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야곱

이십년 만에 형을 만나다(야곱)

변두리1 2016. 3. 20. 21:09

이십년 만에 형을 만나다(야곱)

 

   형이 저쪽에서 사백여 장정들을 이끌고 내게로 오고 있다. 스스로 보기에도 내가 당당하다. 형에게 소개할 순서대로 대열을 갖추고 나는 형 앞에 일곱 번 몸을 땅에 굽히며 나아갔다. 떳떳할 뿐 조금도 비열함을 느낄 수 없었다. 형에게서 어떤 위압감도 풍겨오지 않았다. 오히려 내 당당함이 형을 압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형은 내가 못 본 사이에 늠름해졌다고 생각했으리라. 형은 내가 다가가자 목을 끌어안고 울었다. 이십년 만에 형제는 다시 만났고 오랜 세월과 서로의 오해는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서로 눈물 흘리므로 묵은 감정은 봄눈처럼 녹아내렸다.

 

   형이 주변의 여인들과 아이들을 둘러보며 누구냐고 물었다. 내 처와 자식들이라 말하고 한 사람씩 형에게 절하도록 시켰다. 형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형은 자신이 오는 길에 만났던 가축들은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형에게 드리는 내 조그만 선물이라고 했더니 자신에게도 넉넉하게 있으니 내 것은 내게 두라고 했다. 지난날의 나라면 두세 번 권하다 형 뜻이 정 그러하면 내 소유로 하겠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이긴 자로서 아량으로 강권하여 형에게 넘겨주었다. 형이 받아야 앞으로 탈이 없다거나 그것으로 결국은 내가 유익을 얻을 것이라는 계산은 추호도 없었다. 부모가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듯, 형이 동생에게 베푸는 듯한 뿌듯함이 내게 있었다. 전에는 전혀 느껴지 못한 새로운 감정이었다.

   형은 즐겁고 흡족한 표정이었다. 형은 자신이 사백 장정들을 데리고 나와 함께 할 것이니 이제 세일을 향해 출발하자고 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리고 양과 소들이 새끼를 데리고 있어서 하루만 심하게 몰아쳐도 죽을 것 같으니 형이 먼저 가 있으면 내가 아이들과 가축들의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진행하여 계신 곳으로 찾아가겠다고 했다. 형은 그러면 장정 중 몇 사람이라도 남게 두겠다고 해서 그러지 마시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해달라고 해서 형과 형의 사람들이 모두 세일로 떠나갔다.

 

   걱정했던 한기지 문제가 또 잘 해결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하란 땅에서 내게 하셨던 약속을 성실히 지키신 것이다. 아니 하란이라기보다 이십년 전 벧엘에서 하신 약속을 이행하시는 것이다. 벧엘의 하나님을 회상하니 내가 하나님께 드린 맹세가 떠오른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나님께서 성실히 약속을 지키셨으니 이제는 내가 하나님께 한 맹세를 실천할 차례다.

   형님이 떠나니 온 몸의 긴장이 풀렸다. 하란을 떠난 후로 보름가까이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해서 모두가 지쳐있었다. 이제는 어느 곳을 향해 가는 것보다 우리가 있는 곳에 임시 거처를 꾸리고 며칠이고 쉬면서 새 힘을 얻고 싶은 생각뿐이다.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아도 누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서 그렇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모두 있는 곳에 거처를 만들고 필요한 짐을 풀고 식사준비를 하라고 했다. 늦은 점심을 먹고 거처를 만드니 다시 저녁때가 되었다. 편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고 최소한의 인원만 보초를 서고 오랜만에 휴식다운 휴식을 취했다. 긴장이 풀리니 끝없이 잠이 밀려왔다. 어떤 이들이 이틀 사흘을 먹고 자고 또 먹고 자고 했다. 원체 커다란 문제들이 연이어 불거지고 신경을 극도로 집중했던 일들이 해결되니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풀어졌다.

 

   우리가 머문 곳이 세겜이었는데 그곳에 가축들의 우리를 짓고 숙곳이라고 불렀다. 아내들과 아이들, 그리고 유력자들을 모아서 의견을 나누어 보았다. 많은 이들이 그냥 여기서 정착을 하자고 했다. 형이 있는 세일로 가기는 내키지 않는 면들이 있고 헤브론도 우리의 인원과 소유가 만만치 않아 함께 사는 일이 쉽지 않아 보였다. 내 생각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임시로 머물던 땅을 그 지역 주민들로부터 사서 좀 더 장기적으로 머물 시설들을 마련했다.

   고향 땅을 떠난 지 이십년 만에 가나안 땅에 다시 돌아와 자리를 잡는 것이다. 지팡이 하나 의지하고 빈 몸으로 떠났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람도 가축도 소유도 넉넉해져 돌아와 있다. 아버지의 기도가 이루어지고 있고 가문의 주도권이 내게로 오고 있다. 어머니의 당부대로 가나안에서가 아니라 하란의 외가에서 아내를 얻었고 많은 자녀들을 두었다.

 

   내 인생의 삼 막이 열리고 있다. 헤브론에서 부모님과 형과 함께 살던 시절을 일 막이라면 하란에서 이십년이 이 막이었다. 그동안의 해묵은 문제들이 모두 풀리고 가나안 땅 세겜에서 삼 막이 열리고 있다. 하란에서 늘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브니엘에서 부여해 주신 이긴 자로서의 자격과 당당함이 더해져 삼 막은 내 삶에서 가장 빛나는 황금기가 될 것이다. 형과 눈물로 다시 만난 감격이 되살아난다. 모두 하나님의 크신 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