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교육제도는 불가능할까
우리사회가 지나치게 획일적이어서 이상한 생각을 해본다. 조금은 폐해가 있더라도 다양성이 획일성 보다는 나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서글프지만 대학의 학생 선발방법에 따른 파급효과가 너무도 크다. 그것이 긍정적이면 좋지만 안타깝게도 부정적인 경우가 훨씬 많다. 학생 선발방법이 다양하지 못한 것은 국가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크기 때문이고 그 원인은 대학에 대한 국가의 지원과 관여 때문이다. 국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이 독립성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고 다수의 학부모가 몇몇 특정대학에 자녀를 보내길 원하는 데 있다. 모두가 원인을 알고 있지만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결정권이 있는 이들이 원하지 않아서다. 그들 자체가 현재의 제도 속에서 특권과 유익을 누리고 있어서 자신들의 권리의 상실과 불이익을 안겨줄 제도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재의 기득권을 가지고 신분과 부를 대물림하기를 원하고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그 특권을 오래도록 누리기를 원한다. 그 벽이 너무도 견고해서 혁명적 사고가 아니면 바꾸기가 어렵다. 그 제도가 또한 오래 지속되어서 역사성을 지니고 선례적 위치마저 갖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 수의 감소는 몇몇 대학과 기득권자들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절대다수가 그 대학을 원하니 그 어려움은 고스란히 몇몇에 끼지 못하는 대학의 문제가 되고 만다. 다수가 의식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들도 그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그런 착각을 유지시켜 줄 만큼 신분상승자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것이 더 문제다. 더욱이 이제는 그런 현상을 기대하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획일성에 대한 극단적 처방으로 다양성을 시도해 볼 수는 없을까. 이를테면 학생을 선발할 때에 전체지원자의 성적상위 20퍼센트와 하위 10퍼센트를 제외하고 중간 70퍼센트에서 컴퓨터추첨을 하든지 본인들이 제비를 뽑든지 하는 것이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그들을 원하는 학교도 많고 유리한 위치에 있으니 제외하고 하위그룹은 집단의 동질성확보와 당사자의 분발을 촉구하기위해 제외하면 완벽을 향한 몸부림을 약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수준에 맞는 곳에 가깝고 지극히 잘하는 것이 유리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과도한 경쟁과 사교육도 줄어들고 학교가 학력경쟁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히 학교에서의 부정행위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각 학교들도 실체가 애매한 상급학교 진학실적을 내세울 수 없을 것이고 학생들 사이에도 성적으로 서로를 평가하는 일이 적어질 것이다. 그 때에 무감독시험도 가능하고 절대평가를 할 수 있고 수학능력시험이 본래의 취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일각에서는 그런 제도라면 좋은 학교가려고 누가 기를 쓰고 공부하겠느냐고 할 것이다. 맞다. 지금까지가 잘못된 것이다. 좋은 학교 나쁜 학교는 없다. 자기에게 맞는 학교, 스스로가 행복할 수 있는 학교가 좋은 학교다. 이기적으로 말하면 자신이 다니는 학교가 좋은 학교여야 한다. 현제도에서는 누구도 행복하기 어렵다. 모두가 선망하는 대학에 진학해서 극도의 학업부담을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고 사고를 내기도하고 고교생들도 과도한 성적부담으로 생을 포기하기도 한다. 극소수를 제외한 이들이 열패감을 느끼고 극소수도 행복하지 않다면 그러한 일은 그만 두어야 한다. 입시철만 되면 주요대학 경쟁률과 입시정보를 보도한다. 그들을 제외한 대학은 들러리란 말인가. 주요대학은 누가 무슨 기준으로 정해서 누구의 동의를 받았다는 것인가. 수로 보아도 그들이 다수는 아니다. 성적에 의한 상위대학이라고 인정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누구에게 주요대학이란 말인가. 학생과 부모들에게는 자신이 지원한 곳이 주요대학이다.
고교까지의 시험은 마치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주요행사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니 시험에 관심이 지대하고 신경이 예민해져 있다. 모두가 주시하고 있고 문제가 일어날 여지가 많으니 분명한 자료와 증거가 필요하고 시험은 객관식이나 단답형이 되기 쉽다. 성적이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바뀌면 시험성적 한두 점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것이고 관심이 적어지면 시험을 치지 않고도 공정한 평가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성적도 경쟁을 유발하지 않도록 석차를 내지 않고 본인만 확인할 수 있게 할 수도 있다. 아예 성적을 통과와 재수강으로 분류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현재의 제도로서는 초중등의 그 많은 과목을 모두 성적에 반영할 것이 아니라 최하위 성적을 낸 과목 몇 개를 성적산출에서 제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학교를 마치면 모든 것을 잘한다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 잘하는 한 분야를 가지고 사는 것이고 많아봐야 서너 개면 족한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재능도 없는 것을 사교육에 의존하면서까지 모든 것을 잘하는 완벽한 학생으로 키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서 평가하지 않는다고 하면 다수의 가정에서 많은 사교육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도 주요과목이라는 허상을 버리고 쓸모 있는 과목과 지적 능력의 함양에 꼭 필요한 과목을 균형을 맞추어 가르치고 지나치게 깊은 내용보다는 다수가 즐겁게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하면 좋겠다. 21세기는 개인이 존중받는 다양성이 살아나는 시기가 되리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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