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다윗

다윗과 골리앗 -다윗의 회상

변두리1 2014. 6. 16. 21:37

다윗과 골리앗 -다윗의 회상

 

  내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면회하러 간 것은 십대 후반이었다. 형이 일곱이었는데 제일 큰형부터 셋이 군에 있었고 그날은 우리 군과 블레셋 군이 대치만 할뿐 교전중은 아니었다. 갑자기 적 진영에서 거한이 나타나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데 온천지가 울리고 우리 군인들은 당황해하며 사기가 땅에 떨어져 보였다. 주변사람들은 거인의 말을 웅얼웅얼 되풀이 하면서 그를 무찌르는 이에게 왕이 포상으로 내건 혜택들을 열거하며 그래도 누구 하나 나서지 않는다고 자조하고 있었다. 내 피를 거꾸로 솟구치게 한 것은 그 거구가 쏟아낸 말들이었는데 그것은 우리 민족과 내가 섬기는 하나님을 지독히 모욕하는 내용이었다. 왕의 포상도 솔깃하기는 했다. 그 거인은 사십일을 아침저녁으로 나타나 꽥꽥 소리 질러 우리 편 기를 죽이고 있다고 한다. 내 심장이 요동치고 피가 솟구쳐 올랐다. 저런 것은 살려 둘 수 없다.

 

  사십일 동안 누구도 그를 상대하겠다고 나선 이가 없었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자신이 죽더라도 그토록 모욕을 당하고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 괴물을 이길 수 있으니 네가 나서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형들을 면회하고 그 얘기를 하자 형들은 펄쩍 뛰며 나를 세상을 전혀 모르는 애송이 하룻강아지 취급한다. 그들은 내가 무슨 얘기를 해도 허풍쟁이요 교만하다고 말하고 인정해 주지 않는데 함께 내 말을 듣던 이들이 나를 지휘관에게 알리고 그들이 왕에게로 데려다 주었다. 형들은 험한 말을 해가며 나를 미친 놈 취급한다. 그들은 나를 제대로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내 실력과 경험으로 그를 이길 자신이 있다. 목동으로 십여 년을 사는 동안 양들과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내 취미는 하프타기와 돌 던지기로 주머니에는 항상 몇 개의 쓸 만한 돌들이 들어 있고 목표를 정하면 던져서 못 맞춘 적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거리가 멀면 물매로, 가까우면 직접 던지는데 움직이지 않는 돌과 나무뿐 아니라 들쥐들과 뱀들도 정확히 맞춘다. 가끔은 새들도 겨누고 던지면 어김없이 맞고 이제는 힘이 세어져서 들짐승도 한방에 쓰러진다. 오랜만에 집에가 이런 얘기를 하면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다. 오직 나와 양들만 아는 사실이다.

 

  왕이 어린 나를 보고 놀라서 타이르기도 하고 설득도 해보다 내가 조금도 굽히지 않고 너무 자신 있어 하니 오히려 안타까워한다. 거한의 상대로 나를 내 보내는 것이 민망한 듯 내 고집에 허락은 하면서도 자신의 갑옷과 칼을 준다. 갑옷도 칼도 더없이 좋은 것들이지만 왕이 나보다 훨씬 커서 갑옷은 맞지 않고 칼도 내 무기가 아니다. 나는 평소의 목동차림이 가장 편하고 물매와 돌 몇 개면 무서울 게 없다. 상대가 거구(巨軀)니 한 번 보면 눈감고 던져도 맞을 것이고 어디를 맞아도 쓰러져 바로 일어나지 못하리라. 상대 무기인 칼과 창이야 가까워야 쓸 수 있지만 나는 보이기만 하면 물매를 던질 수 있고 몇 번을 빗나가도 수십 미터 밖에서 맨 손으로 던질 수 있으니 나의 위험은 전혀 없는 땅 짚고 헤엄치기 같은 일로 싸움이랄 수도 없다. 상대는 내가 비무장 차림으로 나아가니 기가 막히는 모양이다. 어린아이에 비무장…. 자존심이 상한 듯도 하고 너무 싱거운 짓이라 생각하는 듯도 했다. 나는 “전쟁의 승패는 무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모욕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는 죽을 것이고 네 군대는 질 것이다.”라고 소리치고 달려가며 물매를 던졌다. 너무도 익숙한 내 생활의 일부여서 평소대로 한 것 일뿐 두 번도 필요치 않고 긴장될 것도 힘든 것도 없었다. 돌연 뒤에서는 거대한 함성이, 앞에서는 한탄의 외마디가 터져 나왔다. 거구가 힘없이 쓰러졌고 우리 군은 전진하고 적군은 도망가기에 바빴다.

 

  나는 후련했다. 내 할 일을 했다는 시원함이 차오르고 어느새 높은 사람들이 나를 왕 앞으로 데리고 갔다. 왕은 편안하고 활짝 웃는 얼굴로 감격하며 이런저런 인적사항들을 내게 자세히 물었는데 나는 그런 것에 별 관심이 없었다. 단지 하나님의 명예가 회복된 것이 좋고 우리 군대가 이긴 것이 후련할 뿐이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내 이야기는 군대는 물론이고 나라 전체에 순식간에 퍼져서 내 얼굴은 몰라도 내 이름과 골리앗을 물리친 일은 모두가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일 후에 평소처럼 양들에게로 돌아와 목동 일에 전념했는데 전쟁에서 승리한 군인들은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수도로 개선했다고 한다. 그 개선환영의 현장에서 많은 이들이 왕보다 다윗이 더 큰 일을 했다고 외쳤다고 한다. 그런데 왕은 그 말을 들으며 얼굴을 찌푸리고 적잖이 언짢아했단다.

  골리앗을 무찌른 일은 내 삶에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좋은 관계로 만났지만 나중에는 왕으로부터 숱한 고통을 당하기도 했다. 왕이 나를 힘들게 한 밑바탕에는 열등감과 질투심이 있었다. 회상해보면 다시 돌아가고픈 나의 풋풋한 청년기의 멋진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