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헤르만 해세의 《데미안》

변두리1 2017. 3. 17. 21:27

헤르만 해세의 데미안

 

   해세는 평탄치 않은 청소년기를 겪었다. 열네 살에 신학교를 들어가지만 일 년 만에 퇴학당한다. 그는 자살을 시도하나 미수에 그치고 그해 6월부터 8월까지를 정신병원에서 보낸다. 이듬해에 고등학교에 입학하지만 일 년 만에 또 퇴학을 당한다. 그 후로 서점 시계공장 출판사 등에서 일한다. 서점에서 일하면서 문학에 심취하여 시를 쓰고 산문을 짓는다. 어쩌면 자신의 혼란스런 성장의 기록이요, 당시의 젊은이들을 향해 정신적 성장의 채찍질이기도 했다. 데미안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닌듯하다. 정신분석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누구나 사춘기를 겪으며 정체성의 문제와 성적 혼란기를 통과한다.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면서 숱한 사상적 어려움의 시기를 거친다. 본인에게는 힘에 부치는 심각한 문제들임에도 어른들에게는 하나의 통과의례로 인식될 뿐이다. 나아가 흔들리고 때로 넘어지는 모습조차 그 시기의 특권이요 아름다움이라고 여겨진다. 그 과정을 지나고 있는 개개의 청소년들이 얼마나 대단한가. 그들에게 데미안이 필요하고 싱클레어에게 도움을 준 이들과 같은 이들이 우리사회에도 절실히 필요하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기독교적 배경의 단란한 가정에서 살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따돌림 받는 것이 두렵고, 무리 속의 용기 있는 한 아이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 욕망으로 거짓말을 한 것이 프란츠 클로머에게 걸려들어 심적 평화가 깨지고 고통과 죄의식의 긴 함정에 빠진다. 프란츠의 요구대로 끌려가던 그를 구해준 것은 전학 온 데미안이었다. 하지만 프란츠로부터 벗어난 주인공이 이제는 데미안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 그가 들려준 카인이야기가 목에 가시처럼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남는다. 그 후로 견진성사를 위한 수업에서 데미안과의 만남이 이어졌다.

   상급학교에 진학한 싱클레어는 더 넓은 성년의 세계로 진입하는 혼돈의 시기를 겪는다. 나이가 더 든 동료와 작은 술집에서 포도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 후로 삶은 또 다시 격랑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과 술 그리고 폭력과 일탈은 누구도 제어하기 어려운 지경이 된다. 학교와 아버지가 모두 어찌할 수 없을 때, 한 여인 베아트리체를 본다. 어딘가 마음을 줄 곳을 찾으며 그 대상을 향한 몰입이 그림으로 귀결되며 방황이 끝이 난다. 싱클레어가 그린 그림은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도 같고 데미안 같았다 자신이기도 한 복합적인 그림이었다. 지나고 나면 한 때의 방황이요 소나기지만 그 때는 너무 힘들고 어렵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몹시 그리웠다. 어느 날 예전에 데미안이 싱클레어 가문의 문장을 그리던 것을 회상하고 그 그림을 그려 친구의 주소로 보낸다. 그림은 신기하게 데미안에게 전달되어 그의 답장을 뜻밖에 수업 중에 전달받는다. 그 안에 데미안의 가장 유명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자신의 기존 세계를 깨고 거듭나 온전한 신의 세계로 나아가라는 명령이다. 싱클레어는 풀기 힘든 숙제를 받아들었다. 아브락사스라는 신을 알 수 없었다. 그는 대학을 갓 졸업한 조교로부터 수업 중 같은 신의 이름을 듣는다. 아브락사스에 사로잡힌 그는 산책을 하다가 작은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오르간 소리에 매료당한다. 오르간의 연주자는 신학을 공부하다 그만두고 오르간을 치는 피스토리우스였다. 그는 변두리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신앙과 사상에 대해 고민하는 철학자였던 셈이다. 피스토리우스로부터 양면성을 가진 신() 아브락사스에 대해 듣는다. 그는 새로운 신앙을 생성하려 하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 싱클레어는 그와 헤어진다.

   싱클레어는 다시 데미안을 만나 그의 어머니를 소개받는다. 데미안의 어머니는 에바라는 이름의 부인으로 싱클레어가 마음으로 그리던 연인과 어머니에 해당하는 여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카인족에 속한다는 것을 알았다. 독일에 전쟁이 터지고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모두 참전하여 부상을 입는다. 잠깐 옆 침대를 사용한 데미안은 싱클레어 안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의 어머니의 입맞춤이라며 싱클레어에게 키스를 한다. 잠을 자고 나니 싱클레어의 몸은 붕대에 감겨 있고 데미안은 어디로 가고 낯선 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데미안이 죽었는지 다른 곳으로 떠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거울 속에 나타나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때로 데미안처럼 느껴지고, 데미안을 통해 에바부인의 키스를 받는 것은 또 다른 자신과의 합일이요 삶의 양면성을 수용하는 것이 아닐까. 한 아이가 청소년기를 거쳐서 성인에 이르는 것은 거대한 사건이며 그 안에는 경험을 통한 해결을 요구하는 혼돈스런 수많은 문제들이 들어있다. 데미안은 그 해결의 한 가지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