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야곱

작아져만 가는 나

변두리1 2015. 12. 29. 16:17

작아져만 가는 나

 

  사는 것이 재미가 없다. 얼마 살지도 않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요즘은 정말로 살맛이 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는 나이가 들면 찬란하고 신나는 세계가 펼쳐질 줄 알았는데 세월이 흐르니 그 시절이 근심걱정 없이 즐거웠던 때였음을 알겠다. 부모님만 졸졸 따라다니던 어린 날에는 원하는 것들을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딸이라는 게 전혀 문제되지 않았고 내가 언니임이 큰 특권이었다.

 

  며칠 전 어머니로부터 그 사람이 동생과 결혼하려고 우리 집에서 칠년을 일해주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말을 하면서 어머니는 내 눈치를 살폈고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나는 결혼적령기가 지났다. 부모님이 내 이야기하는 것을 가끔 듣는다. 나를 보시면 흠칫 놀라며 하던 말을 멈추신다. 내 스스로도 신경이 쓰이고 언제 내 짝이 나타날 것인가 기대하던 마음이 나타나기는 하려나 싶어지고 이제는 조바심이 일기도 한다. 마을에 내 또래의 여인들은 거반 결혼을 했다. 결혼식에 참석하면 뒷얘기가 만만치 않다. 서로가 눈치를 보아가며 하는 말이긴 하지만 언제 결혼할 것이냐는 얘기가 지나는 말이나 인사치레만으로 들리지 않는다. 나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마을에서 우리 집이나 나를 모르는 이가 없고 부모님의 부탁으로 주위 사람들이 외부에도 신경을 쓸 만큼은 쓰고 있다. 이번에는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이기도 하고 많은 이들이 밀어주어 잘 되려나 기대를 했고, 부모님들이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는데도 잘 되지 않았다.

  그 사람이 결혼상대로 동생을 택했다는 것이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내가 동생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면은 솔직히 말해 별로 없다. 무엇을 해도 동생을 앞서 왔고 마을 어른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온 나다. 동생이 나보다 유리한 점이 있다면 나이가 몇 살 어리다는 것과 더 예뻐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 아닌가. 나이야 세월과 함께 들어가는 것이고 겉모습 보기 좋은 것이 얼마나 간단 말인가. 그동안 많은 힘을 기울여 온 신부수업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점점 회의가 든다.

  계속해서 나이어린 친구들은 치고 올라오고 나는 한 해 한 해 더 늙어가니 답답한 일이다. 음식 솜씨 바느질 솜씨 남자들 못지않은 농사일 솜씨가 아무 소용이 없다. 며느리 감으로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다던 이들이 자신의 며느리로는 꺼리는 걸 이해할 수 없다. 나라고 결혼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여러 번 있었다. 당시에는 오히려 부모님들이 들어내 놓고는 아니면서도 뭔가 상대들이 마음에 차지 않으신 모양이셨다. 이제 생각해보면 그들의 신앙을 미덥지 못해 하셨던 듯하다. 그런데 이 땅에서 우리가 원하는 신앙인을 찾는 것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보다 더 어려워 보인다. 몇 번 혼사이야기가 오갔다가 어긋난 후로는 발길이 뚝 끊기고 말았다.

 

  삶에 의욕이 나지 않는다. 힘이 빠지고 몸은 더 나른해 지는 것 같다. 매일같이 대하는 동생과 그 사람의 모습도 보기가 싫다.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별것 아닌 일에 마음이 상하고 또 그것을 들어낼 수 없으니 더 힘겹다. 집 안팎의 일들을 잘해봐야 뭐하나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우리 집에 많은 종들이 있으니 출산이 잦고 아이들 떠드는 높은 음성과 울음소리가 그칠 날이 없다. 그 부모들은 나와 마주치면 괜히 미안해하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가도 돌아서면 우울해진다. 내 처지 탓인지 마당이나 들판에서 짝을 이뤄 쏘다니는 짐승들과 벌레들이 너무도 많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하늘아래 나만 혼자인 것 같다.

  어릴 때 어른들이 모깃불 피워놓고 들려주던 조상들의 이야기, 그 때에 쏟아질듯하던 하늘의 무수한 별들, 낮의 더위가 가시고 오히려 추위 속에 장작불 피우고 듣던 많은 얘기들과 흩어지던 불티들. 그때는 그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일 것만 같았는데 어른이 된 현실은 이야기 속과 같지가 않다. 이제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해줄 나이가 되었고 웃어른들이 내게 아이들한테 조상들 이야기를 해주라 하지만 왜 그런지 신이 나지 않고 자신이 없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는 가고 싶지 않다. 그런 곳에 가야 사람들도 만나고 좋은 사람이 생긴다는데 그것도 다 적당한 시기가 따로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꿈속에서는 좋은 이들을 자주 만난다. 멋진 이들이 나를 찾아오기도 하고 들판을 함께 거닐기도 한다. 평소에 내 바람이 꿈에 나타나는 것인지 앞으로 될 일을 보여주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찌하든지 새 힘을 내야겠다. 세상에 남자가 그 한 사람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일이니 더 좋은 사람을 주려고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인 지도 모르지 않는가. 내 몸 건강하고 남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좋은 성격과 여러 가지 재주가 있으니 조금 늦어진들 무에 그리 대단한 문제인가. 위축될 것 없이 어깨 펴고 당당히 살아보자. 마음으로 다짐은 그렇게 해도 주눅 들고 작아져 가는 걸 스스로 느끼고 있다. 일부러라도 기운을 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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