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다윗

다윗과 골리앗-골리앗의 넋두리

변두리1 2014. 6. 16. 21:34

다윗과 골리앗-골리앗의 넋두리

 

  나는 공중에 떠있고 내 몸은 싸움터 바닥에 널브러졌네. 사십여 년 내 자신이었던 살과 뼈가, 보이지 않는 주인을 잃고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네. 잠시 전만 해도 온 세상 울리게 고함치며 달리던 구리 빛 팔과 다리가 땅에 붙어 꼼짝 못하네. 그 앞이마에 물매 돌 세게 박혀 피조차 흐르지 않네. 불쌍해라. 그 어린 녀석 다가와 내 칼로 내 머리를 끊네. 고공에 뜬 내가 아픈듯한데 누운 나는 몸부림도 저항도 없네. 이제야 동료들 너 댓 달려와 머리 없는 내 몸뚱이 메고 가누나. 전쟁터에서 죽음의 고비 함께 넘으며 고락을 함께 한 고마운 이들이여 나로 인해서 울지 말게나. 나야 조금 먼저 가는 것 일뿐. 우리가 언제 편안한 죽음을 꿈꾼 적 있는가. 멋진 상대 만나 멋지게 죽고 자네들 어깨 타고 저 세상 가니 이것도 군인으로 영광 아닌가. 우리야 전쟁터에서 숨 끊어지는 게 최고의 영예. 내 집 안방에서 병 앓다 가는 것 보다 백배는 낫네.

 

  내 비록 어린 녀석에게 돌 맞아 가지만 후회는 없다네. 비록 적이고 내가 그 손에 죽었네만 그 녀석은 진정 영웅이었네. 내 보기엔 반드시 최고 장군이 되고 그 후엔 대단한 왕 그렇지, 대왕이 될 걸세. 하긴 그러면 우리부족에겐 최대 원수가 되고 커다란 아픔을 주겠지. 그 어린 녀석이 그토록 당차게 나올 땐 뭔가 있는 것인데 한 순간의 내 방심이 우리 부족에게 큰 화를 불러 들였네. 나 죽는 거야 군인 될 때 이미 각오한 바고 언젠가 한번 겪을 일이지만 부족에게 미안함을 금할 길 없네.

  나도 오늘 일은 얼떨떨하네. 내가 생전 언제 누구에게 져 본적이 있어야지. 최근 들어 싸움다운 싸움을 해본 적 없었네. 요즘은 매일의 내 임무가 아침저녁으로 적군 앞에 나가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그들을 향해 오줌 내지르는 것 아니었나. 내 목소리와 행동에 우리는 신나고, 저들은 약 오르고 수치스러워 했었지. 그 짓을 사십일이나 했으니 낸들 무슨 긴장이 됐겠나. 그 긴 세월 동안 왕이나 장수는 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 나서지 않으니 다 내 세상인 줄 알았네.

  그 아이가 허름한 옷차림에 막대기 하나 가지고 나를 향해 내달아 올 때도 전혀 긴장감이 없었지. 처음에 막대기만 보았는데 언뜻 보니 물매도 있더라고. 하지만 그 어린 녀석이 물매를 던져 봐야 별거 있겠냐고 생각했지. 그게 오판이었어. 내 그동안 전쟁판에서 물매 꾼 한둘 보았나. 방패로 막고 칼로 쳐내고 안 되면 웬만한 곳에 맞은들 대수롭지 않았지. 겁낼 일도 아니고 아이를 상대로 이긴들 대단할 것도 없어 머리나 쓰다듬어 주고 골려주다가 망신이나 줘서 돌려보내려 했었지. 그 아이야 그것만 해도 영웅적인 행동을 한 것이니까. 그런데 녀석이 힘이 장사인 이십 대 중반 물매 꾼들 던지는 거리보다 더 먼 곳에서 물매를 던지더라고. 겁먹은 거라고 생각했지. 웬 걸. 날아오는 속도와 소리가 마치 천둥이 치는 것 같았어. 눈 깜빡할 사이에 눈앞에 날아드는 거야. 너무 급해 방패도 칼도 못쓰고 피(避)해라도 보려 했지. 그 순간 눈이 번쩍하고 퍽 소리가 벼락처럼 내 귀를 울렸어. 휘청하고 기우뚱하더니 땅으로 고꾸라지더라고. 아픔도 미처 느끼지 못했어. 그 찰나에 내 영혼이 육체에서 조용히 떠오르데. 내가 또 다른 나를 본거야. 적군이 고함치며 물밀듯 뛰어드는 것도 우리 편이 우왕좌왕하며 줄행랑을 치는 것도 다 보았지. 그 모습은 한심하고 실망스럽더라고. 나는 그곳에서 한동안 양 편을 지켜보았어.

  한평생 여한 없이 큰소리치며 살았지. 나도 정확히 모르는 큰 키와 우악한 힘만으로도 아쉬울 게 없었지. 누구와 겨루어도 원체 팔 길이에서 차이가 나고 내 창과 칼이 가장 길으니 자네들은 힘껏 뻗어도 내게 닫지 않고 나는 대충 내밀어도 어디든 찌를 수 있으니 공평한 경기는 아니었지. 신체조건 좋고 칼과 창 잘 쓰면 싸움에서 이기는 줄 알았고 늘 그렇게 이겨왔는데 오늘은 힘 한번 못 써 보고 창과 칼 한번 휘둘러 못 보고 졌으니 생애 최초의 완패였네. 자네들도 지켜보고 모두 외마디 비명 질렀으니 인정한 걸세.

 

  그 녀석이, 오늘의 내 적수가 너무나 강했네. 내 방심과 교만이 패배에 한몫을 했지만, 정신 차리고 싸웠다 해도 내가 반드시 이겼으리라 말하지 못하네. 아마도 내가 졌을 걸세. 전쟁터에 남아 그 녀석을 자세히 봤더니 빈틈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는 정말 대단한 녀석이었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좀 그렇지만 자네들도 앞으로 그 녀석을 만나면, 나에게 빨리 올 생각이 아니라면 정면 승부는 피하게.

  하여튼 그 녀석은 한동안 우리부족에게 큰 골칫거리 일 걸세. 전쟁에서 방심과 교만은 바로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뼈아픈 교훈을 오늘의 나의 죽음에서 얻고 자네들 평생 꼭 간직하길 바라네. 내가 없다고 너무 힘들어 하지 말게나. 오늘밤 자네들이 지나치게 의기소침하거나 꿈자리가 뒤숭숭하지 않기를 바라네.

  이제 헤어지세. 내 죽어서도 부족을 지키고 싶었지만 뻔히 보고도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네. 나는 또 내 길이 있다네. 사십여 평생 전쟁터만 전전하며 전혀 준비 못한 저세상의 길을 두려움 속에 가야 하네. 잘들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