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왕에 대해 요나단이)
최근의 아버지 행동을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예전의 아버지가 아니다. 내 아버지는 사울 곧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유능하고 겸손했었다. 그런데 요즘의 아버지에게서는 겸손함도 없고 합리적인 사고와 결정과정을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다. 오래 전 아버지가 선지자로부터 왕으로서 버림받았다는 선언을 들은 후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들이요, 아버지가 후계자라고 언제나 일컫는 나 자신도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특히 다윗 문제에 이르면 신경질적이고 전혀 비이성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 문제로 나와도 심하게 논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아버지의 지극히 비상식적인 얘기에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아버지가 하루빨리 이성을 되찾고 예전의 모습을 회복해 다윗에게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같지 않다. 그렇지 않으면 다윗이나 나나 누가 왕이 되어도 하나도 문제될 것이 없다. 아버지 자신도 언제까지 왕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도 반드시 내가 왕이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윗이 왕이 되어도 좋고 또 다른 누군가 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결정권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께 있다.
아버지는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쳤을 때 대견해하고 고마워해서 그날 집에도 보내지 않고 함께 있다가 다윗이 집으로 돌아가자 며칠 안 돼 왕궁으로 불러 들였다. 백성들이 다윗을 연호(連呼)하고 높인 것은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고 그가 영웅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아버지가 다윗을 얼마나 아끼고 신뢰했는지는 그에 대한 대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아버지는 다윗을 자신을 위한 하프연주자로, 자신의 호위무사로, 심지어 사위로, 또 신임하는 지휘관으로 누구보다 자신 가까이에 두었다. 호위무사나 하프연주자를 신임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맡길 수는 없는 것이고 더구나 자신의 사위로 삼은 것은 아들처럼 여긴다는 증표로 충분한 것이다.
다윗도 내 아버지의 신뢰를 조금도 저버리지 않았다. 아버지께 문제가 있으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해결했고 어려운 전쟁이 있으면 온 힘을 다해 싸워서 승리해 왕의 위엄을 높이고 이웃나라의 위협에서 나라를 지켰다. 내가 기억하는 한은 다윗이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거나 온전히 수행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아버지는 오히려 다윗이 너무 완벽한 모습을 보이고 실수와 부족함을 찾을 수 없는데서 불안해하고 상대적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며 피해를 당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 같다. 다윗에 대한 아버지의 판단력이 흐려진 계기는 선지자가 다음 번 왕으로 지목한 사람이 다름 아닌 다윗이라는 주변사람들의 이야기인 듯하다. 그 후로 아버지는 내가 아는 것만 해도 너 댓 번 다윗을 죽이려 했다. 아버지가 직접 창을 던져서 해치려 한 것이 두 번이나 되었고 블레셋과의 전투에 보내어 죽게 하려 한 적도 있었다. 어떤 때는 공공연히 내각과 관계기관에 제거를 지시한 적도 있었고 한밤중에 군사들을 급파하여 체포 압송해 직접 제거하려 한 적도 있었다. 매번 나는 아버지를 설득했다. 다윗이 어느 한 가지도 아버지에게 해를 끼친 일이 없고 다윗처럼 충실하고 선한 사람이 없다고 하면 그때마다 인정을 하고 절대로 다윗을 죽이지 않을 거라고 맹세도 하고 약속도 한다. 그러고 나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다윗을 죽이려 한다.
다윗이 불쌍하고 안 됐다. 몸과 마음을 다해 충성스럽게 왕을 섬기면서도 숱한 오해를 받고, 어렵고 힘든 일을 다 하면서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 외적으로는 화려하고 부러울 것도 부족한 것도 없어 보이나 실제로는 순간순간 죽음의 위기를 겪고 바늘방석처럼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것이 안쓰럽다. 다윗 자신도 얼마나 힘이 들까. 자신의 실수나 부족이 원인이면 조심하고 노력하면 되겠지만 스스로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나도 힘 다해 도우려 하지만 다른 일은 다 할 수 있어도 왕의 고집과 독단이야 뾰족한 수가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아버지와 다윗사이에 놓여있는 나도 많이 힘이 든다. 아버지의 나를 향한 마음도 전혀 이해를 못하는 바도 아니고 또한 다윗의 억울함도 안다. 내가 이성적(理性的), 합리적으로 판단해 다윗 편을 들지만 왕인 아버지의 결정과 명령을 무시할 수도, 거역할 수도 없다. 어떻게든 아버지의 바르지 못한 일들을 막고 싶고 그럴 수 없다면 이 상황에서 빠지고 싶다. 답 없는 문제 같고 힘쓸수록 깊이 빠지는 늪 같다. 가끔은 어떤 방향으로든 결정이라도 빨리 나면 시원할듯하다.
이 상태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지 알 수 없다. 서로를 피곤하게하고 지치게 한다. 더 큰 문제는 나라의 힘이 약해진다는데 있다. 우리와 대적하는 나라만 도와주는 셈이다. 막대한 국력 소모가 벌써 몇 년째인가. 왕인 아버지가 중심을 견고히 잡지 못하니 내각과 신하들 장수들이 모두 불안해하고 눈치 보기에 바쁘다. 군사들이 훈련에 집중하지 못하고 백성들도 본연의 일에 전념하지 못하니 나라 전체가 편안하지 못하다. 아버지에게 이 상황을 이해하도록 얘기해야 하는데 마땅하지 않고 무슨 방법이라도 찾아내야 하는데 별다른 수가 없다. 마음이 답답하다. 정말로 더할 수 없이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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