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다윗

삶과 죽음사이에서(왕궁의 다윗)

변두리1 2014. 6. 21. 00:18

삶과 죽음사이에서(왕궁의 다윗)

 

  군대를 가고 싶어 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뜻밖의 사건으로 왕에게 알려지고 군인이 되었다. 누가 사람의 앞일을 알 수 있느냐고 하더니 내가 꼭 그렇게 되었다. 남들은 어린 나이에 궁정 하프연주자 왕의 호위무사 왕의 사위 유망한 장수가 되었다고 부러워했지만 나로서는 바늘방석 같고 힘들었던, 삶과 죽음사이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갔던 너무도 고통스러웠던 날들이었다. 차라리 양치기 시절이 비할 수없이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외적인 것, 남 보기에 화려한 것이 모든 것은 아니라는 것을 삶으로 체득한 시기가 나의 청년 전반기였다.

 

  골리앗과의 싸움이 있은 후 왕은 나를 왕궁으로 불러 올렸다. 그곳에서 내가 처음 맡은 임무는 하프연주였다. 알고 보니 왕은 만성적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였다. 그 병은 ‘피해망상편집증’이라고 하는데 불특정인이 왕을 해치려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심신에 이상증세를 겪고 예측 못할 행동을 하는 것이다. 증세는 과로를 하거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자주 나타나고 통제하기 어려운 발작으로 이어졌다. 신기한 것은 그럴 때에 음악을 들으면 증세가 호전되고 빠르게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평소에도 음악을 즐겨 듣고 그 중에도 하프를 좋아해서 왕의 병을 위한 예방과 치료 차원에서 나를 부른 것이었다. 하프연주는 내가 좋아하는 일인데다 왕을 위한 것이니 얼마나 잘된 일인가. 평소에 왕이 나를 끔찍이 좋아하고 신임해서 왕은 나를 자신의 호위무사로 지명을 했다. 왕이 언제 발병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왕과 가까이 있어야 했으니 나처럼 왕과 긴밀히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도 몇 되지 않았다. 왕이 가장 무섭고 위험한 순간은 발병하여 진정되기까지의 짧은 시간인데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라서 무슨 행동을 할지 예측이 불가능하고 각종 무기가 주변에 있어서 더욱 위험하다.

  나도 두어 번 죽을 뻔한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그런 때에는 왕의 힘이 평소보다 더 강해서 위험성도 훨씬 더 크다. 어떤 이들은 그 순간 악령이 왕을 사로잡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날도 평온하게 하루가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왕이 비명을 지르고 사람들은 허둥지둥 나를 찾았다. 하프를 타며 방에 들어갔는데 왕은 진정 되는듯 하더니 주변의 창을 들어 던졌는데 그것이 나에게로 날아왔다. 나는 엉겁결에 가까스로 피했는데 숨 돌릴 틈도 없이 한 번 더 창이 날아오고 나는 본능적으로 간신히 피했다. 그 순간 왕과 내 눈이 마주 쳤는데 증오와 질투의 살기(殺氣)를 느꼈다. 나는 곧 하프연주를 이어갔는데 왕은 움찔하더니 나를 향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주변을 살펴보니 창 한 자루가 벽에 깊이 박혀 있었고 그것을 보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와 비슷한 경우가 한 번 더 있었다.

 

  조금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죽음의 위기는 여러 차례 있었다. 골리앗을 처치하는 이에게 공주를 주어서 부마를 삼겠다는 것이 포상내용에 들어 있었는데 첫딸을 다른 이와 결혼시키고 나와의 약속은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나도 굳이 부마가 되려는 생각은 없었는데 왕은 내 결혼예물로 적군 백 명을 무찌를 것을 요구했다. 그 일을 해내지 못하는 겁쟁이로 보이기는 싫어서 정해진 기간 안에 이백 명을 무찔렀다. 나중에 들리는 말로는 왕이 적군과의 싸움에서 내가 죽기를 원한 것이라고 했다. 그 일로 해서 왕의 딸과 결혼을 했다. 사람들이 밖에서 보는 것과 본인이 실제로 겪는 것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내가 왕궁에서 상당한 대우를 받고 큰 권세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사실과 다르다. 불안한 위기의 순간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왕은 사위로 삼은 후에도 나를 제거하도록 내각과 관계기관에 지시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요나단을 비롯해 나를 아끼는 이들이 내 편이 되어 나를 변호해 주기도 하고 나에게 정보를 전해 주기도 해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한 번은 집에서 잠을 자는데 아내가 어디서 들었는지 피하라고 해서 창문을 타넘어 다른 곳으로 도피했는데 그 밤에 왕이 보낸 군사들이 급습한 적도 있었다. 결국은 지속적인 생명의 위협에 왕궁을 떠나기로 결심을 하고 요나단에게만 알리고 도망을 했다. 목숨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곳에 있으면 정서가 완전히 망가질 것만 같았다. 왕 스스로도 통제하지 못하는 병에 의한 극단적인 감정과 행동에 나마저도 병들 것 같았다.

 

  역설적이게도 왕 주변의 신실한 사람들은 나를 신뢰하고 아끼며 내 편이다. 왕은 점점 사람들을 잃어가고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몇몇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그때그때 왕의 환심을 얻으려는 이들 외에는 왕의 사람들이 없다.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이 약해지고 있다. 왕이 왜 나에게 그토록 적의(敵意)를 품고 경계하고 제거하려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왕을 해칠 마음도 없고 왕이 되고 싶지도 않다. 오히려 힘껏 왕을 도와서 강한 나라를 만들기를 원한다. 나에게 쏟는 힘의 낭비만 줄여도 나라 안이 평안하고 강력한 국가로 이웃나라들의 위협을 훨씬 덜 받을 수 있으리라. 무척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