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다윗

나도 공범이었다.(다윗의 범죄에 대해 요압이)

변두리1 2014. 7. 1. 08:23

나도 공범이었다.(다윗의 범죄에 대해 요압이)

 

  어제 왕궁에서 온 연락관에게서 나단선지자가 왕과 독대(獨對)해서 왕의 악을 지적하고 책망했다는 것과 왕이 통곡하며 회개했다는 정보를 들었다. 사태가 바르게 돌아가는 것이어서 안심이 되면서도 여전히 걱정이다. 이 문제를 도대체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아득하기만 하다. 내가 왕궁에 있었더라면 목숨을 걸고라도 막았을 것이다. 왕도 나는 무시하지는 못한다. 지금 왕궁에는 왕에게 쓴 소리 바른 말을 하는 이가 없다. 진정으로 왕을 위하고 충성하는 길은 왕이 잘못할 때 목숨을 걸고라도 충언(忠言)을 하는 것인데 안타까울 뿐이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없다. 아무리 전쟁터에 나와 있다고 해도 충심어린 간언을 했어야 했다. 더욱이 내 휘하의 영향력 있는 장수가 연루된 일이었으니 내 일을 방치한 것이다. 나도 핑계거리는 많다. 몰랐다고 할 수도 있고 눈앞에서 전투가 벌어지는데 다른데 신경 쓸 여지가 없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연락관을 통해서 이번 사건을 나는 왕궁에 있는 것과 큰 차이 없이 파악하고 있었다. 연락관은 왕과 전쟁을 수행중인 군부 사이의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에 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이가 맡는다. 그는 공식적인 문서 외에도 군부의 동향을 수시로 왕께 보고한다. 전쟁터의 사령관도 그를 통해 왕궁의 분위기를 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연락관이 오면 으레 나와 술자리를 같이하고 긴 시간 대화를 통해 서로의 정보를 교환한다. 이번 사건도 술자리에서 연락관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들었다. 그 순간 커다란 충격과 함께 큰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즉각적인 반응을 보일 수는 없었다. 누가 보아도 연락관이 비밀을 누설한 것이 분명해서 그를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 출전중인 장수의 부인을 그것도 비서장과 전령들을 통해 반공개적으로 유린하다니 결코 예전의 왕의 모습은 아니었다. 지난날의 왕은 위기 중에도 정확한 판단과 명확한 결단으로 우리를 안심하게 했다. 우리는 왕의 그런 면들이 통쾌했었다. 왕의 결정은 우리가 고민할 이유가 없었고 항상 믿을 수 있었다. 긴장이 풀리고 과도한 자신감이 오히려 남에 대한 배려심과 명쾌한 판단력을 잃게 한 것이다.

 

  일은 더욱 깊어지고 악화되어 갔다. 연락관을 만날 때마다 그 사건의 추이는 초미(焦眉)의 관심사였는데 급기야 장수의 아내가 임신을 했다고 했다. 왕이 그 장수를 왕궁으로 보내라고 할 때는 한 번 더 왕다운 해결을 시도하 려나 하는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결과는 아니었다. 그것은 꼼수에 불과했고 그것마저도 성공하지 못했을 때 왕은 최악의 악수를 두었다. 그 장수의 손에 들려 보낸 친서가 결국은 그를 죽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왕의 이 결정을, 내게 내린 이 명령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었다. 왕의 명령이 잘못된 것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은 왕과의 한판 대결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는 전체지휘관회의를 열어서 논의할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너무 큰 도박이었다. 군인들의 기질 상 논의를 하면 왕과의 싸움이 될 것이 너무도 분명했다. 이미 몇 번 살펴 본 친서였지만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봉투에서 친서를 꺼내던 나는 깜짝 놀랐다. 봉투에는 예리한 도구로 잘랐다가 다시 봉한 흔적이 있었다. 그렇다면…,너무도 분명한 일이었다. 고민할 여유도 없었다. 일단은 최소한의 희생으로 위기를 넘겨야 했다. 그 밤에 그 장수를 불러서 술을 마셨다. 돌려서 말을 하거나 숨길 필요가 없었다. 암몬군대에 총공격을 하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전투가 가장 치열한 곳을 맡겠다고 했다. 내가 고맙다고 했더니 며칠 동안 내 고민하는 모습을 보았다며 고마워했다. 내가 미안하다고 했더니 아내와 자신의 친가와 처가 그리고 나를 위해 한 목숨 바치겠다고 했다. 나는 전체지휘관회의를 소집했다. 이번 전투의 교착상태를 풀고 결정적 승기(勝機)를 잡기 위해 총공격을 펼치겠다고 선언했다. 장수들이 전투준비를 위해 모두 돌아간 후에도 우리 둘은 늦게까지 말없이 술을 마셨다. 밤이 깊어 그는 일어섰고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았다.

 

  싸움은 치열했다. 우리 편에서도 많은 군사들과 무기가 동원되었고 적도 결사적으로 저항했다. 그 장수는 자신이 맡고 있는 부대를 이끌고 적진을 향하여 빠르게 쳐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어느 지점에 이르자 그는 스스로 폭발적인 속력을 내어 혼자서 적진으로 맹렬히 돌진한 것인데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적군은 두 곳을 방비하느라 허리가 나뉜 형상이 되어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장수는 그날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그의 시신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서 왕을 비롯하여 가족과 친지들과 나와 군의 주요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엄숙하게 장례를 치르고 훈장을 추서(追敍)하고 추모비를 세웠다. 그 자리에 참여한 그의 아내에게 나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는 아내를 늘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한다고 했어요, 그는 또한 참다운 군인이었어요.” 그의 아내도 한마디 했다. “예, 알아요, 그는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나는 그 장수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그의 죽음에 나도 공범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다윗왕은 나를 더 꺼리고 멀리하는 듯했다. 어느 위치에 있든 바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