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가 없었습니다(시므온)
가축들을 돌보다 해저물녘에 들에서 돌아왔더니 집안 분위기가 착 가라앉고 우울해 있었다. 근래에 이런 적이 없었는데 뭔가 불안했다. 아버지는 침묵을 깨고 한숨을 쉬고는 우리 여동생이 이 지역 추장에게 몹쓸 짓을 당하여 어떻게 일을 해결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화끈해짐을 느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론은 한가지일 뿐인데 그 과정을 찾아보아야 했다. 여동생을 그렇게 대한 것은 우리 모두를 모욕한 것이다. 우리의 신앙과 관습이 허용할 수 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초저녁이 되었을 때 장본인 추장과 그의 아버지가 우리를 찾아왔다. 이름이 하몰인 추장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우리 딸을 너무도 사랑하니 그의 아내로 달라고 요청했다. 그 말을 듣는 내 가슴이 벌렁거리고 분노가 솟아올랐다. 그는 이렇게 되었으니 서로 하나가 되어서 우리 딸들을 그들에게 주고 그들의 딸들을 우리가 취하며 이곳에서 함께 살자고 했다. 땅을 사서 농사도 짓고 하나가 되자고 했다. 그것을 마치 자기들이 우리에게 혜택을 베푸는 것처럼 말했다. 하몰의 말에 이어 추장인 세겜이라는 아들은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주겠으니 여동생을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 그는 한 번 더 우리가 아무리 큰 혼수와 예물을 원해도 그대로 하겠다고 했다. 나와 형제들은 그것은 안 될 일이라고 단호하게 잘랐다. 우리의 신앙과 관습에 어긋나는 일은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해서 단 한 가지 가능한 것은 그들에게 속한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아서 우리처럼 되면 서로 통혼할 수 있다고 하니 그들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안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추장인 세겜은 우리말을 듣고는 그렇다면 걱정할 것이 없다며 곧바로 할례를 모두가 받겠다고 했다. 지역 사람들에 대한 그의 영향력이 어떠한지를 알 것 같았다. 당신들의 남자들이 다 할례를 받기만 하면 조금 전에 말한 대로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니 고마움을 표하고 그 일은 하나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하고는 가벼운 마음이 되어 그들이 돌아갔다.
그들에게서 권세와 재물을 가진 이들의 오만을 보았다. 자신의 행위에 대해 한마디의 용서도 구하지 않았다. 요구사항을 내놓고 그것을 들어주기를 원할 뿐이었다. 마치 그들은 은혜를 베풀고 우리는 그 혜택을 고마워하며 받는 처지인 것 같았다. 우리 형제들은 의견을 나누었다. 결론은 간단했지만 누가 어떤 역할을 할지를 정하기만 하면 되었다. 워낙 신속한 행동을 요하는 일이라 우리는 적잖이 긴장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저들은 그들이 한 일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온몸으로 겪게 될 것이다.
돌아가자마자 그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지시를 내렸는지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행했다는 소문이 우리에게 전해졌다. 그 추장의 결심이 얼마나 분명했는지 그날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행해 가장 고통스러운 사흘째가 되었다. 동생 레위와 함께 칼을 가지고 그들을 찾아갔다. 예상대로 모두가 고통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우리는 잘 익은 호박을 찌르듯 아무 저항을 못하는 그들을 처단했다. 분노에 찬 우리의 칼날에 할례로 힘을 쓰지 못하는 모든 성인 남자들이 생명을 잃었다. 우리의 다른 형제들은 무방비인 그들에게로 가서 소와 양과 나귀와 그들의 재산과 아이들과 아내들을 탈취했다.
우리는 그 지역을 한 바퀴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마땅히 할 일을 했다는 표정으로 서로의 노고를 격려했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파랗게 질리고 있었다. 더구나 우리가 빼앗아온 소와 양과 나귀와 온갖 물건들과 사람들을 보고는 절망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셨다. 이제 이곳에서도 더는 살 수 없겠다며 다시 이동할 준비를 갖추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이 지역 인근 주민들이 오늘의 사건을 알게 되면 연합하여 우리를 공격하려 할 터인데 그들은 수가 많고 우리는 적어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니 일이 벌어지기 전에 떠나는 것이 사는 길이라 했다. 논리적으로 아버지의 말씀이 맞다. 하지만 우리는 참을 수 없었다. 우리를 깔보고 무시하는 그들의 태도와 안하무인격인 그들의 행동을 묵과하는 것은 우리 가문의 자존심과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위상에도 어긋나는 일이었다.
서둘러 그 땅을 떠났다. 그 지역 주민들은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의 행동에 그들이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우리가 떠나는 길을 섣불리 막아섰다가는 어떤 생각지 않은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 여겼으리라. 그 땅에 계속 머문다면 해결책을 강구하려 했겠지만 우리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들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아버지의 고향이나 하나님의 집을 짓기로 맹세한 벧엘로 가지 않고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이 잘못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이곳에서 뿐 아니라 그 어느 곳이라도 우리의 신앙과 관습이 허락하지 않는 일을 당하면 우리는 결코 참고 넘어갈 수 없다. 우리에게 생명의 위협이 온다고 해도…. 그것이 양보할 수 없는 우리의 자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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