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아브라함

알 수 없는 어른들(이스마엘)

변두리1 2014. 8. 15. 01:05

알 수 없는 어른들(이스마엘)

 

  동생 이삭과는 열세 살 차이가 난다. 동생은 며칠 전에 돌이 지났고 나는 청소년이라 할 수 있는 나이다. 이삭이 태어난 후로 내 삶은 이상하게 꼬여가기 시작하더니 동생의 돌잔치가 끝나고는 별다른 이유 없이 나와 모친은 집에서 쫓겨나야 했다. 엊그제 아침에 아버지는 우리 모자를 불렀다. 예전에 없던 일이어서 웬일인가하고 갔더니 떡과 물 한 부대씩을 주면서 집을 나가라고 했다. 다른 말은 없었고 모친도 아무 말 없이 잠깐 망설이더니 고개 한번 숙이고는 이내 집을 나섰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부친과 모친을 번갈아 보며 눈치를 살폈지만, 멀어져가는 모친을 좇아갈 수밖에 없었다. 모친은 뚜벅뚜벅 앞으로만 걸었고 나는 수시로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부친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우리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슬픔과 미련과 아쉬움의 느낌이 멀리까지 전해져 왔다.

 

  이삭이 태어나기 전까지 내 삶은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큰 엄마를 빼고는 다 내게 잘해주었고 특히 아버지는 항상 내 편이셨다. 내가 아무리 개구쟁이 짓을 해도 문제 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쩌다 큰 엄마의 눈에 띌 때는 내게 얼굴을 찌푸리고 언짢은 듯이 한두 마디를 하시곤 했다. 그것이 생각나 모친에게 이야기하면 엄마는 무시하는 말투로 내가 샘이 나서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큰 엄마가 나 같은 아들을 갖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질투가 나서 그런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나를 보면 항상 즐거워하시며 미소를 지으셨다. 내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직접 가져다주시든지 아니면 다른 이들을 통해서라도 주셨지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해가 머리위에서 햇살을 내리꽂았다. 우리는 더워서 걸을 수가 없었다. 한나절 가까이 걸은듯하다. 모친은 내게도 한마디 말이 없다. 좌우를 둘러보아도 집 한 채 없는 모래와 흙뿐인 광야. 어쩌다 드문드문 풀들과 키 작은 나무뿐. 뜨거운 햇볕을 피할 만한 곳도 찾기 어렵다. 엄마는 키 작은 나무 밑으로 가서 앉는다. 얼굴에서 땀이 줄줄 흐른다. 나도 그 옆에 가서 앉는다. 몸의 일부라도 나무그늘에 두고 움직이지 않으니 그나마 낫다. 우리가 가는 곳이 어디냐고 물어도 엄마는 대답이 없다. 오늘 아침부터 엄마는 벙어리가 되었나 보다.

  가져온 물은 얼마가지 않아 바닥이 났다. 반쯤 남은 떡 부대는 엄마가 메고 텅 빈 물 부대는 내가 가지고 다닌다. 물은 없고 목이 타니 떡도 먹을 수가 없다. 엄마는 딱히 갈 곳이 없는지 며칠째 이 광야를 나를 데리고 헤매고 있다. 오늘도 예의 그 작은 나무 아래 둘이 동그마니 앉아 있다. 마실 물도 없고 떡도 더 이상 먹을 수 없다. 내가 칭얼칭얼 보채며 이럴 거면 차라리 집에 가자고 해도 반응이 없다. 모친은 부스스 힘없이 일어서더니 내게는 여기 그냥 있으라고 하고는 거리가 약간 되는 곳으로 가서 자리를 잡는다. 괜히 서럽다. 목이 타고 배가 고프다. 나도 모르게 울음이 솟구쳤다. 한번 터진 울음이 멈춰지지 않는다. 갈수록 서럽고 슬프게 소리가 커져간다. 왜 이러는지 나도 이유를 모르겠다. 울면서 건너편을 보니 엄마도 꺼이꺼이 흐느껴 울고 있다. 엄마가 우니 더 서럽고 무섭다. 모친은 울음 중간 중간 신세한탄을 하는 것 같다.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할 수가 없다.

 

  한참 지속되던 모친의 흐느낌이 그쳤다. 엄마는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로 와서 말없이 물 부대를 들더니 어디론가 혼자서 갔다. 이 광야에서 물 부대를 가지고 무얼 하려는 것일까. 조금 후에 엄마는 힘찬 표정과 몸짓으로 부대 가득 물을 담아 내게로 오셨다. 물을 건네며 엄마는 오랜만에 웃었다. 모친은 이제는 우리가 살았다고 하면서 함께 샘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물을 마시니 살 것 같다. 모친과 함께 간 곳에 정말로 맑고 시원한 물이 흐르는 샘이 있었다. 며칠 동안 수차례 돌고 돌았는데 그 때는 왜 보이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모친은 하지 않던 말을 한다. 하나님께서 샘을 찾아주셨고 앞으로는 그분이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니 걱정할 것이 없다고. 그럼 우리를 집에서 떠나게 한 것도 그 분이냐고 했더니 엄마는 서슴없이 그렇다고 한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모친은 전에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때에 활기를 띠며 그분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그 많던 우리 편의 사람들은 우리가 쫓겨날 때에 왜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까. 내게 그렇게 잘 해주던 아버지는 왜 나를 집에서 쫓아낸 것일까. 하나도 이해되지 않는다. 느낌으로는 이 모든 일들이 큰 엄마와 동생 이삭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이 많이 있었다. 집에서 먹을 것 때문에 걱정해 본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집이 그립다. 어쩌다 집에서 있었던 일이나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내면 모친은 예전 집의 일들은 다 잊어버리라고 한다.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지도 않을 거라면서 앞으로는 이야기도 꺼내지 말라고 한다. 알 수 없다. 이제까지 살아왔고 내 삶의 모든 것이었는데 어떻게 한 순간에 다 잊을 수가 있나. 최근에 모친과 부친을 비롯한 모든 어른들이 하는 일들이 나는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전히 집이 그립고 시간이 되면 모친 모르게 혼자라도 가서 아버지를 만나고 다른 이들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