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생활

내가 못 본 영화

변두리1 2019. 3. 14. 21:17

내가 못 본 영화

 

  친지 몇과 영화극한직업을 보았다. 이미 천 만 관객이 찾은 영화로 아무 생각 없이 보기에 즐거웠다. 영화와 그리 친하지 않아 등장하는 배우들 이름을 하나도 모른다. 마약조직을 소탕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대사들이 웃음을 자아내고 주위 사람들이 까르르하니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따라 웃었다. 아무런 상념 없이 두 시간 가량 몰입할 수 있어 상쾌했다. 출구를 벗어나며 모처럼 몸과 마음이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관 로비를 지나며 말모이를 보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말모이는 조선어학회 사건을 다룬 영화란다. 우리말과 민족정신이란 면에서 한 번 보았으면 싶은 영화 아닌가. “말모이낱말 모음정도의 뜻을 지닐 사전을 가리키는 순수 우리말이다. 함께 영화를 본 친지들이 십여 명이니 굳이 내가 본 그 영화를 보지 않아도 문제될 게 없었고 그들 가운데 내가 제일 연장자니 다른 영화를 본다고 하면 안 된다고 할 이도 없다. 눈에 띄는 유별난 행동을 하고 싶지 않은 내 생활습관이 반영되었을 뿐이다. 내 주장을 분명하게 하지 못한다. ‘괜찮아’, ‘그것도 좋네.’,‘그러지, .’내가 자주 쓰는 말들이다. 그 바탕에는 외로움이나 불안이 있지 싶다. 다른 이들과 달리 나 혼자 어떤 일을 하는 게 두려운가 보다. 혼자 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을 못한다거나 못 할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일을 혼자 하는 편이다. 누군가 옆에서 내 하는 일을 지켜본다면 그것이 훨씬 신경 쓰여서 자유롭지 못할 게다.

  긴 세월동안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았다면 이제 내 의견을 표현하며 살아도 어색하지 않을 처지가 되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지만 그러면서 다듬어지는 것 아닌가. 내 의견이 없는 사람으로 무색무취, 유야무야하게 사는 것도 무가치하다 할 순 없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때는나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원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경험이 좀 더 많은 이들이 해야 할 일인 듯하다. 다른 이들이 원하는 바도 아니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도 아닌 것을 눈치 보아 가면서 똑 같이 할 일은 아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기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다른 이들의 눈치를 살피다 결정을 내린 후에야 정말로 내가 원했던 건 그게 아니었다는 식의 불평은 하거나 듣고 싶지 않다. 모두 솔직하게 자신들이 원하는 걸 드러내 많은 편을 따른다면 결론이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자신이 원하는 바가 채택되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후회스러울 건 없다.

  내 삶의 모습을 한 꺼풀 더 벗겨보면 자신 없음이 보인다. 제대로 해낼 수 없을 거라는 지레짐작과 결과를 책임지기 싫다는 마음이 어우러져 나타나는 소극적인 행태다. 책임져야 할 큰 일 앞에서 주춤거리며 물러났었다. 그렇게 살아온 결과로 삶에 큰 진전이나 성취가 없었다. 지금이 내 삶의 전반부라고 우길 수 없다. 후반전 같은 삶에 몸 사리기는 처한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축구경기에 비유하면 후반 5분 정도에 2 : 0 으로 지고 있는 셈이다. 전반에 비교적 체력을 아껴두었으니 조금 여유가 있다. 경기를 뒤집으려면 더 이상 실점을 하지 않더라도 세 골을 넣어야 한다. 기회가 올 때마다 득점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가능한 여러 번의 공격을 펼쳐야 한다.

  내 하고 있는 일에서 한 눈 팔 여유가 없다. 관찰자로서 보고 분석하고 판단하고 간직해온 수들을 펼쳐볼 기회가 많지 않다. 남들은 큰 잘못 없이 마무리를 한다지만 나는 이제부터 서서히 속도를 높여야 한다. 슬픈 현실은 기술이 빼어나지 못하다는 게다. 타고난 재주 없음이 아쉽다. 하기는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남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걸 이용해 한 수를 정확히 노리는 게다.

  남들이 다 만들고 정해진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걸 무얼 보느냐로 왈가왈부하는 게 우습다. 그런 영화를 감독하는 이들, 출연하는 이들, 수익성을 고려해 그 영화를 상영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차려준 밥상을 받는 한 소비자로서 자신의 선택권도 행사하지 못하고 한탄하고 있다.

  대단한 일을 하려면 내 부실한 바탕을 다질 시간이 너무 없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모래위에 성 쌓기를 할 수는 없다. 더구나 날림으로 터를 다질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마음은 급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형편이다. 한 가지를 하더라도 깊은 숨을 쉬고 차근차근 기초를 다질 일이다. 주변에서 언제 그렇게 하고 있느냐는 말을 한다면 우공이산으로 대답해야 할 게다.

  목표를 단순화하고 내 할 일이 아닌 것을 미련 없이 내려놓을 때다. 길지 않지만 짧지도 않은 세월이 남았다. 어떤 일이든 한 가지를 택한다면 처음부터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다. 시행착오를 줄이고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야지. 쉬지 않고 가다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후회나 미련은 없으리라. 그곳에서 숨이 멎고 고꾸라지면 한 평 땅 차지하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게다. 그 때까지 타박타박 걸어가야지.

  여하튼 못 본 영화 말모이를 텔레비전 영화관에서라도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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