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떡갈나무 바라보기

변두리1 2016. 8. 15. 21:46

떡갈나무 바라보기

-다른 존재의 세계에 서보기-

 

   “움벨트(umwelt)”라는 용어가 핵심어휘로 여러 번 사용된다. ‘어떤 개체를 중심으로 한 그 주변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 같다. 모든 존재가 움벨트를 갖는다. 자신의 움벨트가 아닌 곳에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고 그것들에 의해서는 삶에 큰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움벨트로만 사물을 보는 방식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의식적으로라도 타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한번 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이 지구상에는 70억 인간들만 사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수천수만 배의 생명체가 살고 있고 그들의 능력이 인간보다 못하지 않으며 함께 살아가는 주인들임을 확인해 보자.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들은 무엇인가? 그러한 것들이 움벨트를 이루는 요소들일 것이다. 삶의 터를 잡고 한 살이의 통과 과정들을 살아내면서 동료와 적을 구분하고 지속적으로 먹이를 확보하며 짝짓기를 이루는 것이 핵심적인 것들이다. 인간에게 비유하면 집을 구하고 사회화를 거쳐 어른이 되고 인간관계를 맺으며 직장을 구하고 배우자를 찾는 것이다. 그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가. 기업을 하는 이들과 어촌에서 고기를 잡으며 사는 이들, 글을 쓰는 이들과 체육인들, 그림을 그리는 이들과 건축업을 하는 사람들은 삶에서 한두 번 만나고 이해관계가 얽힐 수는 있지만 그다지 긴밀한 관계들을 이룬다고 할 수는 없다. 서로의 움벨트가 겹치지 않아서 충돌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살아가는 방식들도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인간들이 주변을 인식하고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은 시각에 의존하는 바가 지대하다. 하지만 다른 생물들은 시각보다 후각과 청각에 의존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 우리가 저들의 세계를 이해하기 어려운 요인이다. 인간만 의사소통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지나친 오해다. 나름의 방식대로 정보를 교환하며 살아간다. 벌들이 꼬리를 이용한 춤으로 얼마나 정확한 의사소통을 하는 지를 알아냈다. 개미들도 후각과 촉각을 사용해서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인간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만하는 것이 착각일지 모른다. 어쩌면 인간은 우주의 역사에 가장 늦게 나타나서 어리석은 짓을 일삼다가 생존의 판을 스스로 깨뜨리고 다른 종에게 피해를 끼치고는 어느 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수십 억 년을 이어온 지구의 역사에 있어서 극히 짧은 기간에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고 있는 것을 인간만 모르고 자기파멸의 길로 향하는 속도를 높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이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류사에 유익이 되는 것인지 해악이 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제까지는 커다란 장점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재앙의 출발점이 될 수 있으며 이제는 그러한 조짐들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인간보다 우월한 개별적 기능을 보유한 존재들은 수없이 많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여러 기능이 두루뭉술하다. 개의 코는 인간보다 백만 배가량 예민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청각능력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월하다. 달리기 실력도 인간이 이길 수 없다. 나방은 2.4km 밖의 냄새를 구별해서 대화를 할 수 있고 돌고래는 160km 떨어져 있어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인간은 맹수라 불리는 짐승들 보다 잘 싸우지 못한다. 올빼미만큼 야간시력이 밝지 못하고 새들처럼 먼 거리를 볼 수 없다. 치타만큼 빠르게 뛸 수도 없고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뿔이나 독 혹은 날카로운 발톱도 없다.

   같은 종 사이에는 치명적인 공격을 하지 않는 배려를 보여주는 생물들도 있다. 방울뱀끼리는 싸움이 아무리 격렬해져도 절대로 상대방을 물지 않는다고 한다. 뿔을 가진 영양들은 싸움을 하면서도 절대로 같은 종에게 뿔을 쓰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는 인간이 그들보다 훨씬 미개하고 잔인하다. 인간은 그 짧은 역사를 통해 같은 인간을 향해 어디까지 잔인해 질 수 있는가를 보여 주었다.

 

   자연 속을 살아가는 여러 존재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자. 떡갈나무에는 어떤 생명체들이 관계를 맺고 살아갈까. 떡갈나무가 살고 있는 땅속에 두더지가 살고 있을 수도 있다. 그 위로 떡갈나무와 지면이 만나고 있는 부분쯤에는 여우가 구멍을 파고 살 수도 있다. 떡갈나무 줄기 중간쯤에는 딱정벌레가 알을 낳고 살아갈 것이며 그 밖에는 딱따구리와 말벌들이 먹이들을 찾아내며 살아갈 것이다. 뒤엉킨 가지 사이에는 까마귀의 낡은 둥지가 있을지 모르고 꼭대기에는 올빼미가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가하면 인간들은 식품의 원료로 보거나 땔감으로 여길 수도 있다.

   사물을 인간중심으로만 보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그것은 이기적이고 많은 것을 놓치는 것이다. 인간이 다른 종의 처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극히 작은 한 부분이라도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들의 움벨트를 인정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에 함께 살아 갈 수 있는 최소한의 여지가 생기고 더 넓은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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