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마을

친근했던 풀들

변두리1 2014. 6. 25. 15:12

친근했던 풀들

 

 

  이런저런 일로 분주해서 며칠 동안 주변산책을 하지 못했다. 짧은 거리인데도 아차하면 거르기 일쑤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감독하지도 않으니, 빼먹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시간적 여유가 없으면 정규경로가 아닌 단축경로로 돌기도 한다. 정규경로는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의 담을 끼고 도는 것으로, 십분 정도 걸리는데 담 주변의 나무들과 친근한 들풀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아직은 나무와 풀들이 푸른색을 잃지 않아서, 그들을 보고 있으면 눈도 편해지고 마음도 시원하다. 또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라나서 꽃피고 열매 맺는 것이 가상하기까지 하다. 그것이 자연의 힘이고, 함께 어울림이다.

 

  며칠 만에 산책을 하는데 뭔가 허전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나무들은 멀쩡한데, 들풀들은 모두 제거되어져 있었다. 서운했다. 여기저기 모여 살던 강아지풀, 달개비, 까마종이, 코스모스, 망초들이 그동안 살던 곳에서 베어져 함께 묶여져 말라가고 있었고, 그들로 인해 생명의 축제를 벌이던 그곳들은, 상고머리 모양으로 짧게 밀어져 밋밋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짐작컨대 구청이나 주민 센터에서, 공공근로의 일환으로 여러 천변과 눈에 잘 띄는 곳들의 잡초 제거작업을 한 듯하다. 그들은 매 년 해오던 일을 관례대로, 혹은 어떤 규정에 따라 집행했을 것이다. 지역사회를 쾌적하게 하고, 도시미관도 아름답게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에는, 여름방학에 학생들을 동원해서 무심천변의 풀들을 베고 잡초를 제거하기도 했다. 그 일을 하면서 당연히 할 일로 알았고, 그곳을 지날 때면 깔끔해진 모습에 뿌듯함도 있었다. 이 들풀들을 그냥 두면 안 될까. 그들을 일부러 심은 것도 아닌데, 스스로 자라난 그들이 한살이를 살고 삶을 마감한들 문제될 것이 무엇이며, 시민들에게 돌아갈 피해가 하나라도 있을까. 그들의 생명을 도중에 빼앗는 것이, 다음 세대들의 생명존중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홍수나 가뭄에 대비해서, 주민들의 정서 교육을 위해서, 그대로 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들풀들은 아닐까. 세월 지나면 왕들조차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니 이름 없는 백성들을 민초(民草)라고 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꽃 중에 백합과 장미가 얼마나 되는가. 전체 중 지극히 적은 수효에 지나지 않는다. 그 누가 스스로를 온실과 꽃밭에서 세심한 사랑과 돌봄 속에 자라난 화초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잡초처럼, 들풀처럼 거칠고 끈질기게 살다가 흔적 없이 가는 것이 우리 삶의 모습인데, 들풀 같은 인생들이 같은 처지의 그들을 아끼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도대체 들풀 제거를 당연시하는 것은 어디에서 왔을까. 나의 추측으로는 농경지의 피해 방지를 위해, 예전의 가축의 꼴을 얻기 위해, 연료로 쓰려고, 군대에서의 시계(視界)확보를 위해, 등일 것 같다. 이제는 한 둘의 특정 목적을 제외하면 풀들을 제거할 이유가 없다.

우리의 삶의 모습이 어쩌면 억압에 길들여져 왔고,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획일화된 문화에 깊이 젖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이제는 여러 분야에서 많은 것들이 자유로워졌다. 그렇지만 아직도 더 많은 영역에서 불필요한 의식(意識)의 규제들이 풀어져야 한다. 그를 위해 사회 전반의 것들에 관한 깊은 사색과 성찰이 필요하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하나같이 여학생들은 단발을 하고, 남학생들은 삭발을 하고 모자를 썼다. 처음으로 삭발을 하는 아이들은 민망해서 대부분 털모자를 눌러 쓰고 다녔지만 중학교에 가려면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았다.

  한 때는 고등학생들도 교련교육을 받았고, 소풍이 아닌 격전지행군을 하고, 위장복을 입고 학교를 다녔다. 대학생들조차 군사교육을 받고 전방에 입소를 해야 했었다.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머리와 치마길이를 규제하고 경찰이 단속을 했다. 아마 식견 있는 외국인이라면 우리나라 전체가 거대한 군대처럼 여겨졌으리라. 지금 생각하면 상상도 안 되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었을까 싶지만 실제 행해졌던 일들이다. 그런 일들이 대부분 폐지되었지만 우리사회가 별로 흔들리지 않는다. 그 때마다 옹호자들의 논리는 분명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많은 경우가 통치의 편의를 위해서였음을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시민위주가 아니라 철저히 통치자 중심이었던 것이다.

 

  개인의 개성과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한다. 다르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따라, 위축됨 없이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한 가닥 직선 같은 가치관과 기준으로 모두를 줄 세우고 평가하려 할 것이 아니다. 누구나 스스로의 판단과 가치관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추구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사람들뿐 아니라 풀과 나무들조차도 그들의 독특한 모습과 다양성을 보여주고, 타고난 생명을 다 누릴 수 있는 꿈같은 현실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도시 어디서나 시민들이 자녀들과 함께, 들풀들과 친해지고 그들의 한살이를 마음껏 보고, 풀 한 포기의 생명도 소중함을 알려주고 배우며,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오늘따라 나의 정규 산책로에 살았던 모든 친근했던 풀들이 더욱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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