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야기/아브라함

더 없이 편안했습니다(이삭)

변두리1 2014. 8. 15. 00:59

더 없이 편안했습니다(이삭)

 

  며칠 전에 내 평생에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그 영향은 내 생애 동안 이어지리라. 그날 아침 일찍이 아빠는 내게로 와 나를 깨웠는데 그런 일은 예전에 없던 일이었다. 일어나 길 떠날 채비를 하라는 음성은 왠지 평소와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출발할 때 보니 두 명의 종들이 함께 했고 장작을 싣고 나귀를 타고 가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별 말이 없었지만 종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모리아 산 쪽으로 번제를 드리러 간다는 것 같았다.

 

  종들을 나귀와 함께 산 아래에 두고 아빠와 둘이서 번제를 위해 장작을 지고 산을 올랐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나무는 내가 지고, 불과 칼은 아빠가 가지고 가는데 정작 번제를 드릴 양은 어디에 있을까. 아빠에게 물었더니 양은 하나님께서 직접 준비하신단다. 산 정상에 올라보니 상쾌했다. 아빠는 부지런히 제단을 만들고 장작을 벌여 놓았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내게 와 나를 묶었다. 아빠 표정은 두려움도 염려도 없이 온유함과 평안함이 흘렀다. 나도 편안했다. 겁도 나지 않고 걱정되지도 않았다. 나를 들어서 제단 위에 놓았다. 여전히 편안했다. 아빠가 칼을 잡고 팔을 치켜들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빠의 팔이 중간에서 멈추고 뭔가 웅 웅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굳은 듯 한동안 움직임이 없이 서 있더니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곳에 수풀에 걸린 채로 고요히 있는 한 마리 숫양이 있었다. 천천히 아빠는 나를 묶었던 줄을 풀고 그 양에게로 가서 이번에는 그 양을 묶어 번제를 드렸다. 번제를 드린 것은 아빠였지만 이번에는 나도 묶였었고 참여했으며 제사를 위해 아빠와 둘이 산에 올랐으니 나도 능동적으로 번제에 참여한 셈이다.

  번제를 마치고 둘이서 산을 내려왔다. 서로 말이 없었다. 아빠는 무언가 생각에 깊이 잠긴 듯, 큰 짐을 벗은 듯 했고, 나는 아빠의 커다란 삶의 원칙 하나를 본 것 같다. 아빠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모든 것을 다 접는 것 같다. 나는 아빠 앞에서 모든 것을 접어왔다. 내 나이가 더 들고 하나님에 대하여 분명한 체험이 생기면 나도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을 두게 될 것이다. 내 지식과 경험이 쌓이고 아빠가 연로하면 아빠의 판단보다 내 판단이 더 옳다고 생각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우리가문에서는 아빠의 판단이 절대적이고 아빠는 하나님의 지시하심이 모든 것에 우선하니 우리 집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고 할 수 있다.

 

  아빠도 쩔쩔 매는 사람이 있다. 엄마다. 사람들의 얘기를 따르면 엄마의 미모 때문에 아빠가 여러 번 위기를 맞았다고 하는데 엄마는 그때마다 위기가 아니라 한 단계씩 좋아지는 기회였다고 목소리에 힘을 주어 반박을 한다. 가끔씩 엄마는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불쑥불쑥 내밀어 아빠를 곤란에 처하게 하고 그것이 관철될 때까지 계속 밀어붙이고 압박을 해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 낸다. 그런 일이 몇 번 계속되니 엄마를 아빠는 경계하고 두려워한다. 아빠가 지나가는 말처럼 불평을 하는 것을 내가 들은 적이 있는데 이복형 이스마엘을 낳은 것과 그들 모자를 집에서 내 보낸 일 등을 거듭해서 얘기하곤 했다. 얼마 전에는 혼잣말처럼 자기가 그러니, 상의해서 안 될 것 같은 일은 아예 알리지도 않고 행동부터 한다고 하면서 나를 데리고 모리아 산에 갔던 일을 중얼중얼 얘기하셨다. 나랑 모리아 산에 갔던 일은 왜 엄마에게 상의하면 안 될 일이었을까.

 

  얼마 전에 엄마와 아빠 사이에 근래에 보기 드문 다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원인이 최근의 엄마와 나의 대화에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일은 며칠 전에 엄마와의 대화가 무르익고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모리아 산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난 아무런 의도 없이 보고 겪은 일을 얘기한 것인데 아빠가 나를 묶었다는 부분과 칼을 집어 들었다는 부분에서 파랗게 질리고 부들부들 떨면서 나를 부둥켜안고 얼마나 무서웠느냐, 큰 일 날 뻔 했다고 울먹거렸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몇 번을 얘기해도 소용이 없었다. 엄마는 나를 껴안으며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내게 안심하라고 했다. 나는 모르겠다. 그때에 무섭거나 겁이 난 일은 없었다.

 

  나는 엄마와 함께 있을 때 보다 아빠와 있을 때가 편하다. 엄마와는 끊임없이 말해도 오해가 적지 않고 아빠는 거의 말하지 않아도 오해도 없고 마음이 더 잘 통하는 느낌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지난 번 일 같은 일을 아빠는 또 엄마와 상의 없이 할 것 같고 나도 그것이 좋을 듯하다. 엄마와 상의하면 다툼만 생기고 고민이 깊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어려워지고 사람의 생각과 감정에 하나님의 일하심이 막혀서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만 같다. 그것은 엄마에게도 결코 이롭지 않으리라.

  나는 엄마와 다투더라도 하나님을 따르는 아빠가 좋다. 어떤 분명한 이유는 없지만 나도 아빠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