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그림으로 신화읽기

변두리1 2019. 7. 18. 22:17

그림으로 신화읽기

 

  신화 세계의 바탕이 되었던 그리스로마는 철저히 인간중심사회였다. 자연 그들의 신화이야기는 인간사였고 대표적 유형의 인간들이 신으로 상정되어 펼쳐가는 세상살이의 원형이었다. 시간에 의해 하늘이 살해되고 그 성기가 죽음과 재생의 바다에 던져지자 거품이 일더니 예쁜 여신이 나왔다. 그녀가 아프로디테다. 미의 여신, 관능을 일깨우는 그녀에 의해 세계는 비틀거리며 전진해 온 것만 같다.

  눈이 부셔 똑바로 쳐다보기도 어려운 그녀가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가는 신들의 세계에서 큰 관심사였다. 신들의 운명도 알 수 없는 것인지, 눈독을 들이는 이들이 많아서인지, 그녀는 신들 중에 가장 못생긴 절름발이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아내가 된다. 여러 가지 조건으로 보자면 가장 어울리는 지아비로는 아마 아폴론이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가 관장하는 것만 해도 태양 예술 궁술 의술 음악 예언 이성 같은 것들을 총괄하고 더없이 이상적인 남성미의 상징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들의 신들은 격렬한 감정을 가지고 있고 실수도 곧잘 한다. 신이라기보다 인간유형의 대표라고 할 만하다. 여성의 자랑이 아름다움이라면 남성은 힘이 아닐까. 인간에게 생존과 번식이 지상의 과제라면 오늘의 생존을 가능케 한 것이 어제의 번식이었고 내일의 번식으로 가는 길이 오늘의 생존이다. 이 일의 핵심이 짝짓기라고 하면 인간사나 신화나 그 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다채로운 색깔의 그림이라고 하겠다.

  미모의 여인들은 제우스로 상징되는 힘 있는 이들에 의해 사랑받고 그 자녀들로 세상을 채우는 이들로 아프로디테의 또 다른 모습들이고 힘센 남성들은 제우스를 필두로 페르세우스 테세우스 헤라클레스 아킬레우스를 거쳐 오디세우스로 이어진다. 신들뿐 아니라 영웅들의 삶들이 얽혀 이 땅과 올림푸스 산의 이야기들을 수놓아 간다.

  동양의 사고틀을 음과 양, 정신과 물질로 나눈다면 우위에 놓이는 것은 양과 정신 하늘과 자연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니 유교와 도교에 성리학이 발달하고 무릉도원이 이상향으로 꼽힐 수 있었다. 하지만 서양은 그렇지 않다. 세상과 사람과 물질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과학과 기술이 앞설 수 있는 문화의 틀, 어쩌면 문명의 바탕이 형성되어 있었다. 서양문화의 뿌리를 그리스로마에 두고 있으니 신화의 세계도 그와 큰 차이가 없다고 하겠다.

  서양의 그림과 조각을 보노라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있는 모습, 누드가 두드러지게 눈에 들어오는 걸 볼 수 있다. 로마를 비롯한 고대를 상징하는 도시에는 인물조각이 많고 다수는 벗고 있다. 아이들도 아니고 성인의 그런 모습은 동양적 사고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들은 남성임을 자랑하고 드러내려 함이 분명하다. 고대의 올림푸스 제전에서는 출전선수들이 모두 나체였다고 한다. 신이 인간의 모습이고 인간이 신의 모습이니 인간은 온전하다고 생각했을 게다. 완전한 존재에 무엇을 덧댄다는 건 완전을 부정하는 일이다. 인간은 우주의 축소판 소우주였고 그 중에도 남성이 주체였다. 여성은 거세된 남성이었고 부족한 존재였다. 자신을 드러내고 신들의 솜씨를 보여주는 표현이 나체였다.

  남성의 나체를 그리고 조각하다보니 어느 순간 여성의 몸을 보게 되고 그리게 된다. 화가와 조각가들은 여성의 몸에서 유혹 관능적 아름다움을 본다. 들고 남의 양감과 곡선의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이 남성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성의 나체를 남성보다 더 그리고 조각하게 되었다. 신화를 표현하는 것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되었을 게다. 나체가 완벽함의 표현에서 이제는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관능적인 강조가 드러난다. 그러한 모습은 신에서 인간과 요정으로 확대되어 갔다. 누드가 주체에서 객체로 옮겨 간 것이다.

  신화에서 비롯된 남성성과 여성성이 뒤섞여 거대한 모습으로 드러난 것 중에 하나가 트로이 전쟁과 오디세우스의 역경과 귀환이다. 세 여신의 미의 경쟁에서 비롯된 질투는 당시 세계의 전쟁을 초래한다. 세 여신이 파리스에게 제시한 것들과 파리스의 선택을 생각하면 여성의 미가 얼마나 강력한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 전쟁에서도 신들은 편을 갈라 후원한다. 헤라와 아테나가 한 편이 되고 아프로디테와 아레스가 한 편이 된다. 그 전쟁의 대미를 수놓는 이가 오디세우스이다. 유명한 트로이 목마로 승리를 하지만 고향 이타카로 귀환하는 여정은 너무나도 어렵다. 10년 전쟁 후에 또 다시 10년의 세월이 흘러간다.

  오디세우스가 돌아오는 과정에 많은 여성이 개입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미인들이다. 칼륍소와 키르케 세이렌의 유혹과 위협을 헤치고 고향에 돌아오면 또 다른 미인인 현모양처 페넬로페와의 해후가 이루어진다.

  신화는 삶의 원형일 뿐 아니라 꿈의 세계다. 신화와 엣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나같이 짝을 짓는 이야기인 건 아니다. 평범한 이들은 해내기 어려운 과업에 도전하여 마침내 이루어내는 이야기는 얼마나 감동적인가. 그 과정은 혼자의 힘과 싸움이 아니다. 꼭 돕는 이들이 나타난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란 말인지도 모른다. 돕는 이들이 나타나리라. 그래도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아름다운 여성과 힘 있는 남성들의 짝짓기에 관심과 이목이 쏠려 있는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성형외과와 성형광고들이 그토록 많을 리가 있을까.

  아직도 인류의 수준과 이성이 신화시대와 그리스로마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영원히 벗어나기 어려운 게 인간의 운명이라면 지나친 표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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