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면서
- 그들의 삶과 음식 -
두 개그맨이 번갈아 출연해 도시의 중년층 이상 연령대가 그리워하며 꿈꾸는 깊은 산속이나 바닷가를 찾아가 2박3일간을 지내면서 그곳에 들어간 사연과 그들이 적응하고 뿌리내려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연 속에 사는 이들의 평균 모습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을 통하여 자연을 대리만족하고 지난날의 아련한 추억을 회상하며 각박한 도시의 삶과 콘크리트에 둘러싸여 살면서도 위로와 기분전환을 느낀다. 가끔은 또래나 부부들이 모여 이야기하다가 이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면 “이러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다 산으로 가는 거 아녀?”하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치열한 도시생활에서 밀려나거나 아니면 자진해서 사람들이 거의 없는 깊은 자연 속으로 들어간 그들이 자연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모습이 폐쇄적 일 것 같지만 오히려 개방적이고 의식주에 어려움을 느낄 것 같은데 여유가 있다. 보통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뒤집어엎는 묘미가 그들의 삶 속에 있다.
그들의 집은 대부분 작고 소박하다. 많은 경우 기존의 건물을 조금 손보아 살거나 스스로 혼자 직접 지은 경우가 많다. 사용한 재료도 주변의 것들 혹은 재활용한 물품들로 그들은 생태적이고 과학적임을 강조한다. 나름의 방식으로 냉난방을 해결하는데 여름용 주거지가 따로 있거나 통풍을 위한 아이디어가 빛나는 경우도 있었다. 주로 아궁이에 나무로 불을 때고 방안에 난로를 설치하고 화로를 들여 놓기도 한다.
하루 세끼를 다 따뜻하게 때마다 요리해서 먹는 이들은 별로 없다. 어떤 이는 그 일에도 자유를 누리는 듯 배고프면 먹는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의 생활에 적응이 된 이들이어서인지 남자들이 대부분 이면서도 조리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즐거워한다. 텃밭을 가꾸고 그곳에서 필요한 대부분의 식재료를 얻으며 육식을 하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개, 닭 등의 가축을 기르고 그들을 동물이상의 가족처럼 대한다. 깊은 산속에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곳이 있고 물고기를 통해 단백질을 보충한다. 그들의 요리는 때로 과거 지향적이고, 창조적이며, 놀이에 가깝다. 직접 재배하거나 주변의 신선한 식재료로 조리한 음식을 경치 좋은 곳에서 먹으며 행복하다고 말한다. 약초채취와 차 그리고 효소를 빼놓을 수 없다. 차는 그들이 즐기는 한 뼘의 여유이고 나름의 사치인 듯하다.
그들은 자주 옷을 벗는다. 자주 목욕을 하고 넉넉한 물을 보면 계절과 무관하게 씻고 싶어 한다. 운동이나 명상 등을 할 때는 겨울에도 자주 옷을 벗는다. 은연중에 옷을 자연과의 직접적인 접촉의 장애물로 여기는 것 같다. 입산이유로는 사업실패와 친지에 의한 배신과 사기, 병을 얻어 요양을 위해 들어왔다가 완치 후에도 그대로 살거나 부모님의 병을 간호하고 고치기 위하여 혹은 경쟁적이고 각박한 도시를 떠나 인생의 후반부를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보내고자 함이다. 그들은 자연을 끔찍이 위하고 자연이 그들을 살렸으며 품어주었다고 말한다. 불행하다는 이는 없고 하나같이 “행복한 인생 2막”을 산단다. 다시 도시로 가겠냐고 물으면 지금이 행복한데 왜 이 생활을 그만두겠느냐는 대답들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들이 방송과 카메라에 거부반응이 없고 너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방송관계자들의 고충이 있겠지만 마치 한명 한명이 방송에 익숙한 탤런트들 같다.
혼자 살아가는, 그것도 사람들을 떠나 깊은 산속이나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끌만한 것이 무엇일까. 우리 사회가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 이제 세계 10위권 안팎의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주변 경치 좋은 곳에는 으레 음식점이 들어서고 외식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SNS와 같은 정보통신기기의 발달로 사생활이 점차 공유되면서 음식문화는 공동의 관심사요 주요 화제다. 과거 우리 전통사회에서 먹는 것을 공론화 내지는 공개하는 것은 암묵적인 금기였다. 끼니의 해결이 큰 문제인 시대에 그것은 빈부의 격차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었고 명예와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문화에서 지극히 사적(私的)인 영역일 수밖에 없었다. 시대적 상황이 바뀌어 이제 “맹물 마시고 이 쑤시는”일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안전망을 고려하면 최소한의 식생활은 보장이 된다. 누구도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고 먹는 일이 식도락이 되어가니 교제에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음식은 그 자체보다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함께 하느냐가 중요하다. 예전에는 음식을 하는 이들이 정해져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소수 전문가를 제외하면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던 요리가, 모두가 할 수 있는 일, 잘하면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일이 되었다.
그들의 음식은 편안하다. 최고의 요리를 예상하지 않고 실제 평가자의 역할을 하는 출연자도 대단한 요리를 바라지 않는다. 전문가가 아니니 요리하는 이들에게 큰 부담감도 없다. 게다가 대부분 배고픈 형편에서 요리를 맛보게 되고 식재료는 현지 조달로 신선하고 눈앞에서 함께 고생해 만들어 낸다. 환경도 새롭고 경치 좋고 분위기 있으니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함께 하는 자연인에게는 늘 혼자였다가 모처럼 맛있게 먹어주는 이가 있으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랴. 그들의 추억과 사연이 음식에 스토리까지 입혀준다. 평소에 쉽게 대하지 못하는 소박하지만 다양한 현지의 식재료로 하는 음식이 색다를 수밖에 없다. 정성을 다해 내놓는 요리가 맛이 없게 느껴진다면 오히려 이상할 일이다.
그들은 분위기에 따라 약초와 온갖 열매들을 주로 하거나 꿀과 벌 혹은 인삼이나 산삼으로 담근 발효주를 한 잔씩 할 뿐, 술 아닌 차를 더 즐겨 마신다. 여러 종류의 차를 직접 채취해 말리고 덖어서 준비해 놓는다. 그들에게 차(茶)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바쁜 일상에서 그들을 잠시 풀어놓아주는 순간의 여유다.
그들이 즐겨 쓰는 음식재료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하고 구할 수 있는 가격도 헐한 것들이다. 노점이나 재래시장에서 에누리를 해도 한 줌 더 얹어주는 정을 나눌 수 있는 것들, 오랜 세월동안 우리 몸에 최적화된 우리 것들이다. 그들이 조리하는 방식도 신선하다. 얽매이기 싫어하는 그들이 때로 파격적인 조리방식을 선보인다.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없으니 무엇을 써도 문제될 게 없고 눈치 볼 것도 없다. 궁(窮)하면서 자유로운 그들의 형편이 창의성이 발현되기에 최상의 조건이다. 우리사회의 건강한 음식문화를 만들어 가는데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이들 중 일부가 그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일상의 규격화를 경계하고 삶의 자유를 느끼게 하는 청량제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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