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각

화양연화(花樣年華)

변두리1 2020. 2. 22. 22:05

화양연화(花樣年華)

 

며칠 전 꿈을 꾸었다. 맞붙어 무술실력 고수는 살아남고 하수는 죽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프로이드는 무엇이라 할지 모르겠다. 꿈속에서도 나는 손꼽을만한 고수는 아니었다. 무작위로 만나 생사가 가려지는 경기니 서너 번이면 죽어야 했다. 내 목이 찔려 죽어야 했다. 그리 억울하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잠을 깨고 뭐 그런 얼토당토않은 꿈이 있는가하고 생각했다. 다행이 세상은 최고수만 살아남지는 않는다. 어찌 보면 유유상종으로 비슷한 이들끼리 어울려 사는 것 같고 위로 갈수록 살벌해 보인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써서 벌써 책 몇 권을 출간한 이의 글을 읽고 있었다. 직장 선배가 어느 날 아침 문자로 달랑 네 글자를 보내주었단다. 도광양회. 출전은 삼국지연의인가 보다. 유비가 거처를 잃고 조조에게 얹혀살 때, 조조는 세상에 영웅은 그대와 나 뿐이다라고 속마음을 떠보려 한다. 마침 울리는 천둥소리에 유비는 수저를 놓치며 상 밑에 숨어들어 대단한 인물이 아니란 인상을 남긴다. 조조는 경계심을 풀고 유비는 적당한 때에 조조의 품을 떠나 천하를 겨루는 호적수가 된다.

저자는 이 네 글자만은 마음에 단단히 새기겠다는 각오를 한다. 이 글을 받았을 때에 상황이 좋지 않았을 게다. 상처받을 것을 염려해서 위로와 격려, 새로운 다짐을 위해 보냈으리라. 도광양회(韜光養晦), 중국의 등소평이 외교정책으로 사용하여 널리 알려졌다. ‘자신을 감추고 실력을 기르며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다. 글자의 의미를 따르면 빛 아래 감추고 어둠에서 기른다는 뜻이다. 그렇게 해서 중국은 세계의 2인자가 되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 했던가. 주머니 속에 송곳을 아무리 감추려 해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자신을 감추기도 쉽지만은 않은가 보다.

저자는 항상 몇 권의 책을 소유하고 몇 줄의 글이라도 날마다 쓰려고 노력하는 모양이다. 해외출장이 잦은 부서에 일하면서 비행기 안에서, 외국의 낯선 도시에서도 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애씀이 보인다. 하기는 중학교 때 선생님이 저자가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리라 생각해서 신춘문예발표를 유심히 보았다니 글 쓰는 재주가 상당했을 듯하다.

어느 장례식장에서 한 때 반항아적 이미지로 수많은 청춘물의 주연을 독차지해 시대를 풍미했지만 이제는 아버지나 사극의 장수역으로 나오는 중견배우를 보았단다. 한물간 듯한 그러면서도 편안한 인상으로 육개장을 먹고 있는 그를 보면서 화양연화를 생각했다고 한다. 이 말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유래를 담고 있는 한자성어는 아닌 것 같다. 이런 제목으로 중국영화가 있고 가요와 책과 만화가 있다. 아마도 영화가 인기가 있어서 그 말이 자주 사용되었나 보다. 화양(花樣)은 꽃모양으로 을 연화(年華)는 빛나는 시절로 시기를 뜻해 꽃처럼 빛나는 시절이란 의미인가 보다. 저자는 배우의 청년시절보다 현재가 더 좋아보였던 모양이다. 항상 주인공이어야 즐겁고 조연이면 서글픈 건 아니다. 주인공보다 빛나는 조연일수도 있고 빛나지 않아도 즐거울 때가 있지 않을까.

우리사회가 좁은 땅에 인구가 많고 짧은 기간에 여러 분야의 성취를 이루다보니 경쟁이 치열해 승자를 기억하고 그것도 일등만을 강조해서 그렇지 귀하지 않은 이가 누가 있을까. 인생은 학창시절 시험 치듯 시간이 토막나있지 않고 타고난 재능과 여건이 모두 다르니 결과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무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눈으로 스스로를 보면 누구에게나 소설의 구성단계처럼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때가 있지 않을까. 위기를 겪으며 맞이하는 절정의 때가 화양연화다. 그 당시는 어려운 순간을 넘어서느라 그 순간이 절정임을 모를 수도 있다. 절정의 순간이 지나고 되돌아볼 때 알 수 있는 화려했던 시절이다.

재능과 환경이 다르듯, 화양연화의 시절도 정해진 것은 아닐 게다. 상황에 따라 초년 중년 장년 노년 그 어떤 시기에 맞을 수 있다. 이 때가 신체발달처럼 자연스레 다가오지는 않으리라.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노력으로 자신이 맞이하는 것일 게다. 텔레비전에는 화양연화를 맞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그들이 친숙해 보이고 자신과 별 차이가 없이 느껴져도 현실의 격차는 너무 벌어져 있다. 그들과 친숙해져 그런 시절을 사는 게 아니라 어둠 속에 부단한 노력을 쏟아 자신의 때를 만들어야 방송국이 자신을 찾아 줄게다.

한 해에도 무수한 책들이 출간된다. 어떤 이는 극소수의 명저와 대다수의 평범한 책들이라고 평했다. 한 유명한 가수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담백하게 해야 훌륭한 노래가 된다고 했다. 삶이 정답이 없고 어렵듯 쉬운 것이 없다. 그래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도광양회의 시절이 없이는 화양연화를 맞이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 아닐까. 힘겹고 지루한 준비 과정 없이는 의미 있는 완성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내 화양연화는 언제였을까. 모르겠다. 이제라도 도광양회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한동안의 세월이 지나 내게 찾아올 게다. 그 때를 상상하며 내 속에 힘을 지긋이 끌어올린다. 감출 것은 없지만 불을 꺼야지, 어둠속에서 내 힘을 길러야 하니까. 저 멀리서 머뭇거리며 내 화양연화가 느릿느릿 다가오고 있다고 믿고 싶다. 나를 이끄는 또 다른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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