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들
- 몸으로 익힌 삶의 원리들 -
박영신 쓰고 정유진 그린 이 책은 어떤 연령대의 독자를 마음에 두고 쓴 것일까. 초등학생들일까, 아니면 가문의 가보로 물리려 함인가. 북에서 피난 온 아버지, 고생하며 일군 과수원, 수백 명에게 장학금 주어 은행지점장 과장 만들고 징검다리 놓고 거지 잔치 한 것 모두 대단한 것 알겠는데, 너무 칭송 일색이라 좀 뭐하다. 돌아가신 아버지 삼년 탈상에 딸이 쓴 것이라고 하니 알긴 하겠는데 심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모두 있는 사실을 그대로 기록했겠지만 선택과 겸양의 문제도 있지 않을까. 한 세대 전 “전설”을 만들고 싶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여튼 존경할 만한 대단한 분이다. 족탈불급(足脫不及)이란 어휘가 떠오른다.
북에 살던 어린 시절 이야기만 회상해도 흉내 내기 어려운 위인의 싹을 보는 듯하다. 초등학교 시절 월사금을 제대로 내지 못해서 할머니 댁에 사정을 하러 갔다. 한밤중에 오줌이 마려워 뒷간까지 가지 못하고 마당에 누었는데, 새벽에 일어나보니 그 사건으로 머슴들이 할머니께 혼나고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잘못임을 용기 있게 고하고 월사금은 말씀도 드리지 못했지만 떳떳하게 돌아온다. 월사금을 못낸 것도 형은 장남이라 먼저 주고 막내는 떼를 써, 타 가는데 아버지는 부모님 생각해 제때 말씀드리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월사금 문제는 결국 쌓이고 쌓여 학교를 그만둘 지경에 이른다. 어리지만 친구들과 선생님께 월사금 못내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다고 인사를 하고 나오다 앞으로는 오고 싶어도 못 올 학교 제일 어른이신 교장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가겠다고 오던 길 되짚어 교장실에 찾아가 인사드리니 교장선생님 사모님이 아시고 자신이 뜨개질을 해서라도 월사금을 낼 것이니 학교를 다니라고 해 계속 다니게 되었단다. 아버지는 신세를 질 수는 없다는 생각에 꽃밭을 가꾸어 드리기로 하고 졸업할 때까지 열심히 사택 정원을 가꾸어 드렸단다.
그렇게 다닌 초등학교 졸업식에 졸업생을 대표해 축사를 하게 되었단다. 일본 선생이 써준 원고가 있지만 며칠을 연습하고 별러 후배들에게 “인간답게 살라”고 외치고 “조선 만세”를 세 번 불러서 경찰에게 잡혀 갔단다. 교장선생님이 좋게 보아서 책임진다는 각서를 쓰고 보증을 서서 감옥에서 풀려났단다. 아버지는 6년 개근으로 성실하고 실력이 있었지만 만세사건으로 품행이 최하인 병(丙)으로 평가되어 바라던 사범학교에 원서조차 내지 못했다고 한다.
10대 때에는 친척과 보통강에 미역을 감으러 갔는데 친척이 헤엄을 잘 못해 죽게 되었을 때, 구하러 뛰어들어 쫓아갔더니 친척이 목을 잡고 늘어져 둘 다 죽을 뻔 했는데 힘이 빠지면 될 것 같아서 친척이 힘이 빠지기를 기다려 물 밖으로 끌어내 둘 다 살았다는 것이다.
피난을 나올 때에도 어디로 갈 것인가를 부모님이 거듭 물어서 걸려있던 지도를 부지깽이로 찍은 것이 대구라 그리로 가겠다고 말씀드렸고 그 일로 피난지는 대구요, 부모님이 대구로 알고 계실 것이니 평생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고 대두에 사셨다는 것이다.
거짓을 저지르거나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않기에 가장 적당한 직업이 농부여서 평생을 농사짓고 사과과수원 하는 일로 살았다고 한다. 그 일을 하면서도 검소 절약하게 살아서 수백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어 그 중에 은행 과장이 되기도 하고 지점장이 된 이도 있다고 한다. 그 바쁜 중에도 주경야독으로 딸이 사다준 성경책을 몇 번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그 내용에 감명을 받았는지 회갑 때는 주변의 거지들을 초청해 잔치를 벌였다고 했다. 아버지는 딸이 서너 살 어렸을 때, 삼륜트럭에 풍금을 싣고 시골 작은 교회를 찾아가 남이 한 것처럼 기증하고 오셨고 그 후로도 계속 그 일을 하셨다고 한다. 한 번은 청소부가 차에 치여 죽었다는 기사를 보고는 쌀 한 가마를 가져다 대문 안에 놓아 주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글 쓴 딸에게는 할아버지의 생신날을 스스로 경노일로 정해놓고 피난 온 후로 계속 50여 년 동안 경로잔치를 하고 어려운 노인들에게 생필품을 드려왔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경북지역에 임야를 구해 피난 내려와 어려운 분들의 매장지로 내놓았다고 하니 감탄할 뿐이다.
그분이 늘 하던 말이 “하면 된다, 안 하니까 안 된다”라고 한다. 항상 자녀들을 격려하고 인격적으로 존중했다. 딸이 초등학교 5학년 이었을 때, 안과에서 만나기로 하고 15분을 늦었다고 진지하게 사과했단다. 공부하란 말 한마디도 한 적 없지만 언제가 제일 기뻤냐고 물었더니 ‘자녀들이 공부를 열심히 했을 때’라고 답하더란다. 농사와 과수원이 힘겨워도 자녀들이 학업을 위해 요구하는 것은 어김없이 들어주었던 듯하다.
딸이 부모님께 노래를 가르쳐 주었단다. “눈물 젖은 두만강”, “고향생각”, “매기의 추억”나이 들고 약해졌을 때, 전화로 대화가 안 될 때에 이 노래를 여러 번 불렀단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인 것 같다.
어쩜 이렇게 흠 없이 한평생을 살 수 있을까. 이 세상에는 다양한 이들이 산다. 삶에 어떤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 나름대로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을 다해 살면 족한 것 아닌가. 후회 없이 한평생을 사는 이가 누가 있을까. 이 글속의 아버지도 딸의 시각으로 보아서 그렇지 본인에게 물으면 많은 일들이 후회스럽고 부끄러운 일이 많다고 하지 않으려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살 일이다. 대단한 아버지에 비범한 딸이다. 글쓴이의 고향집에 걸려 있었다는 안중근 의사가 쓰신 두 족자 중 하나에 기록된 글귀가 가슴에 남는다. 황금백만냥 불여일교자(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 황금 백만냥이 자녀 하나 가르침만 못하다. 대단하다, 부럽고 부럽다. 한 편으론 그분은 그분이고 내게는 또 내 식의 삶이 있다는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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