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의 꽃들
따가워지는 햇살을 받으며 느리게 걷는다. 골목길 우측에 연달아 핀 친숙한 빨간 장미가 자신들의 계절을 즐기고 있다. 며칠 전 세종에 사는 이에게 내 사는 곳을 설명했더니 장미꽃이 멋있는 곳이냐고 되물었다. 길지 않은 거리지만 소담스런 장미꽃들이 꽤나 인상적이었던가 보다. 진홍색 장미가 정염(情炎)을 떠올리게 한다. 언제부턴가 울타리 꽃이 된 장미는 마치 귀한 신분이었다가 서민이 된 느낌이다.
초등학교를 지나 동산 아랫길을 걷자니 산속에 자리한 아까시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 온다. 그러고 보니 길거리에서 아까시 나무를 보기 어려워 진 듯하다. 어린 시절 오뉴월 양관고개를 지날 때에는 달큼한 향기가 무딘 감성을 일깨웠었다. 축 쳐진 미색 꽃들을 달고 바람에 향기를 보내주니 고맙다. 아카시아로 익숙한 이름, 오히려 그 익숙함이 우리 고유의 꽃이 아님을 알려준다. 우리 땅에 들어온 지 백여 년 세월에, 다른 어느 나무와 꽃보다 토착화되었다. 내 생각으로는 달큼한 꽃향기와 꽃피는 계절을 고려하면 아예 아가씨나무, 아가씨 꽃으로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도시의 성장과 함께 확장된 마을 골목을 걷는다. 좌우로 들어선 가게와 찬란한 간판들이 발걸음을 늦춘다. 길 양편에 병사들 사열하듯 이팝나무들이 서있고 고봉으로 담긴 쌀밥처럼 꽃들이 푸지다. 앞서 이 땅을 살다간 이들이 얼마나 어렵게 살았으면 나무에 그런 이름을 붙였을까. 자신들의 처지를 자랑하듯 하늘 향해 꼿꼿한 꽃들이 가상하다. 이 땅에서 먹고사는 문제가 사라진 게 언제쯤일까.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다. 이 계절만이라도 흐드러지게 핀 이팝나무를 보며 가난했던 세월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재난지원금을 받았다. 팔월말까지 쓰지 않으면 국고로 귀속된다고 한다. 단기간에 소모하라는 게다. 아끼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적당히 소비하는 게 경제를 살리는 길이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세상을 멈추고, 경제를 얼어붙게 했다. 연일 어렵다는 말들을 듣다보니 다시 그 힘겨운 시절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된다. 형편 좋아지는 것은 느끼기 어려워도 악화되는 것은 바로 알고 큰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대로에 나오니 도로가 넓어 내가 걷고 있는 곳으로만 마음과 눈길이 쏠린다. 대단위 아파트 담을 타고 장미와 함께 찔레꽃이 눈에 들어온다. 장미가 귀족적이라면 찔레는 서민적이다. 장미가 실내 화원에서 관심과 돌봄을 받고 자란 느낌이면 찔레는 비바람 맞으며 들판과 울타리, 산속에서 자라나 꽃피운 야생의 감이 있다. 찔레꽃에서는 진한 정염 대신, 단아한 시골 이모나 누님을 보는 듯한 아릿함이 있다. 가난 속에서도 기품을 잃지 않은 품격을 보는 것 같다.
장미보다 찔레꽃이 더 친숙한 것은 왜일까. 내가 태생적으로 양반보다 서민에 가까워선 그런가보다. 삼사월 봄과 함께 화르르 달려들어 산과 들, 거리를 온통 노랑과 분홍으로 물들이는 개나리와 진달래는 충분히 감상하기도 전에 서둘러 스러진다. 허전하기야 화들짝 피었다 꽃비처럼 지는 벚꽃을 당할까.
집으로 향하는 길, 어느 집 담장 안에 피어나는 빨간 꽃들과 앙증맞은 작은 꽃무리들은 날마다 보면서도 이름을 모른다. 꽃 사진을 찍어 올리면 알려주기도 한다던데 나는 그런 열심을 내지 못한다. 마음속으로 이름조차 불러주지 못하는 꽃들에게 미안하다. 일렁이는 바람에 무성한 이파리를 흔들며 집 앞 은행나무가 나를 맞는다.
내가 나무라면 어떤 나무일까. 심긴지 얼마 되지 않은 밋밋한 소나무일 것 같다. 그다지 남의 눈을 끌지 않는, 조금은 붉은 빛 솔가지를 달고 있는 푸른 소나무. 지나는 이들에게 그저 그런 모습에 기억나지 않는 존재, 서글픈 일이다. 스스로는 상록수, 소나무라 위안해도 화려함이 없다. 따가운 햇살과 눈비 맞으며 세월을 참고 견디듯, 이 땅 한 구석을 지키며 조용히 살고 싶다.
꽃은 나무들 한해살이에 짧은 세월을 산다. 봄에는 기다림으로 싹이 트고 연두색 해맑은 잎들을 보여주며 여름엔 짙푸른 젊음과 성장에의 질주를 깨우친다. 가을은 누르고 붉은 열매로 성숙을 드러내고 황혼 같은 단풍의 축제를 벌인다. 겨울은 질박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내일을 꿈꾸는 지혜를 알려준다.
산책길 꽃과 나무들은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다. 모두가 초여름을 사는데 혼자 가을일 수는 없다. 자유로운 것 같고, 구속받는 듯해도 같은 틀 속에 살아간다. 화려함과 단조로움이 자연의 흐름 속에 함께 있다. 햇살이 숨고 주변이 스산해지더니 빗줄기가 땅으로 그어진다. 이 때는 나무와 꽃들이 하나같이 비를 맞고 있으리라. 이 빗속에 더 자라 깨끗하고 강렬해질 게다.
한 무리의 꽃들은 이 비에 생을 다하리라. 꽃들은 땅으로 내려와 화려한 일생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리고, 바람은 어디론가 그들을 몰아가리라. 살아남은 꽃들을 감상 겸 축하하러 내일도 나는 같은 길을 걸으며 장미와 아가씨 꽃과 이팝 꽃과 찔레를 변함없이 만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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