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도 짧았던 칠 년
정확히 계산하고 있었다. 내 희망이 모두 그곳에 있었는데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약속했던 칠년하고도 열흘가량이 더 지나가고 있다. 나는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장인어른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날짜까지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내가 요청하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 같았다. 기한에 딱 맞추어 얘기할 수도 있었지만 너무 야속한 듯해서 열흘정도를 기다리다가 며칠 전에 말씀을 드렸다. 아내를 맞이하기 위한 기간이 꽉 찬 것이다.
장인어른은 잠시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세월이 벌써 그렇게 되었냐고 하시며 날짜를 잡아보겠다고 했다. 잔치를 위해 여러 가지 준비할 것도 있고 마을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계획들도 맞춰보아야 하니 며칠 후에 다시 얘기하자고 하시더니 곧바로 다음 날 저녁에 한 달쯤 후에 하는 것이 좋겠다고 알려주신 것이다. 이제는 내 결혼소식이 이 좁은 지역에 다 퍼져서 모르는 이들이 없게 되었다. 어디를 가든지 축하인사를 받기에 여념이 없다. 더러는 동네에서 이름난 가문의 잔치니 크게 기대가 된다는 얘기도 했고 몇몇은 그래도 언니가 먼저 가야지 동생이 앞서는 것은 반칙이 아니냐고도 했다. 집안이 온통 바쁘게 돌아가는 것을 느낀다. 내 결혼식을 위해 모든 초점이 맞춰져있다. 참으로 오랜만에 어쩌면 처음으로 나를 위해 모든 이들이 일들을 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 이곳과 내 고향을 오가며 장사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이곳의 특산물과 싼 물건들 그리고 다른 지방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이곳의 물건들을 가져다 팔고 장사가 될 만한 그곳의 물건들을 사다 이곳에서 파는 일들을 부정기적으로 하고 있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처갓집이나 내 고향집이 양쪽 다 지역에서 알려진 가문이기 때문에 그들은 오갈 때마다 빼지 않고 들렀을 것이다. 어머니는 더러 그들을 만났을 지도 모르고 내 안부를 묻고 고향집 소식도 부탁했을 지도 모른다. 지난번 처음으로 서로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무척 기뻐하면서 내 고향집 이야기를 한 토막 전해주었다. 그들이 눈으로 직접 뵌 것은 아니고 종들에게 전해 들었다면서 아버지는 바깥출입을 거의 못하시고 어머니도 쇠약해지셔서 이제는 가문의 대소사를 거반 형님내외가 관장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에게 내 고향에 가면 부모님께 내가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란 얘기를 전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장인어른에게 내 결혼얘기를 하면서도 내 편에서 와서 축하해줄 이들은 없을까를 잠깐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는 칠년 전 내가 집을 떠나올 때도 몸이 불편하셨고 어머니마저 쇠약하시다니 오랜 시간 장거리여행은 무리일 것이고 형에게 부탁할 수도 없으니 포기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또 내 편에서 사람들이 오려면 몇 달은 결혼을 늦추어야만 할 것이다.
간단히 결혼식을 마치고 실제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고향 부모님들께는 그 후에 장사하는 이들을 통해서 그 사실을 알리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어머니는 나를 이곳으로 보내면서 신신당부하신 일이니 한없이 기뻐하시며 그 순간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못하는 것을 무척 아쉬워하실 것이다. 하지만 이제 결혼하면 머지않아 고향으로 아내와 함께 돌아가리라. 형도 근본적으로 화를 마음에 오래 품는 성격이 아니니 많이 누그러졌을 것이다.
나 자신도 특별이 할 일은 없지만 마음이 공중에 붕 떠있는 것 같고 하루하루가 길게만 느껴진다. 요즘 보는 그녀는 피어나는 꽃처럼 눈이 부시다. 긴장되는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지난 칠년 동안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만나서 짧은 얘기들을 나누었지만 이제는 그런 순간들도 다시 못 올 추억으로 간직될 것이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이 땅에서의 내 모든 고생이 그녀와의 결혼으로 다 채워지고도 남는다. 처형을 보는 것은 여전히 편하지가 않다. 때로는 측은하고 불쌍하기도 하다. 어떻게든 좋은 일이 생기기를 모두가 바라고 있는데 쉽지 않은 모양이다. 앞날에 대한 긴장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결혼을 기점으로 많은 것이 달라지리라고 예상을 한다. 내가 언제까지고 이곳에 살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이곳 사람들도 다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 이침에 고향집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는 어머니가 건강하시고 표정도 밝았다. 내가 그녀와 함께 결혼한다는 얘기를 했더니 아주 기뻐하시며 그녀에게 무척 예쁘다고 칭찬하셨다. 아버지는 편찮으신 모양으로 별 말씀이 없으셨다. 문을 비껴서 형을 언뜻 본 것 같은데 뭔가 나를 부러워하는 것도 같고 질투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제 남들 말대로‘받아 놓은 밥상’이니 최후의 몸조심만 하면 된다. 이곳에서 지낸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그동안 나를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신 아버지의 하나님께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며칠만 지나면 펼쳐질 새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칠년의 세월이 길고도 짧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꿈이라 해도 깨지 않기를 바랄만큼 좋다. 내게는 앞으로 즐거운 일만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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