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 있습니까(라헬)
푸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하더니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가장 믿고 의지하던 내 편이라 여기던 이들에게 이런 일을 당하니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연하게 여겼던 일이 갑자기 틀어지고 예상치 않았던 결과가 나타나니 모든 이들을 믿을 수 없고 세상이 무서워졌습니다. 이게 다 언니의 무능과 부모님의 고집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모두가 야속하고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먼 곳에서 와서 긴 세월을 나 하나만 보고 힘들게 일해 온 그 사람이 너무 불쌍합니다.
오늘은 내 결혼식을 언니가 치르는 날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난 알 수 없는데 다른 이들은 너무 태연합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평안하고 자연스럽기만 합니다.
이 일을 안 것은 사흘 전입니다. 부모님들은 나를 불러서 통고하듯 일방적으로 선언을 했습니다. 내가 끝내 동의하지 않고 침묵으로 항의했더니 부모님이 자리를 일어나시며 이곳 친척집에 연락해 두었으니 가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 방을 떠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을 때 우리 집 건장한 종 둘이 나를 낙타에 태워 이곳으로 데려다 놓았습니다. 그들은 부모님께 엄한 명령을 받았는지 내 행동을 일일이 감시하고 있습니다. 내 돌발행동을 막는 동시에 나를 보호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이들이 볼 때는 내 마음의 상처와 심리적 충격이 문제지 내가 하늘이 무너지는 듯 슬퍼할 일만은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의 풍습으로 보면 능력 있는 남자들이 아내를 여럿 두는 것이 잘못된 일이나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그분 정도의 성실성과 건강 그리고 능력을 생각하면 능히 두서너 명의 아내를 둘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의 지나온 날들을 본다면 내가 그분의 아내가 될 것은 너무나 분명한 일입니다.
여러 아내를 둔다면 언니보다 나은 여인을 찾기는 어려울 겁니다. 언니는 건강하고 일 잘하고 성격 좋고 남에 대한 배려와 이해심도 대단해 문제를 만들지도 않을뿐더러 어떤 문제든 해결하는 데 적격입니다. 하지만 나를 더 힘들고 서럽게 하는 건 언니의 동생으로 열등감을 느끼고 손해를 본 것이 한둘이 아닌데 그분의 첫 번째 아내가 되는 것마저 언니에게 밀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곳 친척분이 나를 불러서 내가 다 생각할 수 있는 얘기들을 하면서 나를 위로했습니다. 크게 보면 더 잘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무책임한 얘기로 들렸습니다. 일은 이미 결정된 것이고 나는 결혼식에 참석조차 할 수 없으니까요.
문제는 그분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분이 나를 얼마나 끔찍이 사랑했는가를 생각하면 그분의 분노와 허탈감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완력과 성격을 감안하면 어떤 의외의 행동을 할지 모릅니다. 부모님들이 원체 완벽하신 분들이니 아마도 그런 것까지 대비를 하셨을 것입니다. 그래도 내일 아침은 우리 집에 적잖은 소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쯤은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에 모여들어 왁자지껄 먹고 마시고 춤추며 잔치분위기를 돋우고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그분은 한없이 즐거워할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과 형제자매 친인척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고마워하며 넙죽넙죽 절하고 다닐 것입니다.
돌아보면 언니도 부모님도 모두 불쌍합니다. 지나간 세월동안 그분과 내가 너무 철없이 드러내놓고 좋아하고 오늘을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우리를 보는 언니의 쓰린 마음을 헤아리지도 않았고 때로는 고소한 쾌감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언니의 혼사를 걱정하는 부모님도 우리와는 무관한 일이었습니다. 안하무인격인 우리의 행동이 오늘의 결과를 불러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분과 결혼하는 언니 마음도 편하거나 기쁘기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나와 그분에게도 미안하고 본인에게는 비참함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마을에 흉이나 되지 않도록 불상사 없이 큰 일이 원만하게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사람 사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일이 지나봐야 확실히 말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 세상을 만들고 이끌어 가시는 절대적인 분이 계시다면 그분만이 모든 것을 알고 누구도 그분의 뜻을 벗어날 수 없음을 알 것 같습니다. 제 잘난 멋에 살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고 남들의 처지도 생각해야 함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남들이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이야기할 때에도 힘없는 이들이 동정(同情)이나 구걸하는 것이라고만 여겼는데 먼 곳에서 내 일을 남의 일처럼 바라보면서 그 말의 참 뜻을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좋게 이해하려해도 이번 일을 겪으면서 부모님들께 서운함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을 그분들이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니 앞으로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하기는 그분들도 내게 크게 미안해하고 계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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