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 낯선 곳
변화경영 전문가라는 구본형 연구소장이 썼다. 두 권의 책인데 적잖은 분량이다. 지식정보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리에서 나와 홀로 서라고 한다. 직장의 일원으로 속해있어도 자신을 일인 기업의 사장으로 여기란다. 매년 새로 계약을 체결하는 수평적 관계로 살라는 게다. 이제 규격화를 거부하고 대체할 수 없는 독창성을 갖추라고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노동을 해서는 자신의 가치를 드러낼 수 없는 시대가 이미 우리 곁에 와있다.
불타는 갑판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앤디 모칸의 이야기로 글의 문을 열고 있다. 석유시추선 갑판이 불붙어 168명이 목숨을 잃었다. 바다로 뛰어내린 앤디 모칸만 생명을 건졌다. 지은이는 현 상황을 불붙은 유조선의 갑판으로 보는 것 같다. 이 책들이 2001년에 쓰였으니 벌써 20여년이 더 지났다. 죽을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살 가능성이 있는 선택을 하라는 게다.
생명을 가진 존재는 변화를 두려워하는가 보다. 안정에서 불안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생리적 안전의 욕구가 우선이니 어쩌랴. 반면에 안전한 곳에는 발전과 성장이 없다. 소진과 퇴보만 있을 뿐이니 진퇴양난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네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아무 것도 모른다는 순진무구 형, 지금은 아니고 다음에 하자는 유보 형, 적응을 위해 강도와 속도를 조절하자는 점진 형, 그리고 해봤는데 안 되더라는 경험적 회의 형이다. 편안하게 퇴보하다가 도태되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변화는 본래 급격한 것이다. 세계가 빠르게 달라져간다. 언제부턴가 컴퓨터가 생활에 도입되더니 이제 컴퓨터 없이 사는 게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소수가 사용하더니 요즘은 눈을 그곳에 붙이고 사는 듯하다. 현재의 직장이 전혀 안전한 곳이 아니란다. 인공지능이 어느 순간 노동자들을 몰아낼지 모른다. 신체노동뿐 아니라 사무직도 전혀 안심할 수 없다. 어느 날 확실히 퇴출당할 것인가, 불안해도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고 자기가 주도적으로 대처해 나갈 것인가를 선택하라고 한다.
지은이는 고우영의 만화와 무협소설의 장점들을 예찬한다. 고유한 영역, 남들이 덜 간 길, 심하게는 자신만의 길을 가라는 투다. 남들과 다른 쪽을 선택한다는 것, 고독과 따돌림과 두려움의 길이다. 학창시절에 벌을 받아도 친구들과 함께라면 서로를 보며 참고 견뎠지만, 좋은 일이어도 혼자는 재미없고 신나지도 않았다. 그렇다 해도 다른 이들에게서 무언가를 얻으려는 생각을 버리라. 철저히 자기 것을 찾아 그 꿈과 욕망을 따라 살아가라고 한다.
고차원적인 것을 추구할 게 아니라 근본, 본능, 욕망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배운 것이 아니라 타고 난 것이 자기 것이고 강한 것이다. 자신에게 잘 할 수 있도록 태생적으로 주어진 것을 하라는 게다. 성대를 타고난 이는 음악분야에 유리하고 운동능력이 빼어난 이는 스포츠분야가 그의 것이다. 언어와 수리에 재주가 있으면 학문분야를 파고들어라. 학습해 익히는 것보다 선천적인 게 먼저라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타고난 잘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능률이 오르고 신이 난다. 몸의 온갖 기능이 그곳으로 쏠리고 재능이 나타나 억제하기가 어렵다. 그 분야에 성공했거나 앞서간 이들을 보면 꿈이 생기고 욕망이 솟는다. 그 일을 하라는 거다. 자녀와 가정 때문에 원하지 않는 지루한 일을 계속하는 건 아니란다.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일을 수십 년 해서 그냥 익숙해진 채로 은퇴하고 안락한 삶을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결단을 내리고 자신의 꿈과 욕망을 향해 전환할 수 없다면 하루 두 시간만이라도 자신의 것에 투자하라고 한다. 서서히 익숙해져 가면 언젠가 그 일에 몰두할 수 있다. 이제 은퇴 후에도 창창한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것에 전념해 경지에 오르면 필요한 이들이 찾게 되고 고객이 있으면 자신의 상품을 생산 공급하는 유통업자인 것이다.
이 두 시간을 위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이 과정의 하나로 지은이는 포도 단식을 추천하며 자세히 설명해 준다. 아직 미래가 열려있는 이들을 위해 정부가 주도적으로 교육을 바꿀 것을 제안하고 있다. 쉽지 않고 만족스럽지도 않지만 조금씩 변화되어 간다고 믿고 있다. 우리 처지에서는 사람이 자산이고 교육이 희망이다. 한 개인에게 너무 많은 분야를 너무 깊이 가르친다는 주장에 크게 공감한다. 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미적분과 다차 방정식, 기하와 백터를 언제 어디에 실생활에서 사용해 본 기억이 없다. 그 무수한 시간을 쏟아 부었던 영어도 다르지 않다. 머리가 터져라 외웠던 문법과 수천의 어휘들은 다 어디로 가고 어쩌다 외국인을 만나면 들리지 않아 대화가 되지 않는다.
개인에 맞추어 소수의 과목을 학습량을 크게 줄여 배우게 하면 배움이 즐겁고 포기하는 이들이 줄어들 것 같다. 늘어난 시간은 개인의 꿈과 재능에 맞는 분야를 깊고 탄탄하게 익혀 가면 좋겠다. 십 수 년에 이르는 긴 세월을 많은 이들이 학습 아닌 다른 것에서 즐거움을 찾고 정작 본업인 공부에는 흥미를 누리지 못한다면 그런 불합리와 낭비도 없을 것이다. 개인과 사회, 국가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뛰어드는 도전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실패할 권리, 재도전이 어렵지 않은 분위기와 제도가 필요하다. 익숙한 곳에서 일어나 낯선 곳으로 가보라는 게 글쓴이의 간곡한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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