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슬프고도 장한 노래 아리랑

변두리1 2016. 8. 22. 00:39

슬프고도 장한 노래 아리랑

-고통으로 확인하는 희망의 빛-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을 읽었다. 읽는 내내 무척이나 불편했다. 인성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폭력배에게 흉기가 들려있었다. 그에게 빌붙어 한동네 주민들을 괴롭히는 양아치들이 판치는 중에 어려움을 당하며 대들었다가 하소연할 데도 없이 쫓겨나거나 온갖 수모를 겪고 삶을 이어가는 이들을 보는 듯해 분노가 솟구치고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국격(國格)이라고는 없는 일본이 자행하는 온갖 만행들을 대하며 깡패만도 못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좋은 문자(文字)가 있고 여러 차례 개혁의 기회가 주어져도 끝내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고 그들만의 세상을 꿈꿨던 조선 지배계층의 탐욕과 아집에도 질릴 수밖에 없었다. 긴 세월동안 밑바닥에서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아온 이들이 불쌍했으나 일제의 시기에는 오히려 힘을 잃어가는 양반들이 더 어려움을 당하고 살아야 했다.

 

   자제력이나 깊은 지식이 없는 잔혹함과 욕망과 잔머리만을 소유한 일본과 가까이 있다는 것이 불행이었다. 그들은 패륜적이었다. 행정과 치안뿐 아니라 토지와 쌀과 자원과 생활과 언어와 문화와 생명까지를 송두리째 강탈하고 부수고 뭉갰다. 처음부터 그들에게는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일본 것들에게는 조선이 얼마나 입맛이 당기는 먹잇감이었을까? 온갖 특혜가 주어지고 기름진 논밭과 온화한 기후와 아름다운 풍광이 있고 원하는 것들을 이룰 수 있으니 낙원처럼 여겨졌으리라.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그들의 이름조차 기억하고 싶지 않다. 무소불위요 안하무인격으로 휘두르는 저들의 행위는 언젠가 반드시 몇 배로 확대되어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되지 못한 폭력집단인 그들에게 빌붙어 사는 똥통의 구더기만도 못하다고 평가받는 존재가치 조차 없는  인간쓰레기들도 많이 있다. 저들을 도와 민족을 괴롭히며 이익을 취하는 헌병, 순경, 말단 행정직, 이익에 눈먼 장사치들이다. 그들은 상한 음식에 대드는 벌레들이요, 불을 보고 달려드는 부나비들이다. 한순간의 쾌락에 눈 어두워 영원히 오명을 뒤집어쓰는 이들이었다.

   원체 방대한 분량이어서 특징적인 인물들도 많다. 그러니 임의로 몇 명만을 살펴볼 수밖에 없다.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서서 이 땅을 벗어나 만주에서 활동을 벌이다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는 양반 출신 송수익과 그 가문의 사람들, 부인과 두 아들, 중원과 가원 그리고 손자 준혁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안위를 버리고 오직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생애를 던지는 그들을 보면서 조국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투쟁했던 사람들, 온갖 불이익과 생명의 위협을 당하며 그들을 먹여주고 재우고 정보를 제공하는 수많은 착하고 가난한 사람들, 그들 중에 행복한 결말을 보는 이들이 거의 없다. 여인들마저 어려움을 겪는다.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조국이 그들에게 베풀어 준 이렇다할 게 있는 것도 아니다. 누가 그 길을 강요하거나 권해서가 아니라 그 길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걸어가는 것이다.

   그들과 짝을 이루는 것이 감골댁, 방영근, 보름이와 수국이 대근이 그리고 오봉삼에 이르는 한 가문이 보여주는 평민들의 눈물겨운 조국을 위한 투쟁의 기록이다. 지배계층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평민들이 얼마나 서럽고 억울한 고통의 삶을 살아가는가. 험악한 시대에는 아름다움조차 수난의 빌미가 된다. 감골댁이 수난을 겪을 뿐 아니라 보름이의 삶 자체가 민족의 수난사다. 남편 잃고, 시아버지의 험한 꼴을 겪고, 장칠문과 서무룡과 세키아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아픈 삶을 살면서도 그들에게서 낳은 두 딸을 키운다. 수국이도 덜하지 않다. 백남일을 거쳐 양치성과 밀정에 이르기까지, 그로인해 동생이 만주로 옮기고, 양치성을 죽이려다 미수에 그치고 밀정을 살해하고 끝내 만주에서 투쟁하다 죽음을 맞는 처절한 삶을 살아간다.

   승려 공허가 보여주는 종교인의 모습은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다를지 모른다. 그의 한 맺힌 가정사와 강인하고 능력 있는 투쟁의 모습, 인간적이며 자유로운 바람처럼 살아가는 시원함, 홍씨와의 사랑과 그 결실 전동걸, 독립군 자금마련과 연락을 위해 애쓰는 삶은 소설을 이루는 한 축으로 부족이 없다. 현실을 몰라라하며 득도에만 전념하는 것이나 실천이 없는 이론만의 종교보다 건강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역사는 멈추지 않고 흐른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으면 같은 어려움을 반복해서 당하지 않을 수 있다. 인간과 국가의 삶이 무한한 것이 아니어서 비슷한 상황이 얼마든지 자주 재현될 수 있다. 이 만한 아픔을 겪고도 정신 차리지 못한다면 희망이 없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 점점 흐릿해지고 잊힐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것을 막기 위해 소설로 동화로 노래로 유물의 전시로 계속 일깨워야 한다. 그 슬픔의 역사를 우리 민족의 유전자 속에 새겨 넣는 노래가 아리랑 일지 모른다. 시대의 곡조에 맞게 끊임없이 창작되어 줄기차게 불리고 이야기되어져야 한다. 흉터를 보며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우리 국토 남쪽 아래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잔악한 짐승들이 떼거리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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