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과 《라라랜드》
가족이라야 몇 되지도 않는데 다 한자리에 모여서 특별한 것을 하기가 쉽지 않다. 한 해가 기우는 마지막 날에 다섯이 같이 있으니 추억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은가보다. 자녀들이 나이가 들면서 의미 있는 시간들을 많이 갖지 못한 것이 가강 미안한 일 중에 하나다. 이제 언제 누가 결혼을 해도 이상할 나이가 아니니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을지 모른다. 누구의 제안이었는지 영화를 같이 보잔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예배가 있으니 아주 홀가분할 수야 없지만 언제 이런 기회가 또 있으랴 싶어 그러자고 했다. 어떤 영화를 보겠냐고 했더니 《라라랜드》란다. 신문에서 평을 본 것 같아 아는 척 하니 그 영화가 아니라고 했다. 무슨 영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같이 보는 데 의미가 있고 아이들이 골랐으니 보나마나 괜찮은 영화일 게다. 조금 늦은 시간에 상영관을 찾으니 아내와 내 자리는 커플석이란다.
몸 상태가 최상은 아닌 듯하다. 주변의 훨씬 젊은이들도 신경이 쓰인다. 그렇고 그런 안내와 광고가 끝나고 시작된 영화는 통 줄거리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뮤지컬 같은 영화여서인지 노래와 춤이 중심인 것 같다. 사계절에 따라 촬영을 했는지 겨울 봄 여름 가을 또 겨울로 이어진다. 영화를 볼 때마다 갖는 생각이다. 미리 알면 인터넷 검색이라도 해서 줄거리흐름이라도 대충 이해하고 보면 나을 것인데 그게 안 된다. 그런 생각들을 버리고 별 생각 없이 음악과 춤을 즐겨야겠다. 음악회가 아니니 대단한 예절을 요구하지는 않겠지만 다수가 조용히 몰입하는데 가끔 누군가 팝콘을 씹는 소리가 고요를 깬다. 이해가 안 되니 산만하고 자막을 보려니 눈이 피곤하고 조금은 졸리기도 하다.
영화를 자주 보아야 배우이름을 알고 친숙해질 텐데 ‘가뭄에 콩 나듯’관람을 하고 그것도 대부분 자의가 아닌 타의에다 내가 선택하는 게 아니니 심드렁하다. 좋은 영화라는데 간혹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몸이 피곤하면 방법이 없긴 하다. 한참을 보고 있으니 주 인물들이 뭘 하려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여주인공은 배우가 되어 연기를 하려나 보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같은데 수시로 “오디션”을 보러 간다. 많은 준비를 하고 가도 짧은 순간밖에 주어지지 않고 불합격이 일상이다. 그녀와 사귀어가는 남자 주인공은 재즈음악을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인데 찾는 이들이 적으니 꿈을 접고 생계를 위해 대중들이 많이 찾는 음악연주를 하며 팀을 이뤄 순회공연에 나선다. 사이사이 그들의 관계의 진전과 감정을 나타내주듯 춤과 음악,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진다.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 ‘세바스찬’이다. 그가 속한 팀과 음악이 인기를 얻으며 직업으로 굳어가니 여주인공의 불만이 늘어간다. 그녀는 이름이 ‘미아’인데 세바스찬이 스스로의 꿈을 잃고 현재에 타협하며 사는 것이 싫은 모양이다.
공연장을 빌려 일인극을 무대에 올린 미아는 관객의 시큰둥한 반응과 비판적인 평가에 상처를 받고 다시는 연기를 하지 않겠다며 부모님이 계시는 집으로 돌아간다. 전에 보았던 오디션의 결과통보가 세바스찬에게 전달되자 들었던 얘기를 회상하며 그녀의 집을 찾아 간다. 오디션소식을 듣고도 미아는 다시는 연기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세바스찬은 다음날 아침 8시에 오겠으니 알아서 하라고 일방적으로 알리고 떠나간다. 약속한 시간이 갓 지나며 미아가 나타나고 다시 연기를 향한 삶이 이어진다.
5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한다. 미아는 유명한 배우가 되고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다. 세바스찬도 자립을 하고 꿈이었던 재즈카페를 내고 사장이 되고 연주를 하기도 한다. 세바스찬에게 자신이 제안했던 이름의 재즈카페에 남편과 함께 방문한 미아는 그 사장이 옛 연인이었음을 알아차린다. 세바스찬은 그녀를 위한 연주를 해주고 그녀는 잘 들었다는 인사를 남기고 남편과 함께 자리를 뜬다.
젊음은 방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처음부터 목표를 향하여 직선으로 달려갈 수 있을까. 꿈을 쉽게 이룰 수 있다면 그건 잘못 설정한 꿈이다. 온 힘을 다해서 오랜 세월 노력해도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 올바른 목표이자 꿈일 게다. 그 꿈을 향한 길에 어찌 좌절과 낙망이 없을까.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동료들을 보면 그들이 자신보다 더 잘하고, 타고난 재능이 대단하다고 여기는 것이 지극히 정상일 게다. 재능이 있어도 우직한 노력이 따르지 않으면 진정한 성공을 이루기 어렵다. 일에도 인생에도 맛이 들어야 한다.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초반의 성공에 자만하거나 만족하면 온전한 성취를 이룰 수 없다.
하고 싶은 일이라면 굳이 성공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까. 성공하고 최고의 위치에 오르려 할 때 그 일에 큰 기쁨이 있을까. 숱한 이들이 실패자가 되고 한두 사람만 승리를 하는 것은 잘못된 기준이다. 그 일이 즐거우면 그냥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스스로 신이 나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 해의 마지막 날에 《라라랜드》를 보면서 오는 해에는 더 큰 즐거움으로 내 일에 몰두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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