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마을

비 온 후의 가경천변

변두리1 2014. 6. 14. 19:49

비 온 후의 가경천변

 

  밤새 적잖이 내린 비로 가뭄이 해소되고 주변이 상쾌해졌다. 길가의 풀과 나무들도 생기가 넘친다. 나선 김에 가경천으로 발길을 향한다. 물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하다. 가경2교에 이르니 물이 확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편안한 물이 아니다. 색깔부터 황톳빛 성난 듯 불어났고 유량도 평소의 서너 배는 되어 보인다. 조용히 흐르던 가경천이 소리치며 내닫고 있다. 오늘은 가경천이 황하(黃河)이다. 다리 난간에 기대어 물의 흐름을 가만히 눈으로 좇아간다. 얼마 못가 다시 원위치. 어릴 적 장마철 개울에서 하던 놀이다. 그때는 조금 지나면 눈앞이 어질어질하고 물속으로 곤두박질할 것 같았다. 근심 걱정 없던 유년의 기억. 장마가 지나면 우리들 작은 놀이 세상에 폭포도 저수지도 생겨 났었다.

 

  다리를 건너 천변으로 접어드니 지난 밤 폭우의 세찬 기세에 견디지 못하고 나무에서 떨어진 살구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뒹굴고 있다. 지난 삼사 월 개나리와 함께 그토록 눈부시고 황홀하게 천변을 꽃대궐 로 만들어 주민들을 주변으로 불러 모았다. 벌과 나비 날아들어 윙윙대더니 삽시간에 눈 내리듯 꽃비를 뿌렸다. 언제부터 우리 눈을 초록으로 물들이고 열매들 잎새 속에 숨어 나날이 몸피를 늘리며 스스로 가지를 기울게 했다. 뭇 시선을 받으며 잘 나가던 너희가 채 익지 못하고 이렇게 생애를 마감하고 있구나. 며칠 차이 나지 않으리라. 여기까지 지금까지 살아 온 것도 대견하다. 이제 할 일은 내년의 풍성한 열매를 위해 사람들 눈 피해 잘 썩어져서 좋은 밑거름 되는 것이다.

 

  황톳빛 물의 격류에 바닥에서 자라나던 키 큰 풀들이 어찌할 줄 모르고 반듯이 누워 물의 흐름 따라 몸들을 맡기고 있다. 너희들도 놀라 경황이 없으리라. 살 찢기는 아픔도 헤어지는 슬픔도 예상 못한 피해도 당장은 미루어 두고 우선은 어떻게든 살아남아라. 소나기는 피해가야 하고 지쳐 힘들면 누워 쉬어야 한다. 지친 이들 받아 주던 긴 의자들도 흥건히 물고여 휴식하고 있다. 너희에게도 쉼이 필요한가 보다. 뜻밖에 들이 닥친 기습폭우에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강제로라도 쉬거라. 햇볕 나고 이삼 일 지나면 언제 그런 일 있었냐는 듯 물살은 약해지고 사람들 오가고 긴 의자에 모여 앉아 담소하리라. 누웠던 풀들도 하나 둘 제 몸들 일으키고 주변 풍경 어디도 별반 달라진 것 없으리라. 사람이나 식물이나 한살이 긴 세월에 무슨 일 인들 겪지 않으랴. 어려움도 지나고 나면 힘이 되고 추억이 되고 오랜 세월 흐르면 어렴풋이 돌아 볼 이야기가 된다.

 

  천변 둑을 따라 여러 가지 운동기구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현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 중에 하나가 운동일 것이다. 평소에 지나며 보아도 기구를 이용해 많은 이들이 건강을 다지곤 한다. 그렇다 해도 마음이 흔쾌하지는 못하다. 가끔은 노래나 연주라도 하는 이가 있든지 자기 주장이라도 펴든지 아니면 바둑 장기판이라도 벌이든지 시종일관 한 쪽으로만 치우치지 말고 무언가 문화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 소수의 전문가들이 독점하는 일방적이고 하향전달식의 문화가 아닌 비전문가들 아마추어들이 만들어 가는 싱싱하고 살아서 펄펄 뛰는 문화, 즉석에서 솟아나는 어설프더라도 날 것을 볼 수 있으면 가슴이 뚫리는 시원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가경천변을 거니는 이들이 걸음을 멈추고 잠시 서서 삶의 의미와 웃음을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직은 사치스런 발상인가?

 

  큰 다리들 사이에 사람들만 다니는 폭 좁은 다리가 있다. 처음에는 천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놓여 있더니 이제는 어중간한 다리를 놓았다. 다리의 개요를 알리는 부분도 없고 심지어는 이름도 없다. 추상적인 존재도 명칭이 있는데 실체가 있으니 이름을 지어 주었으면 좋겠다. 다리 아래로 갑자기 내린 초여름 비에 함께 모인 물들은 왁자지껄 소리치고 떠들며 어깨동무를 하고 천 폭이 좁은 듯이 내달려 간다. 일찍 온 더위는 험악했던 비의 기세에 한 풀 꺾였고 대기와 도로는 산뜻한 채로 비 그친 오후는 저물어간다. 잔뜩 흐린 하늘 아래 가경천변은 어수선함 속에서 작은 변화를 겪으며 오랜만에 앉은 채로 졸고 있다.

'변두리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장 안 가게와 노점   (0) 2014.07.02
보고 즐기면 족하지  (0) 2014.07.02
친근했던 풀들  (0) 2014.06.25
하늘 낮은 날  (0) 2014.06.20
장구봉 다녀오기  (0) 2014.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