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떠오르는 샛별(사울 왕이 본 다윗)
블레셋의 전사 골리앗 때문에 군 수뇌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일선 지휘관으로부터 보고가 하나 올라왔다. “골리앗과 싸우겠다는 녀석이 있는데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라는 것이다. “녀석”, 그것이 무슨 말일까. 병사라고 하든지 장수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녀석이라니 그 말속에는 존경의 의미가 전혀 없다. 또한 사십여 일간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다가 오늘 갑자기 지원자가 생기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찌됐든 지원자가 있다니 일단은 만나보기로 하고 데리고 오기를 명했다.
곧바로 그 지휘관과 비무장 평상복차림의 한 소년이 전투상황실에 나타났다. 그때 주요 장수와 지휘관들이 나와 함께 있었는데 우리는 그가 아들을 데려 온 줄로 알았다. 내가 아들이냐고 묻자 그는 ‘골리앗과 싸우기를 원하는 녀석’이라고 했다. 순간 힘이 빠지고 허탈해졌다. “녀석”이 이해가 됐다.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이 다 비통한 심정이었다. 여기저기서 탄식소리가 들린다. 내가 해당 지휘관에게 호통을 쳤다. 그 지휘관은 억울한 듯, 그래서 제가 보고 드리고 허락하셔서 데려 왔다고 쭈뼛쭈뼛 말했다. 바로 그 순간 그 녀석이 조용하지만 힘 있고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는 도저히 소년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엄청난 장악력과 판단력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위엄에 압도당했다. 그가 총사령관이고 최고 결정권자 같았다. 그 분위기에 취해서 내용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그 나이에 저렇게 침착하고 순수하고 용기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인물이다. 한 시대를 휘어잡고 흔들만한 인물이다. 나도 모르게 아들 요나단을 본다. 어쩌면 요나단의 가장 강력한 적수가 될지 모른다. 아니 꼭 그렇게 될 것만 같다. 그렇다면 그가 싸워서 골리앗을 물리쳐 주면 당면(當面)한 큰 문제가 해결되어 다행이고 골리앗에게 패한다면 강력한 적수가 하나 스스로 제거되는 것이니 좋다. 출전을 말릴 이유가 없었다. 그를 불러서 내 갑옷과 무기를 주었다. 그러나 녀석은 사양하고 그 차림 그대로 마치 자신의 양들을 돌보러 가듯 긴장하는 모습도 없이 전장(戰場)으로 달려 나갔다. 당황하기는 골리앗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그도 자기 아들뻘 되는 녀석과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이 내키지 않으리라. 더구나 비무장에 창도 칼도 없는 녀석과 싸운다는 것이 기괴하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긴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다. 달려가던 그 녀석이 돌맹이 같은 것을 잽싸게 던지는 듯 하더니 거대한 골리앗이 땅으로 쓰러져 내렸다.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보면서도 믿기 어려웠다. 그는 쏜살같이 나아가 골리앗을 밟고 상대의 칼을 빼어 그를 찌르고 목을 베었다. 그렇게 침착하고 대담할 수가 없었다. 그가 이번 전쟁의 최대 걸림돌을 제거한 것이다. 그제야 양편 모두 상황을 파악하고 일사천리(一瀉千里)식 공격과 후퇴가 전개되었다. 싸움이랄 것도 없었다. 우리가 소리 지르며 쫓아가면 적군은 지리멸렬 도망가는 형세다. 적당히 추격하고 그곳에 경비 병력을 남겨두고 오면 그 땅은 우리 것이요 우리는 전쟁의 승자인 것이다.
모두가 활짝 핀 얼굴로 다시 전투상황실에 모였다. 당연히 다윗이 화제의 중심이고 내 왼편에 앉아 있다. 여기저기서 다윗의 골리앗과의 싸움에 대한 이야기가 거리낄 것 없는 웃음과 함께 왁자하게 퍼진다. 내가 정색을 하고 큰 기침을 하자 조용해진다. 다윗에게 전쟁에 대한 공을 돌리고 고마움을 표하며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묻는다. 그에게 한 마디 하라고 하자 우리 군이 이겨서 다행이고 하나님의 명예가 회복되어 좋았다고 했다. 자신에 대한 자랑이나 군에 대한 비난은 한 마디도 없었다. 놀랄 수밖에 없다.
제대로 배운 것도 없을 텐데, 저 모든 것을 어디서 익혔을까. 그대로 타고 난 것이라면 정말로 무서운 녀석이다. 오늘 밤을 야전에서 지내고 내일은 개선을 한다. 우리의 승전을 각인(刻印)시키고 군대의 위엄을 보이려면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밤에 몰래 귀환할 수는 없다. 그것은 전쟁에 져서 비참할 때에 하는 방법이다. 밤이 깊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아들 요나단과 전군의 막사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병사들이 다들 들떠서인지 잠들지 못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왜 그러지 않으랴.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에서 무려 한 달하고도 반 만에 전쟁에 이기고 몸 성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설핏설핏 들리는 이야기들이 다윗, 다윗 온통 다윗 이야기뿐이다. 승전직후에는 아무리 들어도 좋기만 하더니 벌써 눈살이 찌푸려진다. 아들 요나단은 아무 생각이 없는 듯 저도 다윗, 다윗하며 슬며시 웃고 있다.
나는 항상 이 순간이 가장 좋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수도로 개선할 때 많은 백성들이 손을 흔들고 때로는 눈물을 보이며 사울, 사울을 외친다. 나는 그 순간 살아있음을 느끼며 내가 나라를 위해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런데 이번은 적잖이 혼란스럽다. 백성들이 내 이름보다 다윗을 더 열렬히 연호한다. 어쩌자는 것인가. 나도 아니고 내 아들 요나단도 아니라니. 그 녀석이 벌써 백성들의 마음 깊은 곳을 저토록 파고들고 있단 말인가. 경계해야 할 무섭도록 강한 꼬마 녀석이다. 철저하게 감시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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