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함께

김병종의 화첩기행

변두리1 2019. 6. 28. 13:05

김병종의 화첩기행

제 신명에 살다 간 예인들의 흔적 찾기 -

 

  요즘도 TV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다 보면 가끔 화첩기행이 나온다. 익숙한 이름의 책을 샀지만 그 방송을 진행한 이가 쓴 것인지 전혀 관계없는지 모른다. 읽어가다 흥미로워 속편이 있는지 찾아보니 아예 다섯 권으로 묶여 나왔다. 한 질을 사놓고도 보던 책을 보았다. 한 눈으로 쓱 보아도 예인과 예향이 전국에 널려 있겠지만 특히 전라도에 많고 경상도가 그를 받치는 형상이고 강원도가 거든다고 할까, 서울은 영향력에 비해 왜소하고 충청도에 관한 것은 옥천의 정지용을 제외하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궁금해 다섯 권짜리를 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충청의 나는 서운함이 적지 않다.

  목포의 이난영, 진주의 남인수. 한 시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셔준 대중가요의 별들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고 인정이라도 받은 그들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들이 아닐까. 우리의 소리를 지킨다는 자부심과 고집으로 평생의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는 대중들의 인기도 폭넓은 파급력도 없었다. 내 것이니 맥이 끊이지 않게 스스로 사명감을 고취해 가면서 버텨야 했다.

  그들에 못지않게 몰이해와 어려움을 견디며 신산한 삶을 살았던 이들이 환쟁이라 자칭하던 이 나라의 선구적 화가들이었다. 타고난 재능에 대개는 외국 유학을 거쳐 세계에 내놓아도 인정받을 만하건만 조국에서는 여전히 무시와 고난의 삶이 기다릴 뿐이었다. 그것은 동양화를 그리는 이들보다 서양화가들이 심했을 듯하다. 대구의 이인성 같은 화가는 경찰의 총에 맞아 생을 마감해야하기까지 했다. 시민들 아니 동 시대의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에 의해 예술인의 삶은 영향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무리 중에 세계적인 춤꾼 최승희가 있었다. 춤을 위해 태어나 지구별이 좁은 듯이 온갖 기록을 세우며 젊은 날을 살다가 마지막 순간도 확인할 수 없을 만큼 불행하게 죽어갔다. 그녀에 비하면 동푼서커스를 지키는 단장 박세환은 자신 앞에 펼쳐질 길을 어느 정도 알고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는 것과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간다. 조부와의 아픈 이별장면과 고향집을 그리는 마음에서 가슴이 아팠다. 언제라도 툭툭 털고 내려놓고 찾아가면 못갈 건 또 무엇인가.

  문인들에게는 사회적 평가와 인정이 좀 더 후한 것 같다. 서정주 윤선도 이효석 정지용 김동리. 이들은 그 지역에서 드러내 자랑하고 싶은 이들이요, 그들의 흔적들을 접하기가 그나마 나을 듯하다. 우리 민족에 배어있는 숭문의식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유배의 삶은 또 다르다. 임금의 왕궁에서 멀고 궁벽한 곳, 지역적인 면보다도 주도세력에서 밀려난 피해자라는 면이 컸으리라. 그건 그러한 이를 돕는다거나 가까이 하는 건 현 실세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요, 자신과 관계자들의 출세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계산이 된다. 제주도 한 가옥 속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된 추사 김정희와 그를 대하는 세간의 인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상적이 보여주는 배려와 공경은 추사로 세한도를 그리게 한다. 유별나게 태어난 세한도는 우리나라와 일본을 넘나들며 극적인 사연들을 더하다 마침내 국보가 된다. 추사는 유배를 거치며 인품과 솜씨가 무르익어 또 다른 차원의 작품을 남긴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지역은 고유의 성향을 품어 지역적 정체성을 이룬다. 소리의 고장 진도, 운주사의 화순, 아리랑의 정선, 하회탈놀이와 안동, 암각화와 언양.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것들이 되었다. 그들도 특정한 것이 그 고장의 것이 되기까지 많은 세월과 애환을 겪어 왔을 게다. 그곳을 고향으로 둔 이들은 어느 곳에 살든지 그것들을 그리워하며 고향을 떠올릴 게다. 사람과 장소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정과 한을 만들어 간다.

  저자는 유럽을 돌아보며 예술가들에 대한 자부심과 예우, 작은 인연이라도 내세우고 잊지 않으려하는 삶의 자세가 부러웠을 게다. 그들이 머물던 곳에 세워진 기념관들, 확대 재생산되는 작품과 후손들의 삶 깊숙한 곳까지 파고드는 그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가. 그러한 것들의 삶의 수준이다. 돌아보면 우리가 언제 이만큼 살게 되었나. 아직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수백 년을 안정되게 살아온 그들과 우리가 같을 수 없다. 생활이 좀 더 안정되었던 조선 중기의 예인들과 작품들이 우리에겐 더 남아있고 그들에 대한 평가도 후하지 않을까 한다.

  바야흐로 예술의 시대를 살고 있다. 유명화가들의 미술품들이 고가로 거래된다고 한다. 그런 그림이 한두 점 걸려있어야 품격 있는 가정으로 여겨지나 보다. 그런 것들이 투자의 대상이 된다고도 한다. 운동선수들과 연예인들이 시대의 우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각 예술분야에서 한국인들이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고 있다. 각 지자체들도 눈길을 끌 수 있는 지역의 인물들을 발굴하고 있다. 삶의 수준이 향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요소들이다.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인생을 돌아보게 해주는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지는 것은 행복하다. 그들에 관한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각고의 피와 땀을 작품에 쏟아내는 자각들을 향한 존경과 기림의 마음이 생활전반으로 표출되는 문화가 삶의 현장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 싶다. 마치 탐스런 열매를 보며 가꾸어낸 농부들의 수고를 기억하듯이. 앞서간 예인들이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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