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책과 내 생각)
최근에 출간된 지 꽤 지난 공무원이 쓴 두 권의 책을 읽었다. 공적인 업무를 하는 사람 공무원, 그 낱말을 대하면 신고, 승인, 허가, 규제, 반려, 발급과 같은 말들이 순서 없이 떠오른다. 오늘날 현실은 공무원 시험에 인재들이 몰려 엄청난 경쟁률을 보이고 한쪽에서는 공무원 생활을 하는 것은 진취적이지 않다고 한다. 법과 규정에 따라 일을 처리해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직종 같아서 그다지 빼어난 이들이 할 일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다. 공무원도 영역이 여럿이니 외교나 특수직은 그렇지 않을 듯하다.
그들은 국민의 심부름꾼이라 말한다. 내부적으로는 자부심도 적지 않을 게다. 엄청난 경쟁을 거쳐 선발되었으니 스스로 상당한 존재로 여기리라. 특히 한국과 일본의 공무원들은 나라의 여러 분야를 선도한다는 의식이 대단하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도 있다. 약해지긴 했겠지만 우리 사회의 관존민비(官尊民卑) 의식도 한몫을 했을 게다. 온 몸으로 힘을 써 일하는 것보다 사무직이 더 권위적이고 할 만하다는 분위기도 한동안 있었다.
두 권 책의 주인공들은 이 나라의 ‘내노라’하는 대학, 그 중에서도 입학이 어렵기로 이름난 과정을 졸업한 이들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분야에서 앞서가기는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공무원의 승진이 근무평가와 주기적인 교육과 필기평가, 그리고 승진 시험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학습과 평가에 소질도 있고 최적화된 이들에다 어디에 있든 학연이 탄탄하니 밀릴 게 무엇이랴. 거칠 것이 없었다. 더구나 한정된 사회에서는 선입견이 중요한데 그것을 형성하는 선발시험부터 실력을 보였을 테고, 결정적 기회마다 드러났을 것이니 선망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이들은 튀려고 하는 게 문재가 아닐까.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을 고분고분 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할 게다. 창의적인 제안을 하고 직접 나서서 추진을 하면 성과도 있겠지만 안정은 흔들리지 않을까. 과감한 경쟁과 실험, 그에 따른 성공과 실패는 시장중심의 사기업에서 추구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전문직은 한 분야를 오래 종사해야 할 것 같은데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라는 격언이 신경 쓰인다.
한 분은 분명한 목표, 튼튼한 기초, 세심한 계획, 과감한 추진, 꼼꼼한 마무리가 공직생활의 신조였고 그렇게 근무했다고 한다.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숨이 턱 막혀온다. 이제 모든 분야가 세계를 상대로 해야 한다. 주먹구구나 연줄에 의한 것은 길게 갈 수 없다.
내게 개인 의견을 묻는다면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머슴의 자세를 지키는 자세,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 않고 민원인을 돕는 일이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직업군을 원한다면 선발과 근무환경부터 달라졌으면 한다. 그분들에게 지탄받을 걸 각오하고 내가 그들을 관리할 위치라면 이렇게 하고 싶다.
급여를 낮춘다. 그러면 우수한 자원이 지원하지 않는다. 부정의 씨앗이 된다는 날선 반론들이 쏟아질 게다. 내 지론은 급여를 비롯해 근무환경이 좋아지면 소명의식을 가지고 천직으로 삼을 이들보다 유망한 직업을 찾는 이들이 몰릴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실현가능성이 낮은 다른 제안은 아예 시험 공고에서부터 공지하여 성적순으로 최 상위부터 필요인원을 선발하는 것을 포기하자는 것이다. 상위 30퍼센트 인원은 제외하고 그 다음부터 필요인원을 선발하면 무한 경쟁으로 성적이 좋다고 합격하는 것이 아니니 거듭해서 몇 년씩 시험을 준비하지 않을 것이고 가장 우수해서 선발된 것이 아니니 오만한 마음도 자제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떨어진 이들도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요구하는 수준에 맞지 않아서이니 더 필요한 분야를 두드리게 될 것이다.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청사도 좀 더 소박했으면 한다. 사는 지역과 건물이 많은 것을 나타내 준다. 더하여 자동차까지 가세하면 이 사회가 요구하는 평가를 할 수 있을 듯하다. 거대한 건물, 넓은 사무실과 쾌적한 냉난방, 화려하고 품격있는 집기와 설비들은 그곳에 근무하는 이들은 좋겠지만 그곳을 방문하는 이들에게는 위압적이고 주눅 들게 한다. 그 지역에 사는 이들의 평균보다 조금 낮으면 지역민들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육체적 편안함이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이다.
건축의 구조나 원리로 보아도 머슴이 거처하고 주로 일하는 곳이 주인집보다 위치가 빼어나고 크고 쾌적하다는 게 말이 되는가. 눈에 보이는 실제적인 것이 심리적인 것을 규정하기도 한다. 책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은 자신들의 분야에서 대단한 업적을 이루고 인정을 받았다. 자신의 업무에 지지부진하여 주인에게 손해를 주어서는 안 되지만 특출하게 잘 하는 것도 따라야 할 본으로 적합하지는 못하다고 생각한다.
빼어난 이들은 몇 명이면 족하다. 평균보다 조금 잘하는 이들이 그 사회를 지탱해간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단체의 흥망을 좌우하고 우수한 한 기업이 수많은 이들의 생계를 책임진다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은 지극히 소수일 뿐이지 다수일 수는 없다. 자연계에 크고 우람한 나무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보다 훨씬 더 많은 수로 건강성을 지탱해가는 것은 더 낮은 모습으로 이 땅에 뿌리박고 지구를 피부처럼 덮고 있는 수많은 풀들이다.
고정적인 생각들이 안전하지만 때로는 논리도 서지 않는 단편적 제안들이 번뜩이는 착상의 편린들을 품고 있을 수도 있다고 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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