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알랭 드 보통) -

변두리1 2017. 4. 17. 23:15

알면서도 빠지는 사랑의 과정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알랭 드 보통) -

 

   알랭 드 보통은 “2015년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특별 예술 감독을 맡았고 강연을 하기도 한 1969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철학자, 소설가, 수필가다. 그가 스물다섯 즈음에 썼다는 첫 작품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그의 삶의 경험이 녹아 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인데, 소설형식을 취하고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소설의 내용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통속적인데다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일인칭 주인공이 클로이라는 여인을 비행기에서 만나 만남을 이어가고 연인이 되고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헤어지는 과정을 현학적인 설명을 덧붙이며 보여준다.

   생명체의 기본적인 욕망은 생존과 번식이다. 사람도 이에서 예외가 아니다. 자기 종족의 번식을 위해 암수는 서로 우수한 상대를 탐색하는 것이 본능이다. 이제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근친번식은 열성이 나타나기 쉽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단점과 일상의 모습에 너무도 익숙하다. 자신에 대해서는 소소한 부분의 단점과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까지도 알고 있다. 게다가 사랑의 감정은 전혀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다. 상대의 어떤 면이 황홀하게 다가오기 시작하면 단점조차도 매력적으로 인식된다. 주변인들의 시선과 판단과 달리 아름답게 채색되어 다가온다.

   한 걸음만 뒤로 물러서서 생각하면 자신에게 속해있는 사람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을 그때는 결코 인정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은 실제보다 낮게 평가하고 상대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좋은 면으로 희망하고 기대를 한다. 출발부터 실망할 수밖에 없는 길을 달려가는 셈이다. 서로에게 끌리면 같은 최면이 걸리고 콩깍지가 덮인다. 그들은 서로에게 몰입하고 관심이 급속도로 상승한다.

   이 땅의 생명체 가운데 소수의 종이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고 있고 자손의 양육에 책임을 다한다. 그 중에도 사람은 윤리와 종교와 관습에 의해 많은 종족들이 이러한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이러한 엄격한 제도가 곳곳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윤리와 종교와 관습이 이러한 것을 유지하는 배경에는 사회적 혼란과 무질서를 예방하려는 의도가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규제들과 주변의 시선들로 인해 억제되는 사랑이 적지 않으리라 짐작된다. 하지만 본능에 가까운 강렬함으로 이 땅에 생명체가 존재한 이래 암수의 사랑과 갈등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음이 분명하다.

   결혼의 유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겠지만 서로의 강력한 끌어당김은 쉽게 통제하기 어렵다. 서로가 상대에게 단순해지고 유치해지는 단계를 거쳐 육체적 탐닉기로 발전해 간다. 사회적으로 용인받기 어렵고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관계의 발전은 대개는 그 결론이 정해져 있고 진행과정도 서로가 모르지 않는다. 소설에서 주인공과 클로이가 겪어가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에 느끼는 죽고 못 사는 사이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얼마가지 않아 상대의 단점이 하나둘 드러나고 눈을 덮었던 콩깍지도 벗겨진다. 상대가 처음에 기대하던 왕자나 공주가 아니라 자신들의 주변에서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임을 확인하는데 긴 세월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불타오르는 과정은 짧지만 서로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도 그 관계를 정리하는 데는 더 긴 세월이 요구되고 다방면에 많은 아픔과 흔적이 남는다는 것은 큰 고통일 수 있다. 서로가 한동안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면서 스스로를 피해자로 여길지도 모른다. 헤어짐과 실패의 기억으로 다시는 그 과정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더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고 은둔과 도피 혹은 수도의 삶으로 방향을 선회할 수도 있다.

   반면에 다수의 사람들은 세월과 함께 상처가 아물고 아픔이 약해지면서 다시 같은 과정을 되풀이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몇 차례 겪은 후에는 눈으로 보고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 정확하지 않고 모든 것도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글쓴이는 이 별난 소설에서 사랑은 단순히 방향일 뿐이며, 바라는 것을 붙잡고 나면 그 이상 바랄 수가 없다. 따라서 사랑은 충족이 되면 스스로 타 사라지고, 욕망의 대상을 소유하면 욕망은 꺼진다.”고 설파한다. 사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말고 그 끝까지 파고 들 일도 아니다. 그러한 행동은 파국으로 향할 뿐이다.

 

   그렇다고 이 세상을 사랑 없이, 아니면 사랑과 담쌓고 살 일인가. 그것은 너무 삭막하다. 그러면 어떻게 살라는 것인가. 스스로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인류의 유구한 역사를 지탱해온 예술과 문학의 가장 큰 주제가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었던가. 그 근본적인 충동과 본능이 없었더라면 인간은 벌써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내 신분과 처지를 생각하면 윤리와 종교를 지키며 품위 있는 인격자의 삶을 살라고. 모두에게 만족한 모범 정답은 없다. 알랭 드 보통 이 사람이 정말로 우리를 고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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