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나를 사랑하는 법

변두리1 2019. 9. 16. 08:55

나를 사랑하는 법

엔도 슈사쿠식 삶의 철학 -

 

  《침묵의 저자, 수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던 일본 문학의 거장의 산문집이다. 선입견과는 달리 너무도 솔직 담백하게 기록한 것이 마음에 든다. 삶의 방식을 다룬 얇은 책에서 두툼한 신뢰와 감동을 얻는다. 확실한 인정을 받아서였을까, 자신의 청년기에 이르기까지 무척 진솔하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머리가 좋지 않았던 것 같고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았단다. 형은 수재였고 자신은 열등생이었다고 고백한다.

  중학교 때에 열등생 기질이 두드러졌고 수업이 이해되지 않았으며 수학은 거의 빵점이었다고 한다. 성적이 항상 밑바닥이어서 선생님께 많이 맞고 동료들에게 놀림과 가혹행위도 받았단다. 소설을 쓰는 동기 중 하나도 자신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욕구라 했다. 그는 자신을 겁쟁이고 소심하고 비겁하며 가능하면 남에게 상처주지 않고 살고 싶은 인간이라고 했다. 그의 고백에 더할 수 없는 강한 동지의식을 느낀다.

  그는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생태계를 보면 강한 무기가 있든지 아니면 빠르게 달아날 수 있든지 그것도 아니면 자신을 숨길 수 있는 위장술이라도 갖는다고 한다. 아무 것도 없으면 긴 세월 종을 이어올 수 없었을 게다. 그 말은 공격 도피 혹은 위장이 자신이 갖는 특색이요 장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장점 단점이 따로 없고 잘만 활용하면 모두가 장점이라는 게다. 신나는 말이다. 그는 또한 삶에 숨통을 틔우라고 한다. 본업이 아닌 잘못해도 열등감을 느낄 필요 없고, 삶에 신선한 바람이 될 수 있는 것을 찾으라고 한다. 그것은 연극 춤 노래 낚시 그 어떤 것이라도 자신의 답답함을 풀 수 있는 것이라면 좋은 것이다.

  같은 노력을 해도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는 때와 그렇지 않은 때가 있다. 그는 꽤 점을 보러 다닌 모양이다. 그 후에 얻은 게 운이라는 게 있다는 믿음이다. 삶이 잘 풀리는 때와 그렇지 않은 때가 있단다. 자신의 운은 사년을 주기로 오는 것 같다고 한다. 조금 달리 말하면 삶의 주기다. 자연 속 살아있는 것들은 주기가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낮과 밤이 있고 생장성쇠가 있다. 문제는 어둠 혹은 그늘에 머무는 시기다. 저자는 그 때가 잘 나가는 시기의 성패를 가른다고 한다. 잘 안 되는 때는 돌아올 융성기를 준비할 시기라는 것이다. 잘 준비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잡을 수 없다. 충분한 준비만 되어 있으면 반드시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좋은 시절에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게다.

  인생에서는 성실한 노력만이 아닌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라 한다. 글쓴이는 한때 수술을 받아 왼팔이 부자유스러웠는데 의사는 근육이 굳는 것을 막기 위해 손 운동을 부지런히 하라고 권했단다. 통증으로 운동을 게을리 하다 한 달 후에 의사에게 팔이 올라가지 않을 거라며 핀잔을 받았는데 막상 팔을 올리니 자연스레 올라가더란다. 특별히 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병원 환자들과 매일 카드놀이를 하면서 주로 왼팔을 움직인 게 운동을 한 것과 같은 효과를 냈다고 한다. 걷는 일을 꾸준히 해야 하는데 재미가 없어 지속할 수 없으면 춤으로 대체할 수 있다.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좀 더 재미있고 즐거운 일을 찾으라는 거다.

  책을 통해 가장 의미 있게 읽은 부분은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 굳이 일등을 하려하지 말라는 게다. 주변의 어느 모임에서든 삼등쯤이 좋단다. 열심히 해서 앞서가는 이에게 칭찬을 해주어 적이 아닌 내 편을 만들고 적당히 자리를 유지하면 때가 온다는 것이다. 인생은 장거리 경주와 같으니 괜히 앞서 달리느라 바람의 저항과 남들의 시기를 듬뿍 받지 말라는 거다. 앞서가면 남들의 표적이 되기 쉽고 이등도 일등과 감정의 소모가 심하니 삼등쯤 가면 중재자도 있고 힘을 비축할 수 있어 결정적 순간에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순위뿐 아니라 어딘가 헐렁하고 어수룩한 부분이 있어야 남에게 경계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경쟁 상대들에게 긴장감을 느끼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실천하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일등이 되지 않아도 좋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가. 자신을 앞서 가는 이들에게 질투를 느끼지 않고 진심으로 칭찬하는 것만으로 삶이 편해지지 않을까.

  어떤 일이든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다. 같은 상황을 만난다고 해서 모두가 한 가지로 대응하지는 않는다. 각자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대처할 수 있고 누구도 잘못됐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게다. 앞서 한 얘기처럼 어려움을 만났을 때, 정면 돌파하거나 그 자리를 벗어나거나 참고 그 순간을 넘길 수도 있는데 그 선택은 특성에 따른 개인적 선택이라는 게다.

  한 순간에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다. 저자는 화에 대해 조언을 한다. 이거야말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욱하고 올라올 때 많은 것을 고려하기가 어렵다. 화를 내지 말라는 건 아니다. 전략적이고 효과적으로 화를 내라는 거다. 말이 쉽지 어찌 그게 되겠나. 적어도 조금만 노력하면 상황은 조정할 수 있을지 모른다. 윗사람에게든 아랫사람에게든 공개된 곳에서 많은 이들 앞에서 화를 내는 건 현명하지 않다. 가능하면 상대방과 일대일로 조용히 불만을 표현하는 게 현명하다. 가능하면 순간을 참고 견디는 게 나중에 돌이켜 보면 득일 경우가 많다.

  약자의 처세술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도 실제적인 위로와 도움이 받았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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