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은 글쓴이를 “최순우 선생은 평생을 박물관에서 일해 온 박물관 인생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박물관 위상이 이만큼 올라 있는 것도 선생의 큰 업적 중 하나이다.”라고 평했고,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정양모는 최순우 선생을 “공직은 줄곧 박물관 학예관 10여 년, 미술관장 20여 년, 수석 학예관, 학예연구실장, 중앙박물관장을 마지막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박물관으로 마치셨다. 그 외에 박물관과 한국미술에 관계되는 공사의 직분을 감당하셨지만 오로지 우리의 아름다움을 일깨우고 이를 보존, 선양하는 일에만 전념하시었다.”고 책의 앞부분에 지은이에 대해 소개해 주고 있다.
글쓴이는 사찰중심의 건축과 불상과 석탑, 전통적인 공예와 도자기 그리고 그림에 관한 친숙하고 전문가다운 설명을 해 주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빛나는 맛깔 나는 우리말 어휘를 선보이며 한자어의 그럴듯한 품격도 보여준다. 그의 설명을 통해 전달되는 우리 유물과 민족적 특징은 그 기능과 아름다움에 있어서 대단한 경지에 올라있고 자랑할 만 하지만 딴청을 피우듯, 아무 것도 아니란 듯이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별스럽게 느껴지지 않지만 세월이 갈수록 대단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평범함 속에 감추어진 비범함이 있고 그것을 알아차리는데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는 것이다. 단지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것이어서 대단하게 여겨지지 않는데다가 개화와 함께 이 땅에 소개된 것들은 화려함에 선망어린 과장이 더해져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숙성된 맛이 없고 개성을 찾기 어려운 대량 생산된 상품들이었다.
우리 것들을 구태여 드러내 알리지 않은 것은 그럴 필요가 크지 않아서 이었을 것이다. 서로에게 알려진 익숙한 것들이었고 빤한 마을 공동체에서는 별다른 광고가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대단한 것이 있어도 드러내는 것이 팔불출이요, 가만히 두어도 자연스레 다 알게 되어있는 구조였었다. 어쩌면 이방인들이었던 일본인들과 외국인들이 우리 것들을 대하며 보이는 반응에 의아해하고 어색함을 느꼈음직도 하다.
불교가 우리에게 전래되어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들은 외래의 것이라기보다 우리의 것이 되었다. 사찰과 불상과 불탑과 여러 가지 용구들도 우리 민족의 것들로 변했다. 사찰의 건축도 우리 산천과 지형에 우리의 토산 재료들로 건축되고 불상들도 그 고유의 모습보다는 우리의 정서에 젖어든 우리의 얼굴과 몸체와 선과 표정과 감성을 지닌 존재로 표현 되어갔다. 돌과 금속을 빼어나게 다루던 솜씨들은 사찰건축과 불상과 불탑에도 여실히 드러나 원산지의 것들보다 오히려 뛰어나고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돌[石]을 다루는 선조들의 솜씨는 가히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돌로 이루어진 건축과 불상과 불탑들은 그 재료가 돌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정교해서 선조들이 얼마나 자유자재로 돌들을 다루었던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석굴암의 본존불과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만 보아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금(金)을 필두로 하는 금속공예와 목공예와 비녀와 노리개 같은 생활용품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선조들의 빼어난 재주와 솜씨를 헤아려 볼 수 있다. 무심한 듯 보이는 마음 씀씀이, 그 가운데 나타나는 더할 수 없는 정성과 세심함이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쏟아 부어 틀을 잡고 뜨거운 불속에 구워내는 온갖 자기들과 그릇들과 생활용품들은 그들의 재능과 기술뿐 아니라 생활자세와 마음과 꿈까지를 보여준다. 파란 하늘, 학과 연꽃무늬와 구름들. 익살맞은 용과 아이와 물고기들. 두려운 것들조차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고 감정을 함께 하고 있다.
그림에 이르면 달관한 모습은 한층 더 고조된다. 우리 산천을 기반으로 한 깊은 관찰에서 오는 과감한 생략과 단순화가 나타나고 삶의 자세와 달관이 보인다. 근세로 가까워지면서 보다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묘사가 나타나고 서민과 여인들에 대한 소재의 확대와 행동과 감정의 자유로운 묘사가 두드러진다. 어쩔 수 없는 자유로운 표현욕구는 유교적 세계관의 금기를 깬다. 남여의 밀회와 수작들 그리고 빨래터의 장면까지 그 빼어난 솜씨와 날카로운 눈은 놓치지 않고 있다.
우리 민족의 멋은 우리의 생활환경과 삶과 마음자세에 닿아있다. 어느 것도 드러내 알리거나 자랑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별스럽지 않은 것으로 포장되어 있다. 그러기에 무심히 보아 넘기면 알기 어렵다. 우리에게는 삶 그 자체여서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외부인들 눈에 잘 드러난다. 규모가 크지 않아도, 크게 소리치지 않고, 수수해 보여도 다른 어느 곳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과 맑은 마음을 보여 주는 흔적들을 선조들의 유물과 유적들이 보여주고 있다. 생각할수록 자랑스럽고 대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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