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일기장
창의적인 발상으로 중학국어 교과서에 실린 박재동 화백이 아버지를 그리며 부친께서 20여 년간 기록한 일기를 가려 뽑고 어머니와 박 화백의 해설을 붙여 펴낸 책이다. 한 개인의 일기, 몇 줄이 안 되는 글들이 모여도 개인과 가족뿐 아니라 그 사회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는 걸 알았다. 번듯한 인물 뒤에 이토록 힘겨운 아픔이 있었음을 몰랐다. 화백의 부친, 박일호님의 삶도 가슴 아프고 특히 아내, 화백의 어머니인 두 살 연하 신봉선 여사의 살아온 모습에 아릿한 고통이 느껴져 온다.
중학교를 마치고 초등교사가 되어 근무하던 중, 학도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해 군 생활을 마치고도, 군 당국의 관련서류 분실로 재징집되어 두 번 군대생활을 했다. 제대하고 다시 복직해 연례적인 재교육을 받다 폐결핵에 감염되고, 수업결손을 메우려 정규수업 외에 보충에 힘쓰다 각혈을 하고 학교를 그만둔다. 두 번의 군복무와 직무 중 재해로 나라로부터 보상을 받아야 하나 오히려 멸시당하고 쫓겨난 셈이니 마음 아프다.
1960년경 간경화가 시작된다. 같은 처지의 환자들이 죽어나가고, 병원에서도 손을 놓고 있었을 때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그 때 최하진 박사라는 이가 자신의 말을 들으면 30년은 산다고 했는데 그렇게 30년을 사셨단다. 가족들은 그 분을 은인처럼 여기고 대한다고 했다.
주인공인 아버지가 서른을 갓 넘긴 60년에 불어 닥친 가정의 어려움은 아내로 부산 전포동 셋방에 살면서 가정을 지키려 남편을 살리고 자식들을 양육하기 위해 연탄배달, 풀빵장사, 팥빙수장사, 만화방, 문방구, 떡볶이, 김밥 등 가리지 않고 많은 일들에 몰려가며 살았다. 일기가 끝나는 지점까지도 장사는 지속되고 있다. 그 동안에 여러 번 경찰에 불려가기도 했다. 불량만화 단속에 걸리기도 하고, 불량음료 판매, 불법도로점거로 어려움을 겪는다. 웬만하면 남편이 그런 곤경은 감당할 수 있으련만 환자여서 신 여사가 감당했다.
1970년대에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묵고 나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더러울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단속당하고 죄인 취급받고 낯선 환경에 쭈뼛거리며 자유롭지 못한 긴 시간을 버티는 게 무척 어려웠을 게다. 만화방에서 당하는 일이라고 편했을까. ‘아이들 버린다, 이런 일로 돈 버느냐,’ 는 이들도 있고, 공개적으로 만화책을 찢는 이도 있었을 게다. 그래도 화백의 부모님은 착하고 성실하다. 몇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개탄도 하고, 음식 값을 내지 않고 도망가는 아이들을 걱정도 한다. 자존심과 체면을 떠나 실질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성실함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당시 주변에서 때때로 무시도 당했겠지만 당당한 삶을 살아냈음을 자녀들과 이 책의 독자들이 알아줄 게다.
박재동 화백은 부모님이 만화방을 해서 본인의 오늘이 있었다고 기록한다. 무수히 많은 만화를 보았고 거기서 창의성을 얻기도 했을 게다. 더하여 부모님의 삶에서 근면한 자세를 배웠으리라. 실력이 있으면 잘 나갈 것 같지만 그가 살아온 여정은 녹녹치 않다. 미술학원을 했다가 몇 번을 그만두고 휘문고에서는 이상하게 수업을 한다는 오해를 받고 물러난다.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부모님은 문구점을 하면서 주변가게로부터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얘기도 듣고 장사가 잘되면 같은 업종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그들은 친절과 성심으로 차별성을 보여준다. 어린아이나 청소년을 상대하면서 그들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한다. 하나하나를 진심으로 대하고 음식을 정성으로 준비한다. 단기간에 표가나지 않을지 몰라도 긴 세월 속에 확연히 드러난다. 남이 하는 것 흉내로는 원조를 넘어서기 어렵다.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에 혼을 담는, 진정한 프로가 살아남지 않을까. 자녀들이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많은 후손들이 생겨나도 어린 아이들 장사를 계속한다. 박일호씨는 몸이 불편한 중에도 꼿꼿한 마음으로 일기를 써나가고, 신 여사의 남편을 위하는 마음이 지극하다.
녹음기, 흑백텔레비전, 전화 놓기, 오가는 편지, 잘 나오지 않는 수도, 연탄과 기름보일러. 많은 세월이 지났음을 실감케 한다. 주인공이 1929년생이요, 박 화백이 1952년생이라니 그리 오래된 옛날도 아니다. 우리 아버지, 많이 올라가야 할아버지 시절 얘기다. 세대차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변하지 않거나 느리게 달라지는 것 같아도 한걸음 물러나 바라보면 놀라운 속도로 발전 혹은 퇴보하고 있다. 병원과 공무원의 불친절은 표면상으로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삶의 최전선에서 생존과 자녀교육에 맞닥뜨려 그들이 얼마나 숨 가쁘게 살아왔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늙어간다는 지속적인 탄식과 노인타령이 지금은 이해되지 않는다. 오십에 접어들며 연로한 노인인 듯 한탄하는 것은, 청년처럼 대우받는 오늘의 현실과 너무 다르다. 칠팔십이 넘은 이들도 노인임을 자인하려 하지 않는다. 남녀를 넘어 나이가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이제 육십은 뒤로 물러나는 세대가 아니라 아무런 제약 없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도전해 성취할 수 있는 지극히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연령대다.
습관처럼 어려움을 토로하며 하층민처럼 살아온 처지에서 이 일기를 읽기가 송구하다. 얼마나 절실한 어려움에 위기의식을 느끼며 살아왔던가. 몸이 부서져라 살아온 그들에 견주어 나는 너무도 쌩쌩하다. 내 삶뿐 아니라 많은 이들의 하소연을 무색하게 하는 글이다. 이런 이들이 있음으로 세상이 조금씩 나아져 간다. 나도 세상을 나아지게 하는 그들 중에 들 수 있으려나,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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