다 할머니에게 막혀 재수를 하고 지방의 한 전문대에서 호텔조리학과를 졸업하고 24세에 서울리츠칼튼호텔에 실습을 거쳐 정식 직원이 된다. 서른에 샌프란시스코 리츠칼튼호텔 수석조리장을 시작으로 한국 모 호텔 부총주방장, 중국 텐진 세러턴그랜드호텔 총주방장, 두바이 페어몬트호텔 수서총괄조리장을 거쳐 서른여섯에 두바이 버즈 알 아랍의 수석총괄조리장이 된다. 2003년 미국요리사협회가 뽑은 젊은 요리사 톱10’에 선정됐다.

  도대체 어느 정도 인정받은 것일까. 그 세계를 모르니 감이 잡히지 않고 표현할 수도 없다. 그래도 희미하게 연상되기는 골프계의 박세리나 야구의 박찬호, 성악의 조수미, 여자배구의 김연경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몇 몇 예로든 이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많은 이들이 대충은 안다. 요리사 권영민도 그렇게 처절한 열심과 독기를 품고 한 길을 달려온 것이 아닌가 한다. 스포츠의 세계는 실력이 경기를 통해 그대로 드러나니 정직하다고 하겠다. 요리의 세계도 실력만 가지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 꼭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에드워드 권이 걸었을 험난한 길이 예상보다 힘겨웠을 것 같다.

  신학의 꿈을 품고 학업을 계속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벽에 부딪히자 성적이 곤두박질친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과다. 그 해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재수하러 서울로 간다. 돈이 없는 그는 한 경양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아르바이트가 주업처럼 되어 공부는 진전이 없다. 친구에게 군대 신체검사통지서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군대를 연기하기위해 대입시험을 친다. 강릉영동대 호텔조리학과에 합격하여 한 학기를 다니고는 지원해 군대에 간다. 취사반이나 장교식당 사택의 조리병이 아닌 행정병의 일종인 총무병으로 강릉비행장에서 3년의 군복무를 마친다.

  여기까지는 그냥 그렇다. 다른 요리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게다. 그는 군 제대를 앞두고 용평리조트에 연락을 취해 호텔주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제대하고 부모님께 인사하고 두 시간도 안 돼 근무지로 간다. 그곳에서 돌려깎기를 배운다. 감자 세 박스를 한 시간 내로 돌려 깎으라는 걸, 다섯 시간이 걸려 간신히 마치지만 질책과 함께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곧 마음가짐이 잘못되었다고 했다. 복학하여 일 년을 자만에 빠져 산다. 다 해본 것이고 배우는 게 시시하다는 거다. 2학년이 되고 졸업이 가까워오니 취업이 문제였다. 취업은 막연하고 올림픽전후에 과잉 채용된 요리사들로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인데, 더하여 학연이 강했는데 내세울만한 학연도 없었다. 실습을 다시 신청해서 서울 리츠칼튼호텔로 간다. 신생호텔에서 어떻게 죽기 살기로 잘 보여서 눌러 앉으려는 계산이었다.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여 눈에 띄는 수밖에 없었다. 실습기간에 열린 서울국제요리대회도 놓칠 수 없는 기회여서 호텔팀의 도우미를 자청해 커피라도 타면서 하나라도 배우려한다. 그 열흘의 기간 동안 각부서 조리장들을 익히고 마침내 호텔에 남게 된다.

  정사원이 된 후로 실습생들 앞에서 망신을 당할 위기를 넘긴 후에는 쉬는 날이면 대형서점에 가서 하루 종일 요리책을 본다. 실력밖에 의지할 게 없다는 걸 절감한 것이다. 그는 학원 영어강좌를 수강할 만큼 자신의 성장에 많은 것을 쏟을 줄 안다. 올림픽을 치르며 각 호텔들이 외국의 세계적인 일류요리사들을 채용했는데 그들을 향한 한국요리사들의 텃세가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외국요리사들은 일주일에 한두 차례 서울주재 외국대사관에서 열리는 연회나 만찬을 준비했는데 그 때 그들을 보조하는 일을 총조리장이나 과장들과 중견간부들이 하나같이 협조하지 않아 아주 말단인 글쓴이가 맡았다고 한다. 그 일이 큰 도움이 되었단다. 그들과 인간적 교분도 나눌 수 있고 요리도 최신의 가장 수준 높은 기술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2000년에 미국으로 요리수업을 떠날 것을 결심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근무시간의 두 배인 16시간씩 일하면서 실력을 높이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세계적인 요리학교의 분교가 그곳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다시 처음부터 기초를 다지기도 하면서 이등병격인 세컨드 쿡으로 출발해서 3개월 만에 훠스트 쿡이 된다. 보통 10년 이상 걸리는 조리과장인수 세프2 년 만에 승진한다. 미국에서 그도 유색인종으로 많은 수모와 어려움을 겪었다. 그것을 넘어서는 방법은 철저히 실력이었다.

  미국에서의 보장된 성공을 뒤로하고 그는 한국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한국에서 그가 경험한 것은 절망감이었다. 깨지지 않는 나이의 벽과 견고한 서열의식 소통이 없는 막힌 문화가 질식할 것 같았으리라. 예전에 까마득한 후배였던 그를 상사로 모시고 일할 이들이 적었나 보다. 그는 일 년 만에 텐진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곳에서도 불꽃처럼 일하느라 가까이 있는 만리장성도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다시 두바이 호텔로, 또 다시 더 실력을 인정받는 곳으로 마침내 모든 요리사가 꿈꾸는 두바이의 버즈 알 아랍의 수석 총괄조리장이 된다. 그가 많지 않은 나이에 이룬 것들은 놀랍다. 한국사회에 던지는 문제들은 가볍거나 쉽지가 않다.

  모두가 달려가는데 우리만 구태의연하게 걸어가는 건 아닌지, 세계는 열린사회로 저만큼 가 있는데 우린 여전히 닫힌 채로 편안함에 취해 만족하고 있는 모양이 아닌지 수시로 확인해야 할 듯하다. 몇 사람의 개인적인 노력으로 사회 전체가 달라지기는 어렵다. 눈을 세계로 돌리고 세계인들과 경쟁하며 앞설 수 있도록 서로 끌어내리고 갈등을 부추기기보다 상대를 인정하고 높여주고 먼저 올라가도록 자신이 디딤돌이 되어주는 문화로 한 걸음씩 나아갔으면 좋겠다. 혼자서도 저렇게 대단한 일들을 해내는데 함께라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해낼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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